김병희 교수 ‘해방 이후 한국 풍경 리즈’ 3권 동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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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희 교수 ‘해방 이후 한국 풍경 리즈’ 3권 동시 출간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7.06.2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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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홍보 전문가’ 김병희 교수가 바라 본 해방 이후의 한국 은 어땠을까

광고‧홍보 전문가에 비친 해방 이후의 한국 사회는 어땠을까.

그는 이달 초 ‘해방 이후 한국의 풍경’이라는 3종의 저서를 동시 출간했다.

많은 사람들이 해방 이후 먹고 살기 힘든 환경에 주목할 때 김 교수는 어려운 환경을 뚫고 변화를 시도하는 한국인들의 자상화를 국민, 정부, 기업 등의 입장에서 바라봤다.

예를 들면 이렇다.

지금의 미니스커트는 언제 처음 유행한 것일까?

국내에 들어온 최초의 수영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때도 휴가란 게 있었을까?

지금과 같은 결혼 문화는 언제 태어난 걸까?

이 같은 물음에 저자는 1934년 소설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라는 세태 소설에서 구보 씨의 모습으로 이야기했다.

1편 '구보 씨가 살아온 한국 사회: 해방 이후 한국의 풍경Ⅰ'. 사진=살림지식총서

1편인 ‘구보 씨가 살아온 한국 사회: 해방 이후 한국의 풍경1’에서는 해방 이후 70여 년의 한국의 사회문화를 돌아보고 톺아보고 있다. 1964년생인 저자가 1935년에 태어난 소시민 구보 씨로 가정하고,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사회문화사를 추적하는 재미난 방식을 보여준다.

<책속으로... 슝~>

“아파트는 한국인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렸어. 집을 가족과 사랑을 나누는 공간이 아닌 투자 개념으로 보는 분들이 많아. 하우스(House)가 주거 공간이라는 밋밋한 의미라면, 홈(Home)은 가정이라는 뜻을 강하게 담고 있어. 가족과 머무를 방 한 칸이면 모두가 행복했던 해방 직후의 그 시절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도 해. 그때의 집안 풍경이 정녕 ‘스위트 홈’이 아니었을까 싶어.” _22~23쪽

“1970~1980년대엔 대학생들이 깡소주를 많이 마셨어. 때론 중국집에서 짬뽕 국물 하나 시켜놓고 ‘빼갈(배갈: 고량주)’을 마시며 시대의 울분을 토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깡소주’가 대세였지. 어두운 시대를 한탄하며 정치 문제를 안주 삼아 깡소주를 많이도 마셔댔어. (중략) 1990년대 이후부터는 소주의 도수도 점점 낮아지기 시작했어. 맥주 마시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났지. 생맥줏집이 번성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야. 맥주가 소주보다 더 부드럽게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늘어서였겠지.”_51쪽

2편 '정부광고로 보는 일상생활사: 해방 이후 한국의 풍경Ⅱ'. 사진=살림지식총서

2편인 ‘정부광고로 보는 일상생활사: 해방 이후 한국의 풍경2’에서는 정부 광고를 통해 한국인의 내면과 자화상을 다뤘다.

저서에 따르면 광고는 당대의 트렌드와 호흡하면서 텍스트와 이미지로 당시 대중과 발을 맞추는 미디어다. 그렇게 본다면 해방 이후 언론에 실린 광고야말로 한국 사회의 내면을 담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정부광고는 기업광고와 달리 국민계몽의 목적이나 정책을 더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민간 영역이 현재 수준으로 성장하기 이전이기 때문에 전화 사용 방법이 정부광고에 실리는가 하면, 몇 십 년 전의 정부광고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세련된 감각을 보여주는 체신부의 연말연시 우편물 이용 광고도 볼 수 있다.

이 책은 ‘여행과 통신’ ‘학생과 치기’ ‘농촌과 전통’ ‘도시와 기억’ ‘문화와 흔적’ ‘나눔과 사랑’을 주제로 한 해방 이후 나온 일상적인 광고를 통해 한국인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자화상을 캐내고 있다.

<책 속으로... 슝~>

정부에서는 이미 광복 직후부터 어린이 교통안전을 강조해왔다. 1947년에 미 제24군 헌병사령부와 한국 정부가 공동으로 홍보한 포스터 ‘어린이 교통안전’ 편을 보자.

“보호하자 어린이, 살피자 보행자”라는 한글 헤드라인과 “Protect Children! Watch Out For Pedestrians”라는 영어 헤드라인을 동시에 쓰고 있다. 당시엔 영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드물었을 텐데 영어 헤드라인을 병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교통안전 강조 운동은 미군과 한국 정부가 공동으로 하고 있는 공익사업의 하나이다”라는 마무리 카피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터. 미군이 한국 정부보다 앞에 등장한다는 점을 보면 포스터 제작은 미군 헌병사령부가 주도했음이 분명하다._31~32쪽

전쟁이 끝나고 수도 서울이 서서히 도시의 모습을 회복해가던 1950년대 후반, 우리나라는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중략) 우리 사회에서 자유 논쟁이 이처럼 계속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한국전쟁으로 억눌렸던 본성을 일깨우기라도 하려는 듯이, 여기저기서 자유가 나부꼈으니 시민들 역시 자유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중앙국립극장(현 국립극장)의 광고 ‘국립극단 공연’ 편(1957년 11월 28일, 「동아일보」)을 보자. “국립극단 제4회 공연”이라는 헤드라인 아래 연극의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하는 동시에 국내 일류 연기진이 총출연했다면서 호화 배역을 자랑하고 있다.

