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통상법 전문가들 "SK이노 '배터리 패소' 판정, 뒤집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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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통상법 전문가들 "SK이노 '배터리 패소' 판정, 뒤집힐 수 있다"
  • 양원석 기자
  • 승인 2021.01.0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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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25시] 세기의 '배터리 전쟁' 심층 분석
LG에너지솔루션 vs SK이노베이션, 결말은?
美 ITC, 작년 2월 "SK이노 패소" 예비 판정
최종 결정, 세 차례 미뤄... 추가 연기 주목
'자국산업 보호' '공공의 이익'... 주요 변수
美자동차산업-지역경제에 큰 영향... '결정 변경' 배제 못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구 LG화학(현 LG에너지솔루션)에 보낸 '예비판정 검토결정' 통지문. 사진=미국 ITC PDF문서 캡처.
지난해 4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구 LG화학(현 LG에너지솔루션)에 보낸 '예비판정 검토 결정' 통지서. 사진=미국 ITC PDF문서 캡처.

LG에너지솔루션(분사 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리튬이온전지) 영업비밀 침해 의혹 사건’을 심리 중인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지난해 12월10일로 예정된 최종 결정을 다음달 10일로 다시 연기한 가운데, SK의 패소를 결정한 '예비판정'이 바뀔 수도 있다는 분석이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왔다.

증거조사절차에서 엘지가 유리한 위치에 올라선 것은 맞지만, 이 사건 최종 결정이 미국 내 자동차 산업과 지역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를 고려할 때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내용으로 결정이 변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일부 전문가는 두 기업이 서로를 상대로 제기한 또 다른 사건(특허침해소송)과 영업비밀 침해 사건의 판단이 엇갈릴 수 있으며 사실상 '무승부'로 마무리될 수 있다는 조심스런 관측도 내놓았다. 

2019년 4월 LG는 "SK가 2017년부터 자사 전지사업본부에서 76명의 핵심인력을 빼돌려 자사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ITC와 미 연방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SK도 물러서지 않았다. 같은 해 9월 SK는 "LG가 미국에서 판매 중인 배터리는 자사 보유 특허를 이용해 제조됐다"며 ITC와 델라웨어 지법에 특허 침해 소송을 냈다. LG 역시 SK를 상대로 특허 침해 맞소송을 제기하면서 두 기업 간 갈등은 시간이 흐를수록 고조됐다. 영업비밀 침해 사건을 심리 중인 ITC는 지난해 2월, 증거조사 절차(Discovery)에서의 하자를 이유로 'SK 패소 예비판정'을 내렸다. 

ITC는 영업비밀 침해 사건 최종 결정일을 지난해 10월5일로 예고했으나 같은 달 26일, 지난해 12월10일, 올해 2월10일로 세 차례 연기했다. 위원회는 기일 연기의 구체적 이유를 발표하지 않았다. 

ITC 심리 및 결정의 근거법은 미국 관세법(Tariff Act) 제2부와 미 연방법령집 제19편 제2장 제210조이다. 위원회는 1930년 제정된 관세법 제1337조(Tariff Act of 1930 section 337)에 따라, 미국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수입행위를 조사하고 이를 제한 또는 금지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위 법 1337조의 제목은 ‘수입무역에서의 불공정행위’(Unfair practices in import trade)이다. 수입된 물건 내지 서비스가 미국 산업이나 특허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에 대한 위원회의 제반 활동은 통상 ‘section 337 조사(investigation)’라고 불린다.

이들 법령을 살피면 ITC 심리 및 최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두 기업이 벌이는 배터리 분쟁은 단순한 기업간 쟁송을 넘어 국내 배터리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ITC 심리 과정을 되짚을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대부분 평면적 관점에 머물고 있다. ITC가 예비판정(initial determination)과 다른 최종 결정을 내린 사례가 드물다는 점을 볼 때, SK 측의 패소로 사건이 종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대표적이다.

실제 ITC가 예비판정을 뒤집은 사례는 많지 않다. 미국 대통령이 ITC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한 경우도 지금까지 6건에 불과할 만큼 희소하다. 그렇다고 이런 이유만으로 ITC의 최종 결정을 예견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다. 무엇보다 이 사건이 가진 특수성을 고려하면 ITC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 역시 열려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런 추론이 가능한 이유는 ITC의 독특한 위상에 있다. ITC는 우리가 흔히 하는 법원과는 구조나 성격, 역할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 사장. 사진=SK이노베이션 홈페이지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 사장. 사진=SK이노베이션 홈페이지

 

숨겨진 변수 ‘자국산업 보호’와 ‘공공의 이익’

ITC는 ‘미국 대통령 직속의 독립된 준사법적 연방기관’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위원회는 위 법률에 따라 수입 상품 및 서비스에 의한 자국 산업 침해 사건 조사를 전담한다. 자국 특허권 보호를 위한 제반 업무도 동시에 수행한다. 심리에는 대통령이 임명한 임기 9년의 위원(Commissioner) 6명이 참여한다.

