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누구를 위한 카드수수료 인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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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누구를 위한 카드수수료 인하인가
  • 김보라 기자
  • 승인 2016.07.0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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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이면 내년도 사업계획뿐 아니라 목표달성 계획까지 마무리 단계여야 하는데…. 카드 수수료율 인하 방안이 생각보다 너무 늦게 발표됐어요."

얼마 전 기자와 만난 한 카드사 관계자의 푸념이다.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발표한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방안에 따르면 내년 1월 말부터 카드사들은 가맹점 매출 규모에 따라 수수료율을 최소 0.5%포인트에서 최대 0.7%포인트까지 인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모 카드사로부터는 내년 사업계획서를 아예 전면 백지화했다는 소리도 공공연히 들려왔다. 이 관계자는 연내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이 인하될 것이라는 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긴 했지만, 인하 폭이 예상 외로 너무 크다고 하소연을 늘어놨다.

그도 그럴 것이 현 시점에서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폭을 토대로 단순 계산해 본다면 연간 6700억원에 달하는 카드사들의 수익이 사라지게 된다. 이는 국내 주요 신용카드사 7곳이 올 들어 3분기까지 거둬 들인 당기순이익 1조4610억원의 절반에 가까운 액수다.

공교롭게도 내년 4월께 총선이 예정됐다. 영세·중소가맹점주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포퓰리즘(populism)'식 정책일 뿐이라는 오해를 받기 딱 좋은 상황이다. 안그래도 '카드 수수료 인하'는 매번 선거를 앞두고 추진되는 단골 정책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선거철만 되면 카드사가 항상 볼모가 돼 왔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가끔씩 흘러나온다.

이 뿐만이 아니다. 카드사들로서는 갑갑한 상황이 연달아 연출되고 있다. 결제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인데 경쟁사들은 속출하고 있는 탓이다. 핀테크 바람을 타고 결제시장에 나타난 '삼성페이' 발(發) 각종 페이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조만간 등장할 인터넷전문은행들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카드사들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이다.

이에 카드사들은 서둘러 비용 절감 방안을 모색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新)사업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것보다는 시간이 덜 걸리기 때문이다. 당장 줄어드는 이익만큼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부가서비스 혜택을 축소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때맞춰 당국은 신용카드의 부가서비스 의무유지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축소하는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을 내놨다.

또 일각에서는 카드업계 M&A설(說)도 모자라 인력 구조조정설까지 나도는 중이다. 한 업계 관계자도 "대형카드사들의 경우 비용을 줄이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는 인력 감축일 것"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물론 카드사들이 수십년간 가맹점들로부터 체계도 없는 수수료 산정을 토대로 배를 불린 점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특히 대기업에 편의를 봐주면서 영세·중소가맹점들에게 그 비용을 떠넘긴 부분도 반성해야 할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장 원리와 결제산업 생태계를 무시한 채 수수료 가격에 인위적으로 개입한 이 정책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해소되지 않는다.

앞서 금융당국은 서민층의 대부분인 영세 자영업자들의 카드가맹점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고자 발표하게 된 '서민금융정책'의 일환이라고 했다. 그러나 서민을 위한 이 정책이 소비자들에게 그 피해를 고스란히 전가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게 됐다. 아울러 카드사에 종사하고 있는 직원들을 일터 밖으로 내몰 수 있는 위협적인 정책으로 변모했다. 카드수수료 인하,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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