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SK '공멸' 현실화... K배터리는 왜 폭스바겐에 버림 받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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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SK '공멸' 현실화... K배터리는 왜 폭스바겐에 버림 받았나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03.25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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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SK 분쟁 신물난 폭스바겐, 中 CATL로 선회
애증 대상 된 LG엔솔-SK이노, 신뢰도 하락 자초
결국 '파우치형' 아닌 '각형' 선택... 'K배터리' 외면
미국 땅에서 벌이는 분쟁, 공급 불확실성 확산
"中만 어부지리, 공멸 피하려면 감정싸움 멈춰야"
지난 24일 트럼프 행정부 초기 법무부장관대행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反) 이민 행정명령에 반기를 들었던 샐리 예이츠(Sally Yates) 전 美 연방정부 법무부차관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의 ‘LG에너지솔루션 vs SK이노베이션 영업비밀 침해 사건’ 최종 의결과 관련돼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사진=YTN뉴스화면 캡처
지난 24일 트럼프 행정부 초기 법무부장관대행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反) 이민 행정명령에 반기를 들었던 샐리 예이츠(Sally Yates) 전 美 연방정부 법무부차관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의 ‘LG에너지솔루션 vs SK이노베이션 영업비밀 침해 사건’ 최종 의결과 관련돼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사진=YTN뉴스화면 캡처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과 사이 ‘배터리 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글로벌 시장 신흥 강자로 부상한 ‘K-배터리’의 공멸 시나리오가 현실화 되고 있다. 중국 배터리 기업 CATL 등이 공격적인 점유율 확장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들이 중국 배터리 브랜드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삼성SDI로 대표되는 국내 배터리 3사가 힘을 합치지 않는다면, 해외 경쟁기업들에게 ‘각개격파’ 당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K-배터리' 경쟁력 회복을 위해서는 LG엔솔과 SK이노 사이의 '상생 합의'가 절실하다며, 두 회사 최고경영진의 대승적 결단을 당부했다. 특히 일부 전문가는 난마처럼 얽힌 갈등을 조기에 해소하기 위해서는, 양사 합의에 미온적인 LG엔솔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K-배터리’ 위기의 신호탄을 쏜 대상은 다국적기업 폭스바겐이다. 이 회사는 최근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 배터리 파트너로 한국 기업이 아닌 중국 CATL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개발 예정인 전기차에는 파우치형이 아닌 각형 배터리가 탑재될 것이라고 밝혔다. 'K-배터리'에 등을 돌린 이른바 '폭스바겐 쇼크’는 이달 17일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같은 날 로이터통신은 “폭스바겐이 향후 전기차 생산 확대 계획에서 한국 배터리 기술을 대부분 제외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통신은 "폭스바겐이 자사의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 MEB 탑재 배터리로 중국 CATL 제품을 선정했다"고 부연했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SK이노와 LG엔솔 등 우리나라 기업이 주도하는 '파우치형 배터리'와 중국 CATL 등이 주력하는 '각형 배터리'로 양분된다. 당초 폭스바겐은 파우치형 배터리를 낙점했다. 그러나 돌연 CATL의 각형 배터리를 탑재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폭스바겐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체 배터리 개발 계획을 제시했다. 

중국 남경 신강 개발구에 위치한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1공장 전경. 사진=LG화학
중국 남경 신강 개발구에 위치한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1공장 전경. 사진=LG화학

 

K-배터리 공급 불확실성에 中 손잡은 폭스바겐 

이런 상황이 벌어진 주요 원인 중 하나로 LG엔솔과 SK이노 사이의 배터리 분쟁을 지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두 기업의 소모적 갈등이 폭스바겐을 비롯한 주요 글로벌 고객사의 피로감 누적을 초래했고, 결국 'K-배터리'에 대한 외면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폭스바겐이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을 개발하면서 배터리 파트너로 중국 기업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코리아 배터리 브랜드에 대한 글로벌 완성차 기업의 인식 변화를 극적으로 시사한다.  

폭스바겐그룹과 국내 배터리 기업과의 인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블룸버그통신과 독일 경제매체 매니저매거진이 2019년 보도한 내용을 종합하면, 2016년 폭스바겐은 자사 전기차 모델에 탑재할 배터리 공급사를 물색하고 있었다. 치열한 경쟁 끝에 SK이노와 LG엔솔,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공급자격을 얻었지만 리튬 등 배터리 소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진 삼성SDI가 배터리 공급권리를 스스로 내려놓은 것.   

