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율 상속세' 확 뜯어 고쳐라, 방치 땐 국가적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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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율 상속세' 확 뜯어 고쳐라, 방치 땐 국가적 재앙"
  • 유경표 기자, 김태영 기자
  • 승인 2020.11.2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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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타당한가' 시장경제 창간 9주년 토론회
"100년 기업 막는 고율상속세, 전세계 유일무이"
홍기용 "선진국 상속세 폐지, 정치권 주목해야"
이성봉 "스웨덴 반면교사... 상속세 개편 절실"
신현한 "가족기업, ESG·경영 성과 오히려 높아"
이영한 "현행 상속공제 실효성 의문, 개선 필요"
오문성 "캐나다 '과세이연' 참고를... 기업 상속부담 덜어줘야"
홍기용 한국납세자연합회장(왼쪽 두번째)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징벌적 기업 상속세, 타당한가’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사진=이기륭 기자
홍기용 한국납세자연합회장(왼쪽 두번째)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징벌적 기업 상속세, 타당한가’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사진=이기륭 기자

우리나라의 고율 상속세 제도가 ‘100년 기업’의 탄생과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해외 주요 선진국의 사례에서도 원활한 기업의 상속·증여가 기업의 영속성과 경제 성장, 고용안정 등 사회적 이익으로 연결됐다는 분석이다. 학계 전문가들은 기업의 경영권 승계를 단순한 ‘부의 대물림’으로 인식하는 시각에 물음표를 던지면서, 국내의 유명무실한 기업상속공제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시장경제와 자유경제포럼은 18일 오후 2시30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징벌적 기업 상속세, 타당한가’를 주제로 긴급 경제현안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 좌장은 국내 조세행정 및 세무회계 분야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인 홍기용 인천대 교수가 맡았다. 발제는 이성봉 서울여대 교수가 ‘100기업 가로막는 기업 상속세제 문제점과 개편방안’을, 신현한 연세대 교수가 ‘가족기업에 관한 선행연구’를 주제로 각각 발표를 진행했다. 토론자로는 오문성 한국조세정책학회장(한양여대 교수)과 이영한 서울시립대 교수가 참여했다.   

발제문 발표에서 이성봉 교수는 국가경쟁력과 관련해 ‘축적우위’의 개념을 먼저 설명했다. 학술적으로 국가경쟁력이란 하나의 기업이 국·내외에서 갖는 생산역량을 합한 것으로 규정하는데, 최근에는 이를 뛰어넘는 개념인 ‘축적우위’가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다. 

‘축적우위’는 기업의 자본과 기술, 인적자원, 경영 노하우 등이 종합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제조업의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축적우위 확보 여부는 경제의 지속가능발전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 이 교수 견해다. 

이 같은 축적우위를 창출하기 위한 핵심 조건으로는 원활한 기업승계를 꼽았다. 우리나라는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소기업 모두 현재 창업 1, 2세대를 거쳐 3, 4세대로의 기업 승계 문제에 직면한 상황이다. 높은 상속세 부담으로 기업승계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한 경우, 기업 투자와 일자리가 감소하는 등 심각한 국가적 문제로 돌아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성봉 서울여대 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이성봉 서울여대 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이 교수는 우리나라와 해외의 기업상속세 제도 비교를 통해 ‘축적우위’ 이론의 근거를 제시했다. 결론적으로 제도적 장치를 통해 기업 상속을 원활하게 돕거나 상속세를 폐지한 나라의 경우, 국가 경제에 긍정적 영향이 나타나는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기업 승계 관련 조세 부담을 대폭 덜어주는 상속공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가업 성격이 강한 기업은 30% 사전공제를 포함해 우리 돈으로 약 500억원의 공제를 한도 내에서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제를 받기 위해선 최대주주로 10년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사업 영위기간이 30년 이상이어야 하는데다, 10년 간 정규직 근로자수 연인원을 무려 1000% 유지해야 하는 등 부담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업종 전환도 자유롭게 할 수 없도록 가로막아, 융복합화가 대세인 현재의 산업 발전 흐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형적 제도라는 비판이 거세다. 

이 교수는 “제도가 잘 정비된 독일은 증여를 통한 공제가 전체의 90%에 달하는데, 우리나라는 독일에 비해 가업상속 비율이 10분의 1 수준에 그치는 상황”이라며 “독일은 기업의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주식을 파는 상황은 만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복지의 국가’로 잘 알려진 스웨덴의 사례도 소개됐다. 스웨덴은 2004년부터 상속세를 과감히 폐지한 이후 약 10년간 세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등 경제 성장의 수혜를 입었다. 특히 GDP 대비 세수 비중이 줄어드는 양상이 나타났는데, 이는 기업 활동이 늘고 경제가 활성화된 증거라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기업승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 인식은 반기업정서와 소유 경영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면서 “우리나라의 상속세제는 전문경영체제를 사실상 강제하고 있는데, 전문경영 체제의 선택은 주주의 몫이지 사회제도로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고율 상속세로 '매각' 선택하는 기업들... 고용도 '휘청'

