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戰, 美중재로 극적 합의... 결정타는 LG엔솔 '특허 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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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戰, 美중재로 극적 합의... 결정타는 LG엔솔 '특허 패소'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04.1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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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LG 분쟁 '마침표'... 전문가들이 꼽은 이유 셋
'중재' 팔걷은 바이든... SK이노-LG엔솔 합의 압박
"K-배터리 공멸 위기" 국내 전문가 호소도 한 몫
ITC 특허침해 예비판정 후 LG엔솔 내부 기류 변화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 사진=NewsAndPost 뉴스앤포스트 유튜브 캡처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 사진=NewsAndPost 뉴스앤포스트 유튜브 캡처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이 전기차용 배터리를 놓고 수년째 이어온 소송전이 마침표를 찍게 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시한을 불과 하루 앞두고 양사가 전격 합의에 이른 것이다. 미국 조지아주에서 건설 중인 SK이노 배터리 제조 공장도 예정대로 문을 열 수 있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의 배경으로 ▲미국 내 전기차 공급망 확대를 원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적극적인 중재 ▲국내 배터리 산업의 공멸만은 피하자는 위기의식 ▲합의에 미온적이던 LG에솔 내부의 기류 변화 등 3가지를 꼽았다. 

현지시각으로 10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로이터, 블룸버그 등 매체는 양사의 극적 합의 소식을 속보로 전했다. 이들 매체는 바이든 행정부와 적극적인 중재 아래 양사가 큰 틀의 합의에 이르렀으며, 구체적 합의안을 조율 중이라고 곁들였다. 두 기업의 극적 합의는 'K-배터리 공멸 위기 해소'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배터리 특허침해 여부를 둘러싼 두 기업간 소송은 국내와 미국에서 각각 진행됐다. 2011년 12월 옛 LG화학의 특허침해 소송 제기로 촉발된 국내 분쟁은 2014년 양사가 부제소 합의에 이르면서 마무리됐다. 그 사이 두 기업은 서울중앙지법, 특허심판원, 특허법원, 대법원을 경유하며 법적 공방을 벌였다. 특허심판원과 특허법원, 파기 후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모두 LG 측 청구를 기각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양사 갈등은 19년 4월 LG화학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에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장을 접수하면서 재현됐다. SK이노는 같은 해 9월 특허침해 소송을 USITC에 제기하면서 대응에 나섰다(특허침해 1차 사건). SK이노의 특허침해 소송에 LG는 반소로 맞섰다(특허침해 2차 사건). SK이노는 2건, LG엔솔은 4건의 특허를 상대방이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두 사건 중 1차 사건의 증거조사절차가 지연되면서 위원회는 2차 사건 심리에 먼저 착수했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반전' 거듭한 배터리 소송 
영업비밀침해, 특허침해 ITC 판정에 희비 교차 

영업비밀침해 사건에서는 LG가 웃었다. 올해 2월10일 USITC는 SK이노 생산 배터리의 수입 및 미국 내 생산을 금지하는 명령을 발표했다.

LG앤솔 측은 이 사건 심리과정에서 SK이노가 영업비밀 침해 관련 증거를 삭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위원회 행정법판사는 SK이노 일부 직원의 이메일 삭제 정황 등을 확인하고 예비판정(Initial determination)을 통해 'SK이노 조기 패소'를 결정했다. SK이노 변호인단은 삭제된 이메일 등은 이 사건 쟁점과 관계가 없다고 항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위원회의 수입금지명령은 이같은 조기 패소 결정을 그대로 인용한 결과였다. USITC의 최종 의결에 SK이노 측은 "쟁점인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한 판단 없이 나온 명령'이라며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LG엔솔이 승기를 잡은 양 사간 분쟁은 3월31일 위 특허침해 2차 사건 예비판정이 나오면서 뒤집혔다. USITC는 'SK이노가 4건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LG엔솔 청구를 기각하고 'LG엔솔 조기 패소'를 결정했다.

위원회 행정법판사는 LG 측이 핵심 특허라고 주장한 안전성강화분리막(SRS) 517 특허의 유효성은 인정했으나 침해 주장은 배척했다. 나머지 SRS 특허 2건과 양극재 특허 1건에 대해서는 특허 유효성을 부인했다. SK이노가 제기한 특허침해 1차 사건 예비판정은 올해 7월30일로 예정됐다. 