그 역할이 확장돼 최근에는 미국 특허권 침해 사건을 심리하는 경우가 많지만, 위원회의 설립배경과 그 역사를 되돌아볼 때, 근본 목적은 외국의 상품 혹은 서비스로부터 미국 산업(an industry in the United States)을 보호하는 데 있다고 풀이할 수 있다. ITC 심결례와 국내외 해설서를 보면, 위원회는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이란 명제 아래 '자국 산업에 대한 침해 여부’를 살피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ITC가 '자국 산업 보호'를 심리의 중요 기준 중 하나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Tariff Act of 1930 section 337’에 잘 나와 있다.

ITC에 제소를 하는 기업은 ‘공공의 이익’에 관한 진술서를 별도로 제출하도록 돼 있다. 동 서면에는 대상 물품에 대한 ITC의 구제조치가 ▲미국 경제 내 경쟁조건 ▲미국 내 동종 또는 직접 경쟁관계에 있는 물품의 생산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 등이 포함돼야 한다. 

ITC는 제소장 접수 사실을 연방 공보에 수록한 날로부터 8일 간 일반 국민, 정부기관 등으로부터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의견’을 접수한다. 위원회에 소속된 행정법판사(Administrative Law Judge / ALJ)는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증거를 수집, 권고판정(recommended determination)을 내릴 수 있다. 동 규정에 따라 위원회는 조사 초기 단계부터 공공의 이익에 위협이 되는 잠재 요소 정보를 확보, 그 침해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최종 판결 전 공공의 이익을 정밀하게 살필 것을 요구한 위 법 조항은, ITC 최종 심리 과정에서 ‘공공의 이익 혹은 자국 산업 침해 여부’가 중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ITC "공공의 이익 관련 많은 의견 받았고, 숙고 중"   

위원회는 ‘LG에너지솔루션 vs SK이노베이션,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서도 공공의 이익 침해 여부를 적극 고려하고 있다. 외신 보도를 보면 위원회는 지난해 10월27일, 이 사건 최종 의결을 같은 해 12월로 연기하면서 “공공의 이익에 대해 ‘non-parties’(사건과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로부터 많은 의견을 받았고 숙고 중에 있다”고 밝혔다. 위원회가 받은 의견에는 포드와 폭스바겐,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의 탄원서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해 2월, ITC는 ‘증거조사 절차’를 진행하면서 예비판정을 통해 SK이노베이션의 패소를 결정했다.

위원회가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조기 패소 예비판정을 내린 배경에는 이 사건 쟁점인 영업비밀 침해 여부와 관계된 증거를 SK 측이 고의로 삭제하려 했다는 의혹이 있다. 영업비밀 침해 소송이 제기될 수 있음을 인지한 상황에서, 이 사건 증거가 될 수 있는 중요 문서에 대한 보존의무를 위반, 관련 문서를 삭제했다는 것이 행정법판사의 판단이다.

SK 측은 “삭제된 문서들은 이 사건 심리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항변했으나 ITC 행정법판사는 이를 배척했다.

 

美통상법 전문가 B교수
“위원회 예비판정, 변경 가능성 있다”  

미국 특허법제에 정통한 변호사 A에 따르면 1996년 이후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하는 ITC 신청 사건에서, 위원회가 예비판정을 뒤집는 최종 결정을 내린 사례는 아직 없다. 사건 진행 경과만 놓고 본다면, 현재 상황은 엘지 측에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런 관측은 ‘자국 산업에 대한 보호’라는 변수를 적용하지 않았을 때 유효하다. 

미국 통상분야 연구 권위자 중 한 명인 B교수는 “사전에 진행된 증거조사절차만 보면 최종 결정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겠으나, ITC 입장에서는 그 결정이 미국 자동차 산업과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며 “위원회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는 사안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B교수는 “엘지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결정의 효력을 일부 혹은 전부 유예하거나, 예외 조건을 붙이는 등의 방식으로 예비판정을 변경할 가능성이 있다”고 부연했다.

참고로 ITC 위원들은 검토절차를 거쳐 예비판정에 대한 지지, 파기, 변경, 무효, 환송 등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 사진=평창동계올림픽 홈페이지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 사진=평창동계올림픽 홈페이지

 

미국 특허법 전문가 A변호사
“영업비밀 침해, 특허 침해... 두 사건 결과 다를 수도”
  

앞서 소개한 A변호사는 사견임을 전제로 “ITC에 계류 중인 특허침해 사건의 예비판정을 본 뒤, 이 사건 최종 결정을 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영업비밀침해와 특허침해사건의 심리 결과가 각각 다르게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도 했다. 즉 영업비밀 침해 사건은 엘지가, 특허 침해 사건은 SK가 각각 승소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변리사 가운데서도 '특허권 침해 사건은 영업비밀 침해 사건과 결론이 상이할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진 이들이 있다. 이들은 SK의 배터리 제조 방식이 엘지의 그것과 상당 부분 다르고, 일부 영역에서는 SK의 보유 기술이 엘지보다 앞서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을 각 당사자로 하는 ITC 심리 사건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모두 3건이 진행 중에 있다.