더욱이 하유상이 쓰고 박진이 연출한 「딸들은 연애자유 (戀愛自由)를 구가(謳歌)하다」(4막 7장)라는 공연 제목을 크게 제시했으니, 키워드를 확실히 전달하는 데에는 성공한 셈이다. 11월 28일부터 12월 5일까지 중앙국립극장에서 상연하는 동안 이 연극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_98~100쪽

3편 '정부광고의 국민계몽 캠페인: 해방 이후 한국의 풍경Ⅲ'. 사진=살림지식총서

끝 편인 3편(정부광고의 국민계몽 캠페인: 해방 이후 한국의 풍경3)에서는 역대 정부들이 국민을 어떻게 계몽하려 했는지 돌아보고 있다.

“아이 셋부터는 부끄럽다!”, “애연가가 불편하지 않도록 담배 공급에 힘쓰자!”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출생률이 낮은 나라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정부에서는 저출산 캠페인을 몇 십 년간이나 펼쳤을 정도로 공익광고의 단골이 출생률 저하 계몽 사업이었다.

1960년대의 “적게 낳아 잘 기르자”, 1970년대의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80년대의 “둘도 많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같은 계몽적 카피는 인구정책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심지어 ‘임신 안 하는 해’, ‘남성이 더 피임하는 해’, ‘나라사랑 피임으로의 해’를 정해 범국민적 계몽 사업을 전개하기도 했다.

정부와 기업의 계몽 캠페인용 광고는 너무나 일상적이기 때문에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하는 듯 보이지만, 몇 십 년간의 나무 심기 캠페인은 우리나라 산을 붉은 산에서 푸른 산으로 바꾸는 기적을 이뤄냈다.

<책 속으로... 슝~>

1960년대의 “적게 낳아 잘 기르자”, 1970년대의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80년대의 “둘도 많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같은 계몽적 카피는 인구정책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심지어 주부클럽연합회는 1974년을 ‘임신 안 하는 해’로, 1975년을 ‘남성이 더 피임하는 해’로, 1976년을 ‘나라사랑 피임으로의 해’로 정하고 범국민적 계몽 사업을 전개하기도 했다. (중략) 대한가족계획협회의 ‘부끄러움’ 편(1985년 8월 15일, 「동아일보」에서는 “셋부터는 부끄럽습니다”라는 헤드라인을 써서 아이가 많으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고는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이 대답하는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보디 카피는 다음과 같다. “선생님께서 물어보셨읍니다. ‘형제가 몇이지요?’ ‘저 혼자에요.’ ‘나랑 동생이랑 둘요.’ ‘우리 집은 셋이에요.’ ‘와- 많다.’ 친구들이 모두 쳐다보았습니다.” _4~5쪽

건설부(현 국토교통부)에서 경부고속도로의 준공을 경축하는 취지로 냈던 ‘현상공모’(1970년 7월 7일, 「경향신문」 내용이다. 광고에서는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 준공 현상 퀴즈 모집기간 연장 및 문예작품 당선작 발표일 연기”라는 헤드라인을 써서 위와 같은 퀴즈 문제를 냈다.

관제엽서에 정답을 한글과 아라비아 숫자로만 써서 회답하라고 했다. 시상은 1등에 코티나 자동차 한 대, 2등에 퍼브리카(public car) 한 대, 3등에 금성 텔레비전 한 대, 4등과 5등에 중소형 라디오가 각각 한 대씩이었다. _78~79쪽

김병희 서원대 교수. 사진=시장경제신문

<저자 김병희는>

저자는 현재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석사를 거쳐 한양대학교 광고홍보학과에서 광고학 박사를 받았다.

일리노이대학교 광고학과 교환교수, 『광고PR실학연구』 편집위원장,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한국언론학회‧미국광고학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여러 정부기관의 광고PR 정책자문을 하고 있다. 저서로 『광고로 보는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소비문화사』 『광고로 보는 근대문화사』 외 40여 권이 있으며, 「Level of Creativity and Attitudes towards an Advertisement」 「광고 창의성 측정을 위한 척도 개발과 타당성 검증」 외 1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광고 창의성 평가척도와 이론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갤럽학술상 대상(2011), 제1회 제일기획학술상 저술부문 대상(2012), 한국광고PR실학회 MIT(Most Interesting Topic) 논문상(2015)을 수상했으며, 세계 3대 인명사전(Marquis Who’s Who, IBC, ABI, 2011~2017) 모두에 광고 창의성 부문 전문가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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