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후 물산 신용등급 2단계 올랐는데... 檢 "이재용 사익 위해 합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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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 후 물산 신용등급 2단계 올랐는데... 檢 "이재용 사익 위해 합병"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04.26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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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1차 공판, 쟁점 분석
검찰 "이 부회장 죄질 불량... 주주 손해" 강조
"합병 시너지 전혀 없고, 허위자료로 주주 기망"
辯 "주장 말고 입증해야... 공소사실 증명 全無"
"합병 후 물산, 부채 줄고 이익은 늘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부회장이 가장 유리한 시점을 선택해 (제일모직-삼성물산 간) 합병을 추진했다. 경영권 승계라는 합병 목적을 은폐하고, 핵심 정보를 왜곡하는 방법으로 시장을 기망했으며 이로인해 투자자들은 상당한 금전적 손해를 입었다." 

"검찰은 합병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다. 검찰의 손해 주장이 입증되려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공소장 어디에도 검찰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나 진술을 찾을 수 없다."

22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박정제·박사랑·권성수 부장판사 / 재판장 박정제, 주심 박사랑) 심리로 열린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1차 공판에서 가장 눈에 띈 점은 검찰의 전략 변화였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8시간 넘게 이어진 1차 공판은 검찰과 변호인단의 프리젠테이션 중심으로 진행됐다. 검찰은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주장이나 표현에서 몇 가지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주목할 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재용 부회장이 가장 유리한 때를 선택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추진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삼성의 조직적인 주가 조작으로 투자자들이 상당한 손해를 입었다는 설명이다. 두 가지 모두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검찰은 16년 말 출범한 박영수 특별검사 당시부터 이같은 시각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부각시키려는 포인트가 다르다. 지금까지는 '콜옵션 공시 누락 및 부채 은폐', '모직 혹은 물산 주가 시세 조작 의혹의 구체적 사례' 등을 강조했다면, 이번에는 이 부회장을 비롯한 이 사건 피고인들의 '죄질 불량'과 제3자가 받은 '손해'에 초점을 맞췄다는 데 차이점이 있다. 

검찰의 전략 변화는 다분히 모험적이다. 위 전략이 성공을 거두려면 재판부가 일정한 심증을 가질만큼 주장 사실이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공소사실을 입증할만큼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가 이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영장 청구를 기각한 이유도 '소명 부족'이 결정적이었다.

같은해 6월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이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중단' 및 '불기소'를 의결한 이유도 같다. 심의위는 검찰 측에 의견 진술의 기회를 부여했으나 이복현 부장검사를 비롯 이 사건 수사팀은 심의위원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심의에 참여한 복수의 민간전문가는 "검찰이 이 부회장 혐의를 입증할만한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대검 수사심의위 의결 뒤 검찰 수사팀의 자문에 응한 민간전문가도 같은 의견을 냈다. 그는 "10시간 넘게 검사실에 머물면서 검찰이 보여주는 각종 자료를 봤지만 이 부회장을 기소할만한 문건은 없었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일정한 심증을 가질 정도로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지 못한다면, 검찰 스스로 공소사실의 신뢰도 훼손을 자초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날 프리젠테이션 후 벌어진 검찰과 변호인단 사이 법정 공방에서도 검찰의 전략은 한 차례 위기를 맞았다. 검찰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이 부회장의 사익을 위해 추진됐다"며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철저하게 부인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자 변호인단은 "합병 후 기업 신용등급이 두 단계 상승하고 영업이익은 증가했으며 부채는 감소했다"고 받아쳤다. 변호인단의 반박에 검찰은 재반박을 하지 못했다.
 

檢 "이 부회장 사익 위해 합병 추진" 
"합병 시너지 전혀 없다"

검찰이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경영진 11명에게 적용한 혐의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와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외부감사법 위반 등이다. 

검찰은 자신들이 작성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이렇게 정의내렸다.

”이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 확보가 필수적이었으며, 이를 위해 삼성물산 합병을 추진했다. 이 사건은 이 부회장이 자신에게 유리한 합병 시점을 마음대로 선택해 물산과 그 주주들에게 손해를 가하고, 오히려 합병이 적정했다고 회계보고서를 조작해 유포한 사건."

검찰은 합병 과정에서 이 부회장과 삼성 미래전략실이 주주들에 대한 이익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합병 목적을 허위로 설명했다고 부연했다. 경영권 승계라는 합병의 본래 목적을 숨긴채 허위 사실로 기관투자자를 비롯한 주요 주주를 기망했다는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재무제표 조작(분식)은 시장 참여자들을 기망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행해졌다고 검찰은 곁들였다. 

검찰은 “변호인들이 공소사실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거나 호도하고 있다”면서 “이 부회장의 사익 목적으로 이뤄진 합병은 핵심 사항에 대한 기망을 전제로 하며, 합병의 경과와 시점 선택 경위 등이 필연적으로 연결된다”고 했다. 

특히 검찰은 합병의 시너지 효과에 대한 변호인단의 항변을 전면 부정했다. 

"변호인들은 시너지 효과가 6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 아래 합병을 추진했다고 하는데, 시너지 효과를 계산하는 과정에 위법이 있어 공소를 제기한 것."
 

