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압수물 왜 2년째 안돌려주나"... 삼바 방어권 침해 도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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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압수물 왜 2년째 안돌려주나"... 삼바 방어권 침해 도마위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04.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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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 증거인멸 항소심' 9차공판 분석
'열람등사·압수물 증거 효력' 놓고 檢·辯 신경전
검찰 "증거목록상 은닉 증거 2600만개"
변호인단 "상당수 파일 회계와 무관, 특정 안 돼"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삼성바이오로직스 증거인멸 의혹 사건' 항소심 공판에서 변호인단의 증거목록 기재 전산파일 '특정' 요청에 검찰이 난색을 표하며 거부의사를 나타냈다. 이 사건은 분식회계 의혹으로 금감원 등의 조사를 받던 피고 법인 소속 임직원 일부가 사내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 중 일부를 삭제한 정황이 발견되면서 불거졌다. 검찰은 삼바 임직원들이 삭제 혹은 은닉한 것으로 의심되는 전산파일 등을 증거목록으로 만들어 재판부에 제출했다. 문제는 증거목록상 삭제 혹은 은닉한 것으로 의심받는 전산파일의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검찰 은 삼바 임직원이 삭제 혹은 은닉한 전산파일이 2600만개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이 가운데 상당수는 '본죄'(분식회계 의혹)와 전혀 관련이 없으며, 시스템 파일과 같이 사실상 의미가 없는 파일도 다수 섞여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이들 파일이 실제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이 있는지 살피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변호인단은 이들 파일과 '본죄'와의 관련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피고의 방어권이 본질적인 침해를 당한다고 항변했다. 

증거목록 기재 파일에 대한 특정 없이 심리가 진행된다면, '삭제 또는 은닉 파일이 2600만개에 달한다'는 검찰 공소사실이 재판부 심증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이다. 변호인단은 "증거목록 기재 파일들과 이번 사건의 연관성을 먼저 특정하지 않으면 양형 심리가 부당하게 이뤄질 수 있다"며 거듭 증거목록 기재 파일에 대한 특정을 요청했다.

재판부는 “구체적인 파일 숫자는 크게 의미가 없고, 결국 유의미한 증거를 숨긴 것인지 여부가 양형인자”라며 변호인단 항변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증거목록 기재 전산파일의 특정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목록 기재 파일의 수가 워낙 많아 현실적으로 변호인단의 요청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사건 심리를 현재 진행 중인 '삼성바이오 vs 증권선물위원회 행정소송' 1심 선고 결과가 나올때까지 늦추자는 변호인단 요청에 대해서는, "진행 상황을 지켜보자"면서 유보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30일 서울고법 형사2부(윤승은 김대헌 하태한 부장판사)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임직원 등 7명의 증거인멸 의혹 사건 9차 공판기일을 열었다. 2월 법원 정기인사이동으로 재판부 인적구성이 바뀐 이후 처음 열린 이날 공판은 공판갱신 절차에 시간을 할애했다. 

이 사건에서 증거에 대한 삭제·은닉행위가 이뤄졌다는 점에선 검찰과 변호인단 간에 이견이 없다. 양측이 다투고 있는 쟁점은 은닉·삭제 과정이 그룹의 지시 하에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이뤄졌는지 여부다. 

변호인단은 "2016년 11월부터 2018년 4월까지 약 1년6개월 동안 검찰 압수수색이 한 달에 한 번꼴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일부 직원들이 '조금이라도 오해를 살만한 자료는 지우자'는 마음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의혹은, 회계 기준 적용에 대한 해석의 문제일 뿐 분식은 아니라는 것이 변호인단의 일관된 판단이다. 이는 본안사건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승계 의혹 공판과 행정법원에서 진행 중인 증선위 제재처분 취소소송에서 다투고 있는 내용이다. 

[편집자주] 

앞서 2012년 삼성바이오는 미국계 글로벌 제약기업 바이오젠과 공동으로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합작·설립했다. 양사 합의에 따라 에피스 경영권은 삼성바이오가 단독 행사했다. 설립 당시 바이오젠의 에피스 보유지분은 15%에 불과했다. 바이오젠은 신생기업인 에피스의 경영권을 삼성바이오에 넘기는 대신, 추후 에피스 보유지분을 ‘최대 50%-1주’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콜옵션)을 보유하는 약정을 체결했다.

삼성바이오는 2012년 재무제표를 작성하면서 에피스를 단독지배기업(종속기업, 자회사)으로 판단하고, '연결회계'를 적용했다. 회사 측은 이 판단을 2014년까지 유지하다가 2015년 변경했다. 그해 9월과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에피스가 개발한 바이오시밀러(복제약) 2종의 판매를 허가했다. 

