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탁원, '단순 대행사' 맞나... 피해자들 "옵티머스 경징계 땐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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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탁원, '단순 대행사' 맞나... 피해자들 "옵티머스 경징계 땐 투쟁"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1.02.1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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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제재심.. 피해자들 "경징계 땐 좌시 않겠다"
예탁원 "우린 단순 사무대행사, 검증책임 없다"
금융위 "처벌규정 無".. 이메일엔 '대등관계' 정황
옵티머스 측, 예탁원에 "채권등록 검토 요청"
업계 "예탁원이 을?... 을 된 공무원 본적 있나"
제재 범위서 이명호 사장 '열외'... 형평성 논란도
이명호 예탁결제원 사장. 사진=예탁결제원, 국회 제공
이명호 예탁결제원 사장. 사진=예탁결제원, 국회 제공

'옵티머스' 사기펀드 피해자들이 제재심을 앞둔 한국예탁결제원(예탁원)에 대해 중징계를 요구하고 나섰다. 앞서 금융감독원 역시 중징계 방침을 시사했지만 금융위원회 측이 처벌규정이 없다는 엇갈린 해석을 내놓고 있어 18일에 있을 제재심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금융권 안팎에선 "예탁원을 징계할 사유는 충분하지만 앞서 기업은행의 경우처럼 공공기관이라는 점이 일정 부분 '어드밴티지'로 작용하지 않겠느냐"는 반응이 나온다. 

15일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성명을 통해 "옵티머스펀드와 관련 하나은행과 한국예탁결제원 등 관계사 기관제재를 무겁게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대위 이의환 집행위원장은 "기업은행처럼 경징계로 적당히 넘어간다면 이는 금감원이 '끼리끼리 봐주기'에 앞장서는 것으로 제재심 무용론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예탁원에 이례적으로 중징계 방침을 시사한 것은 자본시장법 60조에 근거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조항은 "금융투자업자는 금융투자업 영위와 관련한 자료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료의 종류별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간 동안 기록·유지해야 하며, 자료가 멸실되거나 위조·변조가 되지 아니하도록 적절한 대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예탁원이 과거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사모사채를 공공기관의 매출채권으로 이름을 바꿔 기재한 것을 금감원 측이 자료의 위조 내지 변조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권에선 자본시장법 60조 위반으로 징계를 받은 사례가 종종 보고된다. 지난해 9월 씨티은행은 일반투자자 52개 기업과 체결한 외환파생상품 거래 5,566건에 관한 자료 86건을 기록하지 않거나 유지하지 않아 금감원으로부터 과태료 6억원을 부과받았다. 

이 외에도 2011년에는 현대증권이 10억1,300만원 상당의 주식매매를 수탁하면서 총 171건에 대한 주문기록을 보관·유지하지 않아 2011년 8월 자본시장법 60조에 의거 금감원 징계를 받았다.

예탁원 측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으로 이름을 변경한 것은 운용사의 요청에 의한 것이며 자사는 실사확인의 의무가 없다고 해명했지만 비상식적 요구를 지속적으로 들어준 것이 결과적으로 화를 키웠다는 비난 여론을 막지 못했다.

일례로 지난해 10월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한 목소리로 예탁결제원의 '무능'과 '무책임'을 질타한 바 있다. 국민의힘 이영 의원은 "무려 3년에 걸쳐서 사모 채권이 공공기관 매출 채권으로 계속 바뀌는데 한 번의 의심을 하지 않았다"면서 "이것은 단순 실수가 아니라 예탁원과 옵티머스의 공모"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옵티머스, 예탁원 이메일에 "검토 후 채권등록을 요청드립니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 예탁원에 중징계에 해당하는 기관경고와 임직원 감봉 조치를 시사했다. 반면 금융위원회는 "일반사무관리회사가 투자신탁의 기준가격 산정 등 업무를 위탁 수행하는 경우에는 '자본시장법'상 일반사무관리회사 관련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법령해석을 내놨다.

이는 사무관리사의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것으로, 사실상 옵티머스 운용사가 요청하면 예탁원은 따르는 넓은 의미의 '상하관계'였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예탁원은 지금까지 자본시장법상 사무관리회사가 아니라 '단순 계산 사무대행사'라는 논리로 "옵티머스 사태에 대한 검증 책임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취재진의 확인 결과 예탁원의 권한과 위치가 반드시 제한적이고 수동적인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2020년 5월 15일 경 옵티머스 자산운용 관계자가 예탁원 측에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이메일에는 사모사채를 공공기관 채권으로 기입해달라는 요청을 하면서 예탁원 측에 "검토 후 채권등록을 요청드립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취재진이 입수한 옵티머스-예탁원간 이메일. 사진=익명 제보
취재진이 입수한 옵티머스-예탁원간 이메일. 사진=익명 제보

이는 해석하기에 따라 예탁원 역시 옵티머스의 요청이나 자료에 대해 얼마든지 검토하고 의견을 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한 금융업권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일방적으로 지시에 따르는 이른바 '갑을 관계'라면 갑이 굳이 검토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다"면서 "금융권에서 공무원이 을이 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법조계 관계자는 "금융권은 문제가 생기면 각종 문서나 메일의 작은 표현으로도 책임소재가 달라지는 곳"이라면서 "정말 예탁원이 운용사의 요청에 그대로 따라야 하는 처지였다면 실무자는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에 응당 이의를 제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시중은행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명호 사장이 징계 범위에서 '열외'된 것이 단서가 될 것"이라면서 "현실적으로 금융위원회가 감싸는데 중징계를 강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기업은행의 경우처럼 공공기관이라는 점도 이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8일 예탁원 이명호 사장은 온라인 신년 기자간담회를 통해 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선 책임질 일은 감당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이명호 사장은 "향후 절차가 있다면 지금까지처럼 기관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소명하고, 만약 감당해야할 일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부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18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옵티머스 사태에 책임이 있는 금융회사와 기관 등에 대한 제재 수위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날 제재심에선 옵티머스 펀드 최대 판매사인 NH투자증권을 비롯해 사무관리사인 한국예탁결제원, 수탁은행인 하나은행이 심사 대상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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