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희망고문"... 정준영 판사 '言行불일치', 전문가 4인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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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희망고문"... 정준영 판사 '言行불일치', 전문가 4인 분석
  • 양원석 기자
  • 승인 2021.01.2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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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25시] 중견 법조인 블라인드 인터뷰 
"말·행동 따로... 재판부 스스로 말 바꿨다"
"실효성 기준 무엇인지 먼저 제시했어야" 
공판 끝날 무렵 기준 공개... "공정치 못했다"    
재판부 입장 번복, "외압가능성 배제 못해"
'경영권 불법승계 재판'에 미칠 영향, "전혀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이 부회장은 지난 18일 영장이 발부돼 법정에서 구속됐다. 사진=시장경제DB

[편집자 주] “재판은 법관 인격의 발현인데, 이번 선고는 뜻밖입니다. 피고인에게 희망 고문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지난 18일 오후 2시 30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파기심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서울고법 형사1부, 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주심 강상욱 부장판사)가 이 부회장 등 이 사건 주요 피고인들에게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한 직후, 변호사들과 법학교수 등이 가입한 스마트폰 메신저그룹에서는 “놀랍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법조인들은 대부분 “예상 밖의 판결”이라며, 실형 선고의 원인과 배경을 추론하는 다양한 댓글을 올렸습니다.

이 사건은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를 불러 직접적인 금품을 요구 혹은 강제한 사실에서 비롯됐습니다. 파기심 재판부도 판시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사안의 비중을 고려할 때 이 사건 판결은 앞으로 있을 유사 사건의 선례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시장경제>는 이 부회장 파기심 사건에 대한 중견 법조인들의 반응을 취재, 그 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했습니다. 본지 인터뷰에 응한 이들의 법조 경력은 최소 20년에서 최대 30년 이상입니다. 4명 모두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공은 형사법 혹은 상사법입니다. 

이 사건 재판부가 꼽은 실형 선고의 가장 큰 이유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 기준 미달’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2월 출범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실효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동 위원회의 설립 및 운영과정, 운영 성과 등을 양형에 반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재판부 판시이유입니다.

재판부는 이런 판단의 구체적 예로 두 가지를 꼽았습니다. 하나는 컨트롤타워 조직에 대한 준법감시방안이 제시되지 못한 점, 다른 하나는 각 계열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법행위 감시 체계가 확립되지 못한 점입니다.

법조인들의 관심은 재판부가 밝힌 실형 선고의 배경 혹은 그 이유에 집중됐습니다. 적지 않은 법조인들이 파기심 재판부의 양형 판단에 의문을 나타냈습니다. 이들은 재판부의 ‘입장 번복’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현재 1심이 진행 중인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에 미칠 파장에 대해서는 “영향이 없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정준영(52·사법연수원 20기) 부장판사. 사진=EBS 화면 캡처
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52·사법연수원 20기) 부장판사. 정 부장판사는 준법감시위 설립을 제안하며 그 성과에 대해 양형 요소로 고려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재용 부회장에게 끝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사진=EBS 화면 캡처

 

“말 따로 행동 따로... 재판부가 스스로 말을 바꿨다”

검찰 간부 출신의 메이저 로펌 파트너 변호사 A는 “재판부가 스스로 입장을 번복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며 비판적 견해를 나타냈습니다. 그는 재판부의 삼성 준법감시위 실효성 판단과 관련돼 “‘피고 측인 삼성이 숙제를 잘못했고, 그 결과 삼성 준법감시위 운영 성과를 양평에 반영할 수 없다’는 식인데, 그렇다면 사전에 판단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려줬어야 했다”고 꼬집었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재판부는 ‘실효성 기준 미달’을 이유로 삼성 준법감시위의 운영 성과를 사실상 부정했습니다. 재판부는 전문심리위원들이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삼성 준법위 실효성 판단의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실효성 판단을 위한 구체적 기준은 파기심 심리 막판, 전문심리위원들이 보고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뒤에야 비로소 윤곽을 드러냈습니다. A 변호사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재판부 판시는 기준이 무엇인지도 알려주지 않고 숙제를 잘못했다고 말한 것과 같다. 그런 숙제가 세상에 어디 있나? 이럴거면 애초에 삼성 준법위를 양형 요소로 고려하겠다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캐스팅보트'를 쥔 강일원 전문심리위원(전 헌법재판관)이 준법감시제도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렸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실형을 면치 못했다.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파기심 '캐스팅보터' 강일원 전문심리위원(전 헌법재판관). 강 심리위원은 준법감시제도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렸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실형을 면치 못했다. 사진=시장경제DB

 

"재판부 '뇌물의 성격' 판시, 모순됐다"

서울 소재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B는 재판부 양형 판단의 모순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범행 후의 정황이란 게 있다. 피고인이 작성한 ‘반성문’이 대표적이다. 이런 것도 양형에 유리한 요소로 참작을 하는데 기업 총수의 대국민 사과까지 이끌어 낸 준법위 활동을 양형에 반영치 않겠다는 건 납득하기 쉽지 않다. ”

이어 그는 “재판부가 피고인을 상대로 희망고문을 한 셈‘이라고 부연했습니다.

