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전도사' 최 회장... "국가경제 위해 고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전도사를 자처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차기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단독 추대됐다. 최근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ESG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기업의 사회적 가치 실현과 상생·협력 방안 마련에 주력해 온 최 회장의 경영방식이 재계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서울상공회의소 회장단은 이날 오전 상의회관 20층 챔버라운지에서 회장단 회의를 열고 박용만 회장 후임으로 최 회장을 단독 추대했다. 이 자리에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을 비롯해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 권영수 LG 부회장,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 이우현 OCI 부회장,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우태희 대한‧서울상의 상근부회장 등 서울상의 회장단 13명이 참석했다.
박용만 회장은 회의를 마친 후 “4차 산업시대가 오고 있는 변곡점에 있기 때문에 본인의 경험이나 이런 면에서도 훨씬 미래를 내다보는 데 적합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규모 면에서도 국내 5대 그룹 중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를 상당 부분 대표할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최 회장이 평소 상생이나 환경이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시는 분이기에 현 시점에 더없이 적합한 후보라고 생각한다”며 “서울상의 회장단의 만장일치로 추대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진 후 최 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추대에 감사드린다"며 “상의와 국가 경제를 위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고 수락의 뜻을 전했다.
국내 4대그룹 총수 중 대한상의 회장을 맡게 된 것은 최 회장이 처음이다. 대한상의는 이달 23일 임시의원총회를 열어 정식으로 최 회장을 서울상의·대한상의 회장으로 선출할 예정이다. 서울상의 회장은 대한상의 회장직을 겸직하는 관례가 있다. 임기는 3년이며 한차례 연임이 가능하다.
최태원 체제 대한상의... 재계 전반에 ESG 경영 확산 전망
그간 재계에서는 박용만 회장의 후임으로 최 회장이 차기 대한상의 회장으로 추대될 것이란 전망이 꾸준히 제기됐다. 대내외적으로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면서도 탁월한 경영업적과 ESG를 선도한 인물이란 점에서 ‘1순위’로 꼽혔다는 분석이다.
최 회장은 SK만의 경영방침인 ‘딥체인지(근본적 혁신)’를 통해 내부 혁신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룹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역설하는 경영철학으로 주목받았다. 그런 최 회장이 최근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가 바로 ESG 경영이다. ESG는 환경문제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의 투명성 등 기업 경영활동의 비재무적 요소에 긍정적인 변화를 도모하자는 개념이다.
SK는 최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힘입어 국내 기업 중 ESG 경영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라는게 최 회장의 지론이다.
올해 신년사에서 최 회장은 “사회와 공감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새로운 기업가정신’이 필요한 때”라며 “기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SK 역량과 자산을 활용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보자”고 당부한 바 있다.
이에 따라 SK의 각 계열사는 ESG 경영에 대한 총력전을 펴오고 있다. 최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지난해 SK그룹 주요 계열사 중 ESG 평가 A+ 등급을 받은 곳은 SK㈜, SK텔레콤, SK네트웍스 등 3곳이었다. A등급을 받은 계열사도 SK하이닉스, SK이노베이션, SK가스, SK디스커버리, SKC 등 5곳에 달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친환경 사업에 투자하는 1조원 규모의 그린본드(Green Bond)를 발행하기도 했다. 그린본드는 환경친화적 투자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위한 용도로만 쓸 수 있는 특수목적 채권이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기업 중 그린본드를 발행한 기업은 SK하이닉스가 유일하다.
SK하이닉스는 그린본드를 통해 마련한 재원을 수질 관리, 에너지 효율화, 오염 방지, 생태환경 복원 등 친환경 사업에 투자할 예정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 중요한 물 관리를 위해 신규 최첨단 폐수 처리장 건설과 용수재활용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IT산업 전반의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해 저전력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개발 사업 등 다양한 프로젝트도 추진할 계획이다.
최 회장이 올해첫 투자처로 미국 수소에너지 기업 플러그파워사를 선정한 것도 ESG 경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SK㈜와 SK E&S는 플러그파워사 지분 9.9%를 확보하며 최대주주에 올랐다. 투자 규모만 1조6000억원에 달한다.
SK는 플러그파워와 협업해 국내에서 수소 생태계를 구축하는 한편, 중국과 베트남 등 아시아 시장에서도 수소 사업을 전개해 나간다는 복안이다. 아울러 플러그파워는 프랑스 르노그룹과 손잡고 유럽 중소형 수소 상용차 시장 공략에 나선다. 유럽에서 연료전지 기반의 중소형 상용차 시장 점유율을 30% 이상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대한상의 회장으로서 최 회장의 행보 역시 ESG 경영 확산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최 회장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과의 상생 협력을 강조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기 회장체제의 대한상의가 내세울 어젠다는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설정될 것이란 전망이다.
국내 주요 4대 그룹 총수 중 ‘맏형’격인 최 회장이 향후 정부와 재계 간 ‘소통창구’ 역할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재계 일각에선 최 회장이 현재 기업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만큼, 기업규제 정책에 보다 적극적으로 재계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