신현한 교수는 ‘가족기업에 관한 선행연구’를 주제로 가업 승계에 관한 해외 사례들을 분석했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상속세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매각 수순을 밟거나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함을 지적하면서, "가족경영보다 전문경영인 체제가 더 우월하다는 실증적 근거는 없다"고 단언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오너가(家)에서 기업 지분 4~5%를 가지거나 이사회 이사로 등재된 경우를 가족기업으로 분류할 때, 미국 포춘500대 기업 중 무려 42%가 가족기업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현한 연세대 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신현한 연세대 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가족기업의 형태를 가진 사례는 드물지 않았다. 해외 주요 경제관련 학술지들이 집계한 통계를 보면, 가족기업의 비중은 ▲27개국 20개 대기업의 30~53%(La Porta et al) ▲동아시아 9개 국가 2980개 상장기업의 3분의 2(Claessens et al) ▲서유럽 13개 국가 5232개 상장기업 중 44%(Faccio and Lang) ▲글로벌 상장기업 전체의 55~71%(Villalonga and Amit) 등으로 나타났다. 

신 교수는 가족기업만이 가지는 긍정적인 특성도 소개했다. 그는 해외 주요 통계를 근거로 “전문경영인 기업 대비 창업주가 경영할 때 경영성과가 가장 높았다”며 “19개의 실증 연구 중 12개에서 가족기업의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 성과가 높았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가 소개한 해외 선행연구 결과를 보면, 가족기업은 사회적 명예를 중시해 사회공헌 활동에 관심도가 높았고, 미래 가치를 위한 장기적인 투자에도 적극적이었다. 가족기업과 거래하는 협력사는 마진·회사활동성·자산효율성 등 경영 성과가 전반적으로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신 교수는 “시장의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기업의 경영 주체가 가족인지, 전문경영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기업 운영이 효율적이지 않다면 얼마든지 도태될 위험이 상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신 교수는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10년후, 20년 후 상속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지는데, 금덩어리를 상속하는 것 보다 높은 상속세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누가 기업을 운영하려 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기업들이 매각 단계를 밟으면 해가 갈수록 우리 경제의 심각한 저해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징벌적 성격의 고율 기업 상속세... "제도 개선 시급"

이영한 서울시립대 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이영한 서울시립대 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발제가 끝난 후 이어진 토론에서 이영한 교수는 우리나라 기업 승계 제도의 전반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기업승계세제의 개념을 ‘가업’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기업경영의 안정적인 승계’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업’의 개념이 지나치게 강조되다보니, 우리나라 기업승계제도의 사후관리요건 등에서 최대주주 지분율과 업종전환 금지 요건 등이 존치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 교수는 “최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사후상속보다는 생전 증여 형태의 기업승계 방식을 선호하고 있었다”고 했다. 독일의 사례처럼 상속보다는 증여 방식이 갖는 이점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이 교수는 “선대 경영자들이 예기치 않게 사망할 경우. 가업상속공제를 받기 위한 사전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후손들의 경영권 분쟁 등으로 기업승계가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후계 경영자가 경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선 경영기법과 전문기술, 노하우 등을 전수받아야 한다”며 “이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므로,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가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과도한 상속세 부담으로 인해 기업들이 조세회피를 하거나, 불필요한 인수·합병, 자산매각 등이 발생해 회사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장수기업 경영자들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가, 기업 가치와 경쟁력을 높인다는 실증적 연구결과도 많이 있다”고 말했다. 

오문성 한양여대 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오문성 한양여대 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두 번째 토론자로 나선 오문성 교수도 우리나라의 기업상속공제 제도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공평한 상속과 효율적 기업승계를 목표로, 상속세 및 증여세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오 교수는 “기업의 영속성 측면에서 볼 때, ‘상속’을 완전히 사적 영역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잘 경영되는 기업이 상속만으로 기업 지배구조가 변경되는 것은 당사자인 주주나 사회 전체적으로 모두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라며 “이러한 부정적 측면 때문에 독일과 일본 등 각국 세제는 원만한 기업승계를 위한 지원제도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현재의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보호하려는 법익은 경영을 잘 하고 있는 대주주의 경영권을 보호하는데 있다”면서 “경영권의 안정은 궁극적으로 바람직한 기업의 영속성을 보장하고, 고용환경이 저해되는 것을 막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속재산에 대한 과세 공평과 기업 지배구조의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선 상속재산 중 기업의 영속성에 영향을 주는 주식 등의 재산에 대해 '과세이연' 혜택을 주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업의 후계자가 상속재산을 처분하기 전까지 과세이연을 허용하는 방안을 도입하면, 세금을 전부 면제한 것이 아니므로 과세 공평의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오 교수는 “현명하고 합리적인 세제 선택은 이해관계인의 불만을 최소화시키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기용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등 선진국이 상속세를 아예 폐지하거나 공제제도를 대폭 완화해 운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할 때가 됐다”면서 기업 상속세제에 대한 정치권의 시각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최대 약 60%에 이르는 현재 상속세율은 지나치게 높다”며 “글로벌 추세에도 맞지 않고 오히려 국가경쟁력을 저해하는 고율 상속세제는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속세를 폐지하기 어렵다면 개인소득세율보다 상속세율을 더 높게 유지하고 있는 현행 제도만이라도 고쳐야 한다”고 부연했다.

한편, 이번 토론회는 코로나 학산 방지를 위해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시책을 적극 반영해 진행했다. 토론회 주요 내용은 유튜브 채널(http://asq.kr/YLZHh6EMi3OG)을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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