B 교수는 “처음 의도와 달리 외부로부터 어떤 압력이 들어온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외압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추론의 증거로 '뇌물의 성격'에 관한 재판부 판시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판시를 보면 재판부는 대통령이 먼저 뇌물을 요구한 점, 대통령의 요구는 거절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피고인은 적극적으로 뇌물을 공여했다’는 모순된 판단을 내리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먼저 쓴 판결문을 나중에 수정하면서 내용이 꼬인 게 아닌가 한다.”

‘외부의 그 무엇이 재판 흐름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은 다른 법조인들에 대한 인터뷰에서도 등장했습니다.
 

이복현 부장검사. 사진=YTN뉴스화면 캡처
이복현 부장검사. 박영수 특검에 파견검사로 합류한 이 부장검사는 공판 내내 ‘재판부가 심리를 불공정하게 진행한다’는 주장을 반복하며 재판부를 자극했다. 사진=YTN뉴스화면 캡처

 

“검찰의 상식 밖 언행, 먹혀들었다” 

법조 경력 30년이 넘는 대형 로펌 원로급 변호사 C는 “정준영 부장과 학회 활동을 같이 해 그 성품을 잘 안다”며 “적어도 처음에는 본인의 지론인 ‘회복적 사법’ 관점에서 양형을 고민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그는 “심리가 종반으로 가면서 재판부가 검찰의 ‘재판 불공정 프레임 씌우기’에 부담을 느낀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이 사건 심리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매 기일마다 법정에서는 검찰과 재판부 사이 날선 신경전이 벌어졌습니다. 그 중심에는 공소 유지에 참여한 이복현 부장검사(사볍연수원 32기)가 있습니다.

박영수 특검에 파견검사로 합류한 이 부장검사는 공판 내내 ‘재판부가 심리를 불공정하게 진행한다’는 주장을 반복하며 '기행'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법정 안에서 고성을 지르는가 하면, 재판부 발언 중간에 끼어드는 상황이 자주 연출됐습니다. 그는 ‘피고인을 집행유예로 풀어주기 위해 재판부가 심리를 무리하게 끌고 간다’는 상식 밖의 발언까지 내뱉었습니다. 법정 취재에 나선 다수의 현장 기자들에 따르면, 이 부장검사의 ‘도발’에 재판부가 자극을 받은 건 분명해 보입니다.

C변호사는 “검찰의 거친 언행이 먹힌 측면이 있다”면서 “재판부가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했거나, 외부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로 기업 형사사건 변론 경험이 풍부한 D는 “여론이든 언론이든 떠밀려서 결론이 바뀐 건 아닌지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양형 판단에 관한 재판부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재판부가 밝힌 삼성 준법위 실효성 판단 기준도 모호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변호인 이인재 변호사.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변호인 이인재 변호사가 지난 18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시장경제DB

 

“파기심,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과 관계 없다”

법조인들은 이 부회장에 대한 파기심 재판부의 실형 선고가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낮게 봤습니다. 혐의가 전혀 다른데다가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사건의 경우 검찰이 직접 증거를 거의 확보하지 못해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인터뷰에 응한 법조인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지난해 9월 1일,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전현직 경영진 11명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 외부감사법 위반(분식회계), 업무상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앞서 같은 해 6월 26일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수사중단 및 불기소'를 의결했으나 검찰 수사팀은 '기소 강행'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심의에 참여한 외부전문가 13명 중 이 부회장 불기소에 찬성한 인사는 10명, 반대는 3명에 불과했습니다. 외부전문가들이 압도적 표차로 불기소를 의결한 사실이 집중 조명되면서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은 기소 당시부터 공정성 시비를 초래했습니다. 공소장을 들여다보면, 글로벌 투기펀드 '엘리엇'이 우리 정부와 삼성을 공격할 때 쓴 논리까지 차용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검찰은 여론의 역풍을 맞기도 했습니다.

검찰 간부 출신 A변호사는 파기심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대해 “파기심과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사건은 성질이 다르다. 영향이 전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C변호사도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혐의가 다르고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사건은 검찰이 손에 쥔 증거가 없어 공소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 봤습니다.

D변호사는 “피고인이 구속된 상태에서 다른 사건 재판이 열리면, 방어권 행사에 제약이 있기 마련”이라며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D변호사 역시 “원칙적으로 사건이 달라서 영향을 받을 일은 없다고 본다”고 입장을 전했습니다.

B교수는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의 변수는 법리나 증거가 아닌 ‘언론’이라며, ‘여론재판’을 우려했습니다. 그는 “사건 혐의나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파기심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 2012~2015년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이렇게 두 갈래로 수사가 이뤄졌는데 검찰의 주장만 있고 혐의를 받치는 증거는 부실해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덧붙여 그는 “증거가 부실할 때 특수부 검찰은 특유의 언플(언론플레이)을 통해 여론몰이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며 “앞으로 이런 점을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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