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주주 분노케 한 反기업 단체의 "이재용 해임" 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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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주주 분노케 한 反기업 단체의 "이재용 해임" 선동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03.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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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삼성 주총장 앞서 선전전
주주들 거부감... "부회장직 내려 놓을 이유 없다"
'무보수 비등기', '취업'으로 볼 수 있는지도 의문
정도 벗어난 시민단체, '경제개혁 걸림돌' 우려
준법감시위, 취업 제한 논란 현명한 해법 제시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올해 초 뇌물공여 등 혐의로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2년여 만에 다시 영어(囹圄)의 몸이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그가 겪고 있는 고초는 구치소로 국한되지 않았다. 삼성전자에서 ‘이재용’이라는 이름 석자를 지워버리려는 반(反)기업 성향 단체들의 시도가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어서다. 

이달 17일 경기도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 제52기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 등이 등장해 ‘이재용 퇴진’을 외치고 나섰다. 이들은 “이재용 부회장이 법무부로부터 취업 제한 통보를 받은 만큼 이사회가 부회장을 해임해야 한다”면서 이사회를 압박했다. 

이 부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2년 6개월의 실형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취업 제한 규정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이견이 많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14조에 따르면, 5억원 이상 횡령·배임 등 범행을 저지른 경우, 형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된 날부터 관련 기업에 5년간 취업이 제한된다. 

해당 법 조문에는 모호한 구석이 많다. 우선, 이 부회장은 2017년 2월부터 삼성전자로부터 급여를 받지 않고 있는데다, 2019년부터는 등기임원에서도 물러나 있는 상태다. '무보수 비등기' 상태의 이 부회장에게 '취업 제한'이라는 굴레를 씌우는 것 자체가 합리적이냐는 의문은 재계는 물론이고 법조계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위 조문의 문맥상 '형 집행이 종료된 사람'에게만 적용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복역 중인 이 부회장에게는 적용 여지가 없다. 해당 규정은 ‘신규 취업’에 국한될 뿐, 기존 지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참여연대나 경제개혁연대 등 일부 단체들이 주장하는 이 부회장 퇴진 요구는 근거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주총장에서 주주들은 이 부회장을 향해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한 주주는 “이 부회장이 그 자리를 꼭 지켜야 한다. 좋은 일만하고 감옥살이 하는 것 자체가 기막히다”고 했다. 다른 주주도 “1·2심에서 유죄가 확정된 사람들도 도지사를 하고, 국회의원도 하는데 개인 회사에서 부회장직을 놓을 이유가 없다”며 “삼성전자는 대한민국과 함께하는 회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주들이 이 부회장을 지지하는 이유는 그가 이뤄낸 '성과' 때문이다. 고(故) 이건희 회장이 2014년 쓰러져 와병에 들어간 이후, 이재용 부회장은 실질적인 총수로서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을 이끌어왔다. 2014년 당시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206조원, 영업이익은 25조원. 지난해 매출과 영업익은 각각 236조원, 36조원으로 늘었다. 매출은 15%, 영업익은 44% 상승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200조원대에서 300조원대까지 가파르게 우상향했다. 

이 부회장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상 속에서 삼성을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로 변모시켰다. 반도체 외에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세계를 누비며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주도했다. 삼성전자가 미국의 글로벌 음향기기 전문기업 하만을 10조원에 인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부회장의 탁월한 안목 덕분이었다. 하만의 기술은 삼성전자 제품 곳곳에 녹아들어 시너지를 내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설과 추석 명절이면 삼성 핵심 계열사 글로벌 사업장을 찾아 임직원들과 소통하는 특유의 행보는 이 부회장 현장 경영의 상징이 됐다.

승승장구했던 삼성전자지만 최근 심상찮은 기류를 보이고 있다. 삼성의 리걸 리스크가 표면화되기 시작한 17년 이후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 인수합병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경쟁사보다 늘 한 박자 먼저 선행기술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초격차'을 유지하던 메모리 반도체에서도 최근 이상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대규모 투자와 경영 전략 수립, 미래 먹거리 발굴 등 핵심 현안을 오너가 직접 챙기는 한국의 현실에서, 이 부회장 부재는 그 자체로 위기이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19일 전원회의를 열고 이 부회장 ‘취업제한’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단시간에 결론을 내기가 어려운 사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준법감시위는 삼성의 발전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존재하는 독립조직인 만큼, 합리적인 판단을 도출할 것으로 믿는다. 

반 기업 성향 시민단체들은 "준법감시위가 이 부회장 취업제한을 논의하는 것은 ‘월권’"이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주총장에서 주주들을 상대로 선전전에 나섰던 시민단체들이 삼성준법위를 상대로 압박에 나선 모양새이다. 삼성준법위의 이 부회장 취업체한 논의가 '월권'이라면, 근거도 빈약한 자신들의 요구를 강제하는 이들의 행태는 '초법적 일탈'이다. 주총장 앞에서의 '이 부회장 해임 선전전'은 되레 주주들의 반감을 키웠다. 정도를 벗어난 시민단체의 행태는 그들이 입만 열면 말하는 '경제개혁'의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깨달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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