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SK 싸움, 中만 도와준 꼴... 힘합쳐 '1兆 배터리재단'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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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SK 싸움, 中만 도와준 꼴... 힘합쳐 '1兆 배터리재단' 만들라"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02.2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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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배터리 권위자 박철완 교수 기술 자문
"K배터리 최고인양 떠드는 사이, 중국이 추월"
"분쟁 길어지면 둘 다 敗子... 국가 경쟁력 훼손"
"'영업비밀 유출' 판단無 의결.. SK 승복 어려워"
'중간지대' 해법 제안... "재단·펀드 만들어 공동운영"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 사진=아리랑TV 유튜브 캡쳐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 사진=아리랑TV 유튜브 캡쳐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 간 벌어진 배터리 분쟁에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LG에너지솔루션측에 승소 결정을 내린 사실과 관련, '국내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학계 전문가의 목소리가 나왔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 선점을 위한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분쟁이 장기화된다면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 중 누구도 ‘승자’가 될 수는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는 양사가 ‘중간지대’를 만들어 ‘윈윈’ 전략을 펴야 한다는 대안이 제시됐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달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분쟁에 대한 의견을 장문의 글로 피력했다. 박 교수는 “분쟁의 시작은 SRS(배터리 안전성 강화분리막)와 CCS(세라믹 코팅 분리막) 특허 분쟁이었다”며 “이 해묵은 분쟁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잔불이 남아 결국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박 교수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차세대전지이노베이션 센터장과 차세대전지성장동력사업단 총괄간사 등을 역임했다. 한국전지학회와 탄소학회 이사를 지내는 등 국내 대표 배터리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LG에너지솔루션 입장에선 ‘합의에 전향적으로 나서라’며 ITC 판결을 근거로 내세우지만,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선 합의를 하고자 해도 '영업비밀 유출' 등에 관한 ITC 판결이 없는 상황인 만큼, 합의금 지불 자체가 배임이 될 수 있어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 LG에너지솔루션의 ‘절차훼손’에 따른 ‘조기패소’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승소에 기막힌 카드가 됐지만, 개인 회사가 아닌 SK이노베이션이 합의를 할 근거를 없애버리는 역설적 상황이 돼 버렸다”며 “이 상황에선 절차를 끝까지 가겠다는 SK이노베이션의 입장이 상식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2019년 4월, LG는 "SK가 2017년부터 자사 전지사업본부에서 76명의 핵심인력을 빼돌려 자사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ITC와 美 연방 델라웨어지방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같은 해 9월 SK도 "LG가 미국에서 판매 중인 배터리는 자사 보유 특허를 이용해 제조됐다"며 ITC와 델라웨어 지법에 특허 침해 소송을 냈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이 과정에서 지난해 2월, ITC는 ‘증거조사 절차 위반’을 이유로 예비판정을 통해 'SK이노 패소'를 결정했다. 이 사건 쟁점인 영업비밀 침해 여부와 관계된 증거를 SK 측이 고의로 삭제하려 했다는 LG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ITC는 이달 10일 열린 최종 의결에서도 원고인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었다.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향후 10년간 배터리 셀, 관련 부품, 배터리팩 완성품의 미국 내 수입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린 것. 다만 완성차 제조기업 포드에 대해서는 4년, 폭스바겐에 대해서는 2년간 위 결정의 효력을 유예하는 단서 조건을 붙였다. 

박 교수는 “이 사태가 장기화되면 두 회사 모두 패자(敗者)가 될 것”이라며 “K-배터리라고 우리나라 배터리가 우주 최고인양 떠드는 사이에 중국은 잠수함처럼 우리를 사실상 앞질렀을 뿐 아니라, 그 중요하다는 '양극활물질 삼원계 전구체' 산업은 사실상 중국 주력산업이 됐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하나 하나 따져보면 우리가 유리하고 앞선 게 없다. 미국과 유럽의 배터리 산업이 깨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강점은 ‘선점’이요, 약점은 ‘기초’와 ‘깊이’”라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1990년 세계 최초로 리튬이온전지를 만든 소니에너지텍이 후발주자인 산요전기에 밀려 몰락하게 된 일화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그는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며,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패자(敗者)는 우리나라 배터리 업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두 기업의 골 깊은 갈등을 풀기 위한 대안으로 그는 '중간지대 조성'을 제안했다. 가칭 '배터리 재단' 및 '배터리 펀드'를 양 사가 총 1조 가량 공동 출자하고, 출자 부담은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보다 더 많은 대신 동등한 지분을 갖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해당 재단과 펀드에는 전지협회나 조합, 심지어 정부에 이르기까지 개입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견해다. 철저히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에서 추천한 이사회와 공동 이사장 체제로 운영하고, 화해와 상생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구상이다. 

구체적인 역할로는 먼저, ‘인력양성’을 꼽았다. 연구비가 풍부한 일류대학이 아닌, 소외된 대학에 연구비와 장학금을 지원토록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단초가 된 ‘지적재산관 보호’와 관련해선, 국가 핵심기술인 2차전지 기술이 국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국가정보원 등과 함께 공조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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