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수첩] '최저시급 1만원' 자영업자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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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수첩] '최저시급 1만원' 자영업자 그늘
  • 박진형 기자
  • 승인 2017.06.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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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최저임금 1만원 논의가 활발해 지면서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 면접을 본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지난해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편의점에서였다. 그때 점장은 나에게 몇 살인지, 얼마나 일할 수 있는지 등 형식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러더니 잠시 뜸을 들였다. “학생 미안한데, 우리는 최저임금을 주지 못하는데 괜찮을까?” 순간 표정이 굳어지자 점주는 4,000원대 시급을 주는 곳도 있다며 자신은 5,500원까지 맞춰줄 수 있다고 설득했다.

이후 세 차례 다른 편의점을 찾아갔지만 모두 최저임금보다 적은 4,000~5,000원대 시급밖에 줄 수 없다고 답했다. 2016년 기준 최저시급이 6,030원이었지만 이보다 500원 많게는 1,500까지 적은 셈이다. 이를 계기로 노동시장에서 최저임금제도가 많은 자영업자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264만 명이다. 노동자 7명 중에 1명꼴로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생각하면 최저임금조차 지급하지 못하는 소규모 업체 수가 많다는 반증이다. 서울 금천구에서 8평 남짓의 소규모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점주는 "보통은 24시간 운영을 하지만 장사가 너무 안 돼 어쩔 수 없이 새벽 1시에 마감을 한다"면서 "최저시급에 맞춰 주기도 벅찬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임금실태 분석보고서(2017년)를 보면 이들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최저임금 1만 원이 실시되면 근로자의 46.1%가 월 209만 원을 받는다. 연봉으로 계산하면 2,508만 원이다. 반면 통계청의 자영업 현황분석 자료(2016년)에서 국내 자영업자의 51.8%는 연 매출이 4,600만 원에 못 미친다. 영업이익은 월 187만 원이다. 고용주와 직원 간의 소득 역전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점주보다 알바생이 시급을 더 많이 챙긴다는 요즘 소리가 단순히 엄살로만 비춰지지 않는다. 

중고령자 자영업자의 경우에는 경영환경이 더 열악하다. 2015년 국민연금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50대 이상 자영업자의 45%가 월 평균 수입이 100만 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근거로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면 영세 자영업자 중에서 폐업을 결정하는 곳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박병원 회장도 이를 우려했다. 그는 "1만원으로 인상되면 편의점이나 식당 등 영세사업장 상당수가 망하게 될 것"이라며 "최저임금은 최대임금이 아니다. 지불능력이 안 되는 곳에서도 줄 수 있는 금액을 최저임금으로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들은 규모가 작은 업체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며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면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이 큰 타격을 받게 된다"고 제언했다.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경제구조에서 최저임금 인상률을 가파르게 높이면 대량 폐업 등 각종 부작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해 봤을 때 우리나라 최저임금 인상률(5~8%)은 이미 높은 축에 속해 있다.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올리려면 앞으로 3년 동안 연평균 인상률이 15.7%로 대폭 상승해야 한다. 최근 10년간 최저임금이 두 자리 수로 오른 적이 없어 이례적인 경우에 속한다.

이와 함께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아르바이트생을 축소하거나 고용하지 않고 점주가 대신해 장시간 이상 일하는 곳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최저임금제도가 오히려 일자리 자체를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말이다. 공급과 수요가 아닌 인위적으로 설정한 임금 하한제는 실업률을 높이는 등 노동시장을 교란시킬 여지가 있다. 임금이 오르면 노동에 대한 공급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노동에 대한 수요는 줄어든다. 과잉공급 상태가 발생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노동자를 고용할 사용자가 줄어들어 일자리가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과 장기적인 내수침체로 매년 자영업자 100만 명이 창업하고, 80만 명이 폐업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인건비 부담까지 가중된다면 영세 자영업자의 신음은 더욱 커질 것이다. 폐기물로 끼니를 때우는 아르바이트생의 속사정과 더불어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자 자영업자인 그들의 무거운 어깨도 함께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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