삼성바이오는 에피스 주식가치가 급등할 것으로 보고, 공동투자자인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2015 회계년도 재무제표에서 삼바는 에피스를 단독지배기업이 아닌 '공동지배기업'(삼바-바이오젠 공동지배)으로 인식, 이때부터 지분법 회계를 적용했다. 지분법 회계를 적용하면서 에피스의 지위는 종속기업에서 관계사로 바뀌었다.

삼성바이오측은 “바이오젠 보유 콜옵션의 지배력 현실화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충족한 이상 에피스를 더 이상 종속회사로 묶어둘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달리 검찰과 증권선물위원회는 '에피스는 설립 당시인 2012년부터 관계사로 봤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시각을 적용하면, 이재용 부회장 경영권 승계를 돕기 위해 조직적인 분식에 이르렀다는 검찰 논리는 출발점부터 모순에 빠진다. 2012년은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건재하던 시기였다.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 문제는 선대회장이 뇌질환으로 쓰러진 2014년 이후 불거졌다.   

일반적으로 분식회계 혐의가 사실이 아니라면 증거인멸 혐의도 성립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검찰은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검찰 수사가 예상되는 시점에 증거에 대한 인멸행위가 이뤄졌을 경우 본안사건과는 별개로 증거인멸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사진=시장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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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수 증거 '특정' 여부 놓고 檢-辯 '신경전'

검찰과 변호인단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부분은 압수된 증거 등에 대한 특정 여부이다. 19년 5월 검찰은 삼성바이오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18TB(테라바이트) 용량의 구 서버 2대, 54TB급 백업서버 1대를 확보했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삼바 임직원들이 전산파일 2600만개를 은닉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이 사건과 관계없는 파일이 다수 증거에 포함돼 있어 양형에 부당한 요소로 작용하는 만큼, 증거를 특정할 필요가 있다”고 반박했다. 각 파일의 내용을 파악해 이 사건과의 연관성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 변호인단 입장이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이날 공판에서도 증거목록 특정과 관련돼 신경전을 벌였다.  

검찰은 현실적으로 개별 파일을 열어 그 내용이 실제 회계와 관련했는지 대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반면 변호인단은 시간이 걸려도 내용을 살피는 작업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양형심리가 부당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재판부는 '삼성바이오 vs 증선위 행정소송' 결과를 본 뒤 심리를 속행해 달라는 변호인단 요청에 “속행기일을 잡으면서 반영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행정소송은 속행기일이 많이 진행된 상태라 결과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라고 부연했다.  

삼성바이오가 2018년 11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제재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행정소송은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이 소송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삼바 증거인멸 의혹 사건’ 항소심과 '삼성물산 부당 합병 및 삼성바이오 분식 의혹 사건' 등 형사사건의 선고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판단을 내리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증거인멸 의혹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행정소송 결과를 보겠다는 의중을 나타내면서, 향후 심리가 중단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압수수색 증거 돌려주지 않은 검찰

변호인 "방어권 침해 소지"

변호인단은 증거목록에 대한 열람등사와 관련해 검찰의 허를 찌르기도 했다. 검찰이 압수한 자료를 2년이 넘도록 돌려주지 않아 피고 방어권이 침해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변호인단의 지적은 대법원 판례에서도 확인되는 사안이다. 대법원은 2015년 7월 검찰이 혐의와 무관한 방대한 양의 디지털 정보를 압수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디지털 증거도 현장에서 혐의와 관련된 것만을 출력하거나 복사해 가져오는 게 원칙”이라며 “현장 사정이 여의치 않거나 자료가 방대해 즉석에서 처리하기가 곤란할 경우, 예외적으로 하드디스크를 수사기관에 가져가 복제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변호인단은 “통상적인 디지털 증거물 압수에선 원본을 회사에 남겨야 하는데 이번 사건은 검찰이 원본을 모두 가져가버렸다”며 “해당 저장매체에는 변론에 사용할 수 있는 문건이 많이 있을 것으로 사료되는데 전혀 쓰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사본이라도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은 본안사건의 유무죄와 법리적으로 관련이 없고, 은닉한 증거를 압수한 것일 뿐”이라며 “저장매체에 어떤 자료가 들어 있는지는 본안 사건에서의 방어권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거부 의사를 나타냈다. 

재판부는 '교사범의 공동정범' 성립 여부와 관련된 통화내역 자료를 변호인단이 먼저 받아볼 수 있도록 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 재판부는 "다른 내역에 대해서도 열람등사가 필요하다면 검찰과 상의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 사건 다음 기일은 6월 15일로 예정됐다. 서울고법 417호 대법정에서 속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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