합병 후 기업 신용등급 2단계 상승... 檢 주장과 달라 

변호인단은 합병 당시 물산의 가치가 저평가됐다는 주장에 대해 “2010년 이후 공격적인 경영으로 해외 수주에 나서는 과정에서 수익성이 떨어졌고, 국내 건설경기도 침체된 시기였다”고 시장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삼성물산 경영진은 제일모직과의 합병으로 재무건전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합병 후 삼성물산의 영업이익은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부채비율도 줄어들었다”며 “국내 신용등급은 2단계 상승했고 신재생에너지프로젝트와 해외 테마파크 공사에 참여하는 등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반박했다. 

결론에서 변호인단은 “물산 경영진은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고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합병을 추진한 것이지만 검찰은 허위명분이라고 주장한다”며 “공소장 어디에도 이것이 왜 허위명분인지 뒷받침하는 증거나 진술상황을 찾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삼바 분식회계' 의혹 檢 주장
변호인단 반박논리 넘지 못해

검찰은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도록 합병비율이 조작됐다는 기존 주장을 다시 들고 나왔다. 합병비율 조작을 위해서는 이 부회장이 지분을 보유한 제일모직 주가는 높이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추는 인위적 시세 조종이 필요했으며, 그 수단으로 삼바 분식회계가 행해졌다는 것이 검찰 주장의 요지이다.

합병 전 제일모직은 삼성바이오 지분 45.7%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검찰은 제일모직 주가를 높이기 위해 자회사인 삼바 재무제표를 분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 ‘콜옵션’ 존재를 고의로 은폐해, 콜옵션 상당 부채를 감췄다는 것이다.

콜옵션은 사전에 정해진 가격에 따라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2012년 삼성바이오는 미국계 글로벌 제약기업 바이오젠과 공동으로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합작·설립했다. 에피스 설립 당시 이 회사 지분 비율은 삼 85%, 바이오젠 15%였다. 바이오젠은 향후 에피스 지분을 최대 50%-1주까지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을 보유했다.

삼성바이오는 2012년 재무제표를 작성하면서 에피스를 단독지배기업(종속기업, 자회사)으로 판단하고, '연결회계'를 적용했다. 회사 측은 이 판단을 2014년까지 유지하다가 2015년 변경했다. 삼성바이오가 에피스에 대한 회계처리 방식을 변경하게 된 배경에는 ‘콜옵션’이 있었다.

그해 9월과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에피스가 개발한 바이오시밀러(복제약) 2종의 판매를 허가했다. 삼바는 에피스 주식가치가 급등할 것으로 보고, 공동투자자인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에 따라 삼바는 에피스를 단독지배기업이 아닌 '공동지배기업'(삼바-바이오젠 공동지배)으로 판단, 지분법 회계를 적용했다. 지분법 회계를 적용하면서 에피스의 지위는 종속기업에서 관계사로 바뀌었다.

콜옵션은 ‘지배력이 현실화됐을 때’ 비로소 경제적 실질을 갖는다. 콜옵션의 지배력이 현실화됐는지 여부는 회계학상 ‘내가격 요건’의 충족 여부로 판단한다. 여기서 말하는 ‘내가격’이란 당해 기업의 주식가격이 콜옵션의 행사가격보다 높은 경우를 말한다. 2015년 삼바는 ’내가격 요건‘이 충족됐다고 판단, 에피스를 바이오젠과 ‘공동지배’하는 관계사로 보고 연결 회계가 아닌 지분회계를 적용했다.

지분회계를 적용하는 경우, 자산과 부채 모두 장부가격(취득원가)이 아닌 공정가격(시장가격)으로 산정한다. 이는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이 정한 원칙이다. 지분회계를 적용하면 바이오젠 보유 콜옵션은 ‘부채’(평가손)로, 삼바가 보유한 에피스 주식은 ‘자산’(평가익)으로 각각 산정해 재무제표에 반영된다. 이때 기준이 되는 가격은 장부가격이 아닌 시장가격(시가)이다.

검찰은 ‘바이오젠 보유 콜옵션이 공개되면 이를 부채로 계상해야 하고, 이 경우 삼바는 자본잠식에 빠질 위험이 있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는 삼바 분식회계를 의결한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와 이 사건 의혹을 처음 고발한 참여연대의 시각과 동일하다.

제일모직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자회사인 삼바가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는 상황을 막아야 했으며 그 전제 조건으로 콜옵션 부채를 은폐했다는 검찰 시각에 동의하는 회계전문가는 드물다. 취재 중 만난 대부분의 회계학 교수와 공인회계사들은 검찰 논리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삼바가 보유한 에피스 주식은 ‘50%+1주’이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평가익이 평가손보다 높다. 즉 콜옵션을 재무제표에 반영해도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콜옵션 상당 부채를 감추기 위해 삼바 재무제표를 분식했다는 검찰 논리가 성립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변호인단은 “검찰은 콜옵션이 지배력 판단에 당연히 고려해야 하는 실질 권리인 것처럼 주장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행사로 인해 경제적 효익이 있어야 지배력 판단에 고려될 수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에피스에 대한 2015년 회계처리 변경은 회계기준을 준수해 이뤄진 것으로 재무제표는 거짓으로 작성된 게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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