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정치 입김에 '주 4일제' 실험대상 되나
상태바
기업은행, 정치 입김에 '주 4일제' 실험대상 되나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1.03.31 08: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주 4.5일' 공약 도화선
IBK 기업銀 노조 "2023년까지 도입 추진"
업계 "시기상조, 국책은행 본연 기능이 먼저"
IBK기업은행 전경. 사진=시장경제DB
윤종원 IBK기업은행장. 사진=시장경제DB

IBK기업은행 노조가 금융권 최초로 '주 4일제' 도입 방침을 시사했다. 여권의 제안에 화답하는 모양새다.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금융권에선 시기상조라는 시각이 많다. 일각에선 "정치권의 '입김'으로 국책은행 본연의 기능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주 4일제는 국내 IT업계에서 물꼬를 텄다. 29일 카카오 게임즈는 2018년 7월부터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쉬는 '놀금'을 4월부터 격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카카오 게임즈는 '놀금' 이전에도 월요일 출근시간을 오전 10시 반으로 늦추고, 금요일은 5시 30분에 조기 퇴근하도록 했다.

주 4일제는 근로자가 일하는 시간을 줄여 과로사 등 재해를 예방하고, 남는 시간 만큼 구직자에게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제안됐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IBK기업은행 노조는 최근 업계 최초로 주 4일제 도입을 예고했다. 기업은행 노조는 올해부터 2023년까지 중·장기적 목표로 주 4일제를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IBK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아이디어 차원이었지만 국내외 정치권과 노동계에서 주 4일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어 기업은행을 필두로 향후 차분히 논의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 4일제는 다음달 7일에 있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주 4.5일제'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현실성 없는 포퓰리즘 공약'이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왼쪽부터 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후보. 사진=KBS뉴스 화면 캡처
왼쪽부터 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후보. 사진=KBS뉴스 화면 캡처

 

"정치권 이슈, 여과 없이 금융권 흔들어" 우려 

업계 내에선 작년 8월 현직 금융노조위원장 최초로 집권여당 최고위원에 임명된 박홍배 금융노조위원장과 2월 기업은행 신임 상임감사로 선임된 정재호 전 민주당 의원 등이 금융권 주 4일제 도입의 메신저로 거론된다.

이를 두고 금융권 일각에선 "여권과 금융권의 교량 역할은 긍정적일 수 있지만, 정치 이슈가 금융권으로 무리하게 투사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IBK기업은행 노조의 주 4일제 제안 역시 최근 여권의 행보와 발맞춰 진행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례로 이달 5일 발행된 IBK기업은행 조합원 내부 소식지는 '여권발 주 4일 근무제 논의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등의 주 4일제 관련 주장을 소개하고 이를 세계적인 추세라고 강조한 바 있다.

반면 업계에선 "당장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우선 법이 정한 노동시간을 바꾸는 것은 시장의 권한이 아니며,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해서 단시간에 마무리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 4일제 시행 기업을 지원할 재원 마련도 문제로 지목된다. 만약 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이 무리하게 주 4일제를 강행할 경우 국민 세금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IBK기업은행 측은 주 4일제와 관련 "아직 정식으로 논의된 바 없다"고 선을 그은 상태다. 

 

전문가들 "정부 강요 안돼... 개별적으로 판단할 문제"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 금소법 시행으로 고객 상담 시간이 길어져 고객 불만이 높아진 상황인데, 만약 은행권이 주 4일제를 시행한다면 편의성이 상당히 낮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은행의 일 근무시간을 현재 16시에서 연장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도 "주 4일제는 여건이 되는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실시하면서 보완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면서 "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첫 '실험 대상'이 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말했다.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30일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주 4일제의 실익과 별개로 정부가 주도하는 데 따른 부작용을 우려했다. 

김승욱 교수는 "(주 4일제 등을) 정부가 법으로 정하면 섬세하게 각 기업의 사정을 반영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 "과거에도 선제적으로 정부가 근로시간을 단축시킨 사례가 있고 결과적으로 초과 근무수당으로 임금 인상 압박 요인이 됐던 경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근로일수를 줄여도 될 정도로 생산성이 높아진 후에 정부가 법으로 근로시간을 정하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강조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