엘지 측이 SK를 상대로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사건은 올해 2월10일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다. 이 사건은 2019년 4월 엘지 측이 ITC에 소장을 접수하면서 시작됐다(ITC 1차 사건). 같은 해 9월에는 ‘특허권 침해’를 이유로 SK와 엘지가 각각 상대방을 맞제소했다(ITC 2차 및  3차 사건).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을 상대로 제기한 'ITC 2차 사건'의 최종 결정 예정일은 올해 7월19일이며, 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낸 'ITC 3차 사건' 최종 결정 예정일은 올해 11월30일이다. 

 

‘배터리 소송’ 바라보는 미국 내 여론 엇갈려
A변호사 “최종 결정 추가 연기 여부 주목해야”   

증거 보존의무 위반을 이유로 어느 한쪽의 조기 패소 예비판정이 나온 이상, 최종 결정이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두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다. 문제는 이번 사건이 미국 자동차 산업과 조지아주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파급효과’를 둘러싼 부담이다. 

이 사건 최종 결정을 앞두고 일부 글로벌 통신사와 미국 경제전문지는 자국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사를 게재했다.

ITC가 세 번째 기일 연기를 결정하기 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ITC가 SK에 불리한 내용을 담은 결정을 하는 경우, 재선에 도전 중인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전망 기사를 내기도 했다.

대표적인 경합주 중 한 곳인 조지아주 승리가 절실한 트럼프 대통령이 지역 내 우호적 여론 조성을 위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것이 기사의 요지였다. 위 기사는 이 사건을 바라보는 미국 언론의 복잡한 속내를 잘 보여준다.

조지아주는 SK이노베이션이 글로벌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선택한 전략 거점이다. SK이노베이션은 조지아주 잭슨카운티 커머스시에 연간 9.8Wh 규모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투자액은 1단계인 2022년까지 10억 달러, 2단계인 2025년까지 16억7000만 달러 등 26억7000만 달러이다. 조지아주 역대 외자 유치 사례 중 중 최대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배터리는 2022년부터 포드와 폭스바겐이 개발 중인 전기차(트럭 F150, SUV 모델 ID.4)에 탑재될 예정이다.

공장의 원활한 건설 및 운영은 조지아주 일자리 창출과 고용은 물론 미국 자동차 산업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지난해 3월19일 조지아주 건설현장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 1·2공장 기공식에는 미 상부부 장관과 조지아 주지사가 직접 참석해 축하를 건넸다.

윌버 로스 미 상무부 장관은 “(SK이노베이션 조지아 공장은) 급성장하는 전기차 시대에 미국이 진정한 경쟁력을 갖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은 70년 가까이 서로에게 가장 충실한 동맹”이라며 “대통령을 대신해 SK와 지방정부 관계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고 덧붙였다.

브라이언 켐프(Brian Kemp) 조지아 주지사는 “조지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가 시작되는 오늘은 열심히 사는 우리 주민들에게 정말 신나고 의미 있는 날”이라고 말했다.

ITC가 사실상 SK의 패소를 의미하는 최종 결정을 내란다면, 당장 조지아주의 지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 SK의 배터리 생산을 기다리고 있는 포드와 폭스바겐이 떠안아야 할 경제적 손해 역시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용 배터리팩은 탑재되는 차량 구조에 맞춰 설계부터 제조 전반에 이르기까지 정밀한 커스터마이징이 필수적이다. ITC의 결정으로 SK이노베이션의 조지아 공장 운영에 제동이 걸린다면, 두 회사는 전기차 부문 전략을 새로 짜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SK 조지아공장의 건설 중단은 바이든 당선인의 정책 및 공약과도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대표적인 친환경 에너지정책 옹호론자이다. 그는 전기차 구매 촉진을 위해 세제 혜택 확대, 2030년까지 미국 내 전기차 충전소 50만개 신설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ITC의 세 번째 결정 연기를 코로나 확산 탓만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정을 종합할 때 ITC의 결정 연기 이면에는 내부의 정무적 판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A변호사는 이 사건 심리와 관련돼 ITC의 앞으로 행보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일반적으로 예비판정에서 최종 결정까지 기간이 짧을수록, 최종 결정이 번복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A변호사의 설명이다. 반면 이 사건의 경우와 같이 최종 결정이 거듭 뒤로 밀린다면 위원회의 고심이 그만큼 깊다는 반증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위원회가 한 차례 더 연기를 결정한다면 그때는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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