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불신시대'... PB형 '랩 어카운트' 급성장
상태바
사모펀드 '불신시대'... PB형 '랩 어카운트' 급성장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0.12.01 03: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년 대비 은행 사모펀드 취급 59% 급감
투자자 의견 반영한 자산관리 '랩' 급성장
사모펀드와 달리 투자현황 실시간 확인
"중대형 증권사 유리... 업계 격차 커질 듯"
여의도 증권가. 사진=시장경제신문 DB
여의도 증권가. 사진=시장경제신문 DB

시중은행과 투자자들이 사모펀드를 꺼리면서 프라이빗뱅킹(PB) 지점을 통한 랩 어카운트가 호황을 맞고 있다. 전문가들은 PB 랩에 필요한 인프라와 전문인력을 갖춘 증권사와 그렇지 못한 중소 증권사간의 격차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30일 이영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은행권 펀드 수탁계약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4,603건이었던 국내 시중은행 사모펀드 수탁계약은 올 들어 9월까지 1,881건으로 59% 급감했다. 

KB국민은행과 IBK기업은행 수탁계약이 대폭 줄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745건에서 올해 160건으로 78.5% 감소했고 기업은행은 253건에서 51건으로 줄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수탁계약 1,243건을 맺어 시중은행 중 가장 많은 실적을 기록했지만 올해 58.7% 감소한 513건을 기록했다. 

은행 관계자는 사모펀드 취급과 관련해 "은행들이 얼마 안 되는 수수료를 벌자고 위험을 감내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이 수탁계약을 거부하는 가운데 일부 증권사가 수탁사 역할을 맡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액자산가들도 사모펀드보다 PB형 랩을 선호하면서 최근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2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가 판매한 지점형(PB형) 랩 잔고는 연초 4조2,950억 원에서 지난 9월 5조7,092억 원으로 32.9% 늘었다. 반면 사모펀드 설정액은 지난해 월평균 9조2,191억 원에서 올 1~10월 5조803억 원으로 급감했다.

랩은 증권사가 투자자 의견을 반영해 자산관리를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다. 돈을 어디에 투자했는지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반면 사모펀드의 경우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 어디에 투자했는지를 알 수 없었던 경우가 다반사였다.

PB형 랩은 투자자 맞춤형인 까닭에 수익률 평균을 내기가 쉽지 않지만 업계에선 연 3~4% 정도의 안정적인 수익률을 원하는 고객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PB형 랩은 투자자가 증권사에 랩 가입 의사를 밝히면 증권사가 투자자 요구에 맞춰 포트폴리오 구성을 제안하고 이후 세부 내용을 조율 후 투자를 집행한다. 

본사형 랩은 같은 분야의 공모펀드보다 수익률이 양호한 것으로 집계됐다. 25일 기준 중국에 집중 투자하는 랩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50~60% 수준으로 설정액 10억 원 이상 같은 분야 공모펀드 평균 수익률(30.0%)에 비해 높았다.

본사형 랩은 법인 비중이 70% 이상이지만 PB형 랩은 개인 자산가가 대부분이다. 본사형 랩은 펀드처럼 정형화된 상품이 많고, PB형은 투자자의 성향과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맞춤형이 일반적이다. 

본사형 랩은 최소가입금액이 5,000만 원 이하인 상품도 있지만 PB형 랩은 맞춤형 운영을 하기 때문에 최소 가입금액은 수십억 원 이상이다. 실제로는 100억 원 이상을 넣는 투자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PB형 랩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증권사는 미래에셋대우다. 이 증권사의 PB형 랩 설정액은 지난 9월 기준 2조8,609억 원으로 2위 이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 이어 삼성증권 7,410억원, 하나금융투자 3,956억 원, 신한금융투자 3,836억 원, 한국투자증권 2,462억 원, NH투자증권 2,419억 원 순이다.

증권사마다 집중 육성하는 랩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신한금융투자, NH투자증권은 사모펀드에서 이탈하는 자산가를 잡는데 방점을 두고 최소 가입금액이 수십억원 이상인 프리미엄 상품을 집중적으로 개발중이다. 이 가운데 NH투자증권의 '크리에이터 어카운트'는 11월말 기준 1,500억 원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NH투자증권 자산관리전략부 관계자는 최근 PB형 랩의 약진과 관련해 "1990~2020년 사이 변동성을 살펴보면 한국 23.7%, 미국 14.1%, 중국 28.3%로 우리나라는 증시 변동성이 매우 큰 시장"이라며 "위험 1단위당 수익률에서 한국이 0.17%로 미국의 0.56%, 중국의 0.39%에 비해 낮아 한국 주식에만 투자시 위험 분산 효과를 누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덕재 NH투자증권 랩운용부장은 "랩 가입자를 대상으로 세무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사모펀드에서 오는 자산가를 잡기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중"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삼성증권과 KB증권은 랩 투자자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최소가입금액을 낮추고, 펀드처럼 간편하게 투자할 수 있는 본사형 랩을 많이 내놓고 있다. PB형 역시 자산의 일부를 본사형으로 편입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향후 랩 어카운트를 운용할 수 있는 중대형 증권사와 그렇지 못한 중소형 증권사 사이의 격차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증권가 관계자는 "랩어카운트는 판매만 하는 사모펀드와 달리 증권사가 직접 운용하는 상품으로 운용결과를 증권사가 책임져야 한다"면서 "전문인력과 각종 인프라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형 증권사들은 쉽사리 출사표를 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랩 어카운트 시장 역시 '규모의 경제'라서 '큰 손'을 데려올 수 있는 지점 영업력과 증권사 브랜드 밸류가 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