삼성SDI에 배정된 물량에 공백이 생기자, 폭스바겐은 LG화학과 급히 접촉에 나섰다. 당시 폭스바겐은 배터리 공급사들과의 협상에서 큰 폭의 단가 인하를 요구했다.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LG는 향후 물량 확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폭스바겐과의 협상에 응했다. 그러나 최종 승자는 SK이노베이션이었다. 2018년 말 폭스바겐이 SK이노와 협력을 강화하고 조인트벤처(JV) 설립 가능성까지 시사한데 대해 LG측은 강하게 반발하며 배터리 공급 방침을 철회했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해당 보도 내용에 대해 LG는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했지만 매니저매거진은 관련 기사를 잇따라 게재했다. 이 매체는 후속 기사에서 “슈테판 좀머 독일 폭스바겐 구매담당이사가 2주마다 한국을 방문해 LG화학을 진정시키고, SK이노베이션과는 대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폭스바겐은 SK이노와 손을 잡았지만 악재는 계속됐다. 19년 4월 구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에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 USITC는 지난달 10일 최종 의결을 통해, SK이노베이션 배터리 부품 및 완제품의 수입과 미국 내 생산을 향후 10년간 금지했다.

USITC는 완성차 기업 포드에 대해서는 4년, 폭스바겐에 대해서는 2년간 위 결정의 효력을 유예하는 단서 조건을 각각 붙였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없이 위원회의 최종 의결이 그대로 효력을 발휘한다면, 폭스바겐은 2년 안에 배터리 파트너를 다시 선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폭스바겐은 USITC 의결 직후 낸 성명에서 “SK이노와 LG엔솔의 법정 분쟁으로 피해자가 됐다”며 “궁극적으로 양사 간 분쟁이 법정 밖에서 해결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외신 보도를 기준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면 폭스바겐 입장에서 'K-배터리'는 애증의 대상이나 다름이 없다. 특히 SK이노를 상대로 한 LG엔솔의 USITC 제소는 돌발 악재임이 분명하다. 폭스바겐이 국내기업들의 주력 제품인 파우치형을 마다하고, 각형 배터리로 시선을 돌린 사정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 전경. 사진=SK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 전경. 사진=SK

 

미국 땅에서 벌이는 배터리 전쟁 
'공멸' 피하려면 이제는 끝내야
 

LG엔솔과 SK이노가 벌이는 배터리 분쟁은 두 갈래로 진행 중이다. 하나는 지난달 10일 일단락된 영입비밀 침해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조기 판결'을 앞둔 특허침해 사건이다. SK이노와 LG엔솔이 USITC에 맞제소한 특허침해 사건 조기 판결은 당초 이달 20일(현지시간) 나올 예정이었으나 다음달 2일로 한 차례 연기됐다. 

특허비밀 침해 사건은 SK이노가 원고, LG엔솔이 피고 신분이다. 영업비밀 침해 사건은 사건 쟁점에 대한 당부 판단 없이 증거조사절차(Discovery)상 흠결을 이유로 LG엔솔이 승기를 잡았다. USITC는 영업비밀이 실제로 침해됐는지 여부를 가리치 않고 증거조사 절차 위반을 이유로 최종 의결을 발표했다. 위원회의 최종 의결에 대해 SK 주주들이 쉽게 공감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SK이노 역시 최종 의결 직후 입장문을 통해 사건 쟁점에 대한 판단 없이 나온 최종 의결에 유감을 나타냈다. 

특허비밀침해 사건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영업비밀 침해의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 일부 전문가는 '배터리 에너지밀도'에 대한 비교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LG엔솔의 특허비밀 침해 주장에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또 다른 전문가는 배터리 제조 공정상 차이를 이유로 영업비밀침해 사건과는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미국 땅에서 벌어지는 있는 배터리 분쟁을 바라보는 눈길이 곱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시장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전력질주해도 모자란 상황에서 LG엔솔과 SK이노, 두 회사가 서로 멱살을 붙잡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며 "일각에선 우리나라 배터리 기술이 세계 최고라고 자만하고 있지만, CATL 등 중국 업체들의 기술 수준은 이미 위협적인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 배터리 산업이 일본과 중국, 미국에 밀리는 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며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이 무너지면 국내 다른 배터리 기업도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두 기업의 '화해'를 위한 공익 배터리재단 설립을 해법으로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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