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사미 화장품법②] '기능성화장품' 품목 늘리고 욕먹는 식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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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사미 화장품법②] '기능성화장품' 품목 늘리고 욕먹는 식약처
  • 최지흥 기자
  • 승인 2021.04.2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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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성화장품 품목 확대, 업계 부담만 가중
이해관계 얽힌 단체 반발에 용어 정의 애매
품목별 '단서 조항' 줄줄이... 업계, 규제로 인식
표시 규정 완화 의미 퇴색... 시장 활성화 역행
김강립 식약처장. 사진=시장경제DB
김강립 식약처장. 사진=시장경제DB

<편집자 주> 최근 화장품 업계는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으로 이른바 ‘멘붕’ 상태다. 업계에 '플라스틱 퇴출 대책' 마련을 주문한 환경부가 소비자단체 반대에 부딪히자 정책을 돌연 원점으로 되돌렸기 때문이다. 업계는 그동안 추진한 노력이 공염불이 됐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정부가 화장품 산업 발전을 위해 단행한 법안들도 실효성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대표적인 법안은 식약처가 주도한 화장품 책임판매관리자, 기능성화장품 확대, 맞춤형화장품 제도 등이다. 글로벌 시장 공략, 일자리 창출 등 거창한 구호를 내세웠지만 '용두사미'로 끝나는 분위기다. <시장경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화장품 법안의 실태와 문제점을 3회에 걸쳐 들여다 본다.

☞ 관련기사 : [용두사미 화장품법①] 믿지도 찾지도 않는 '책임판매관리자'

 

기능성화장품 늘었지만 업계에는 오히려 부담

화장품 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로 추진된 기능성화장품 품목 확대가 오히려 업계에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해관계가 얽힌 단체들의 반발과 불명확한 정의 등으로 업계에 혼란만 야기하는 모양새다.

2017년 개정된 화장품법으로 그동안 주름개선, 미백, 자외선차단제 3개에 불과했던 기능성화장품이 11개로 늘어났다. 의약외품으로 관리되던 제품들이 화장품으로 전환되고, 그동안 광고 표시 규정에 따라 어려웠던 내용들이 수용되면서 기능성화장품 시장이 확장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았다.

실제로 염모제, 탈염·탈색제, 제모제, 탈모방지제, 욕용제 등의 의약외품이 기능성화장품으로 전환됐고 튼살, 아토피(2019년 명칭 변경), 여드름 피부를 위한 제품도 함께 추가됐다.

그러나 법 개정 이후 의사단체를 중심으로 화장품에 '아토피'라는 용어를 사용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2019년 ‘아토피’ 용어를 사용할 수 없게 하고, 대신 ‘피부장벽의 기능을 회복하여 가려움 등의 개선에 도움을 주는 화장품’으로 표기할 수 있도록 했다. 제품 중에는 아토피 완화 기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해당 용어를 사용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된 것이다.

표현 문구나 말도 어렵다. 주름개선, 미백, 자외선 차단 같은 기존 기능성화장품 표현과 달리 새롭게 만들어진 기능성화장품은 단서조항들이 붙었다. 염모제, 탈염·탈색제 등은 모발의 색상을 변화(탈염(脫染)·탈색(脫色)을 포함한다)시키는 기능을 가진 화장품이라고 했지만 '다만, 일시적으로 모발의 색상을 변화시키는 제품은 제외한다'는 단서 조항이 붙었다.

또 제모제는 '체모를 제거하는 기능을 가진 화장품'으로 명명됐지만 '다만, 물리적으로 체모를 제거하는 제품은 제외한다'는 단서 조항이 달렸다. 탈모방지제도 '탈모 증상 완화에 도움을 주는 화장품'이라고 해놓고 '다만, 코팅 등 물리적으로 모발을 굵게 보이게 하는 제품은 제외한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업계에서 가장 큰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여드름 관련 기능성화장품이다. '여드름성 피부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화장품'이라는 기능성화장품을 만들었지만 인체세정용 제품류로 한정하면서 크림, 에센스, 앰플 등 다른류의 제품은 아예 여드름 관련 표시를 못하게 규제했다.

물론, 세정용 제품 외에도 광고를 할 수는 있다. 기능성화장품은 세정용 제품만을 허가 받지만 임상을 통해 여드름에 적합한 화장품이라는 것을 입증하면 그 외의 제품들도 '여드름에 적합한 화장품'이라는 표시를 할 수 있게 해줬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시장에는 의약품인 치료제와 여드름성 피부를 완화하는데 도움을 주는 기능성화장품, 그리고 여드름에 적합한 화장품이라는 일반 화장품이 동시에 판매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능성화장품으로 인정받기 위한 임상비용도 만만치 않다. 특히 여드름 적합 화장품의 임상 비용은 1억원이 넘을 때도 있다. 새롭게 생긴 기능성화장품이 화장품 산업 활성화와는 동떨어진 정책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실제로 2019년 식약처가 발표한 기능성화장품 생산실적 자료에 따르면 새롭게 만들어진 기능성화장품은 이미 의약외품으로 시장에 자리 잡고 있던 염모제, 탈모 완화 제품을 제외하면 극히 일부에 국한됐다.

그나마 여드름성 피부 완화 제품이 102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제모는 26억원, 튼살로 인한 붉은선 완화는 11억원에 불과했다. 전체 기능성화장품 생산실적이 5조원에 달하고, 염모제와 탈모 완화도 2000억원 이상이라는 것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낮은 수치다.

무엇보다 일반 기능성화장품이 기존 제품들과 비교해 가격대가 높은 반면, 여드름성 피부 완화 등의 제품은 세정제가 주류를 이뤄 가격대도 낮은 수준이다. 

최근 미국 FDA의 ‘OTC 모노그래프 드럭’(비처방 의약품)과 관련한 새로운 규정 적용방침이 발표됨에 따라 미국 수출을 위한 OTC 제품을 제조하는 화장품 기업의 경우 매년 FDA 등록비로 1,000~2,000만원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만약 이 규정이 적용되면 OTC 제품에 해당하는 여드름 관련 제품들은 미국 수출을 위해서 또 다른 비용 부담을 안게 된다.

현재의 기능성화장품과 관련된 정책들은 화장품산업 활성화 의지에 역행한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능성화장품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기능을 확실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법은 시장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또, 과도한 비용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산업 활성화를 위해 만들었지만 이제는 규제로 인식되는 것은 왜일까. 기능성화장품 품목 확대는 이렇다할 성과도 내지 못한채 5년이라는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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