상당수의 국내 전문가들은 "특허침해 사건은 영업비밀침해와 양상이 다를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LG엔솔이 원고인 영업비밀침해 사건은 '증거조사절차(Discovery) 위반'이 패소의 결정적 이유로 작용했으나, 특허침해 사건에선 이런 변수가 발생하지 않았다. 전문가들 가운데는 LG화학이 국내 특허침해를 주장하며 소를 낼 때부터, 이 사건 청구에 의문을 제기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LG 측이 핵심 특허로 지목한 SRS 특허 가치가 실제보다 과장돼 있으며, '진보성'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SK 조지아 공장의 차질없는 건설과 운영'이 대통령 거부권 행사 여부를 좌우할 주요 변수로 떠오르면서, LG측은 최근 조지아 공장의 인수 가능성을 언론에 흘린바 있다. 사진=MBC뉴스화면 캡처

 

특허침해 2차 사건 ITC 예비판정 '변곡점'
"특허사건은 SK가 유리" 전문가 견해 입증  

'배터리 전문가'인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침해를 입증하기 용이한 특허가 가장 좋은 특허"라면서 "SK이노 보유 특허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LG엔솔의 특허는 소재특허라 침해 입증이 매우 어렵지만, SK이노 특허는 시중에 판매되는 전기차 탑재 배터리를 분해하면 바로 침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허소송에서는 SK이노 측이 한결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부연했다. 

일부 전문가는 이런 사실을 전제로 "7월30일 특허침해 1차 사건 예비판정이 나오면 LG 측이 배터리 수입금지 명령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조심스런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 경우 K-배터리는 공멸을 피할 수 없다"며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두 기업의 대승적 합의가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양사 합의 이끈 3가지 이유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의 배경으로 3가지를 꼽고 있다. 

하나는 바이든 행정부의 적극적 중재이고 두 번째는 국내 전문가들이 지적한 'K-배터리 공멸 위기감'이다. 세 번째는 합의에 매우 부정적이던 LG엔솔 내부의 기류 변화이다. 

양사 극적 합의 이면에는 바이든 행정부의 적극적인 중재가 있었다는 것이 합의과정에 정통한 인사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백악관의 대통령 자문그룹과 바이든 행정부 고위관료들은 전기차 확대 정책의 차질없는 추진을 위해서는 '양사 합의'를 넘어서는 해법은 없다는 판단 아래, 이번주 중반부터 양사 관계자들과 접촉을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 합의가 불발된다면 미국 전기차 시장의 대 중국 의존도가 심화될 것이란 우려 역시 이같은 판단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관측된다. 미 유력지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합의는 미국 전기차 공급망 확대·구축을 원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국내로 시각을 돌리면 이른바 'K-배터리 공멸'에 대한 위기의식도 합의를 이끌어낸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양사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을 경우, 그로 인한 이득은 두 기업 중 한 곳이 아니라 중국 기업들이 가져갈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에 이견을 다는 전문가는 없다. 소송이 장기화되면 두 기업 모두 심각한 내상을 피할 수 없고, 양사가 소송에 역량을 집중한 사이 그 빈틈은 중국산 배터리의 차지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이런 현실은 'K-배터리' 전체의 글로벌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폭스바겐그룹은 차기 전기차 플랫폼 탑재 배터리로 국내 업체가 시장을 장악한 '파우치형' 배터리가 아닌 '각형' 배터리를 선택했다. 각형 배터리는 CATL을 비롯한 중국 기업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영업비밀침해와 결이 다른 특허침해 사건 진행 경과가 LG 측의 입장 선회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진단도 있다. 

이 사건 LG 측의 내부 대응 전략을 잘 아는 A변호사는 "특허침해 2차 사건 예비판정이 나오면서 내부 분위기에 변화가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내부적으로 특허침해 2차 사건 예비판정에서 승리를 자신했으나 기대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면서 상황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의견대로 특허침해 1차 사건 예비판정에서 SK이노 승소 결정이 나오면, 상황은 급변한다. 최악의 경우 LG엔솔 배터리에 대한 '수입금지 명령'이 나오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LG엔솔과 SK이노는 한국시간으로 11일 오후, 언론사에 배포한 공동입장문을 통해 합의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입장문에 따르면 양사는 현재 계류 중인 배터리 관련 국내외 모든 소송을 취하하고 향후 10년간 추가 쟁송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양사 협상의 걸림돌로 지적된 합의금은 총액 2조원(현금, 로열티 각 1조원)으로 정해졌다. SK이노는 합의된 방법에 따라 위 금액을 LG엔솔에 지급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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