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pick] "삼바 위법 없다"던 금감원의 판단 번복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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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삼바 위법 없다"던 금감원의 판단 번복 미스터리
  • 양원석 기자
  • 승인 2020.10.23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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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공판 시작으로 되짚어 본 삼바수사 의혹
'삼바 위법 없다'던 금감원의 황당한 입장 번복
진웅섭 전 원장 "여러기관 평가, 위법 없다 결론" 
참여연대 출신 김기식 원장 취임 후 입장 돌변 
회계기준원도 문제없다던 결론 1주일만에 뒤집고 "위법"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기간은 짧았는데 여러 가지를 했습니다. 제가 워낙 일의 추진력, 속도가 빠른 편이어서. 대표적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건, 1년여 끌어온 것 제가 되자마자 일주일 만에 결론을 냈고요.”

지난해 6월24일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은 tbs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 공장’에 출연해, 자신의 금감원장 재임 시절 성과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재임 기간 18일. 역대 최단명 금감원장이란 오명을 안고 있는 그의 지난해 방송 출연 발언을 다시 소환한 이유는, 22일 시작된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공판 때문입니다.

위 사건은 박영수 특검부터 무려 4년을 끌어온 검찰 삼성 수사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30페이지에 달하는 위 사건 공소장을 살펴본 학계 및 법조계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는 검찰의 공소유지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습니다. 검찰 내부서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그림이 안 나온다’는 반응이 일반적입니다. 학계에서는 “기업의 통상적인 주가 관리 행위를 시세조종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란 견해에 공감을 표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혐의를 먼저 정해 놓고, 사실관계를 꿰어맞춘 것처럼, 공소장 기재 내용이 부자연스럽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분식회계 혐의적용에 대한 학계 및 전문가그룹의 반응도 다르지 않습니다. 회계학 전공 교수와 공인회계사들은 18년 11월 금융당국이 분식회계 의결을 내기 전부터 ‘고의 분식’이라는 당국의 판단과 다른 목소리를 냈습니다. ‘연결회계에서 지분회계로의 변경은 해석의 문제일 뿐, 분식은 아니다’라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합니다.

검찰의 삼성 수사와 관련된 공판은 크게 2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서울고법 형사1부가 심리 중인 이재용 부회장 파기심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달 검찰이 기소한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입니다. 두 사건은 기초사실관계가 같습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통해 이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강화했으며, 합병 성사를 위해 그룹 미래전략실 주도로 광범위한 시세조종(주가 조작)과 삼성바이오 분식회계가 이뤄졌다는 것이 검찰 판단입니다.

검찰 공소사실을 기준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면, 시세조종은 합병 전 물산 주가를 떨어트리기 위한 수단으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는 합병 전 모직 주가를 올리기 위한 도구로 각각 사용됐습니다. 시점상 제일모직 주식가치 상승을 위한 삼바 분식회계가 먼저 진행됐고, 그 뒤에 물산 주가 하락을 위한 시세조종이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삼성바이오 분식회계는 4년간 이어진 검찰 삼성 수사의 근간이자 모든 의혹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검찰의 삼성 수사 역시 첫 출발은 삼바 분식회계 의혹이었습니다.

 

김 전 원장 “일주일만에 결론”... 금감원 판단 번복 과정, 다시 살펴야

삼성 수사의 기점(起點)이라 할 수 있는 분식회계 혐의는 검찰에게 양날의 칼과도 같습니다. 혐의 입증에 성공한다면, 분식과 시세조종을 양 갈래로 하는 검찰의 경영권 불법 승계 밑그림은 힘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입증에 실패하면 전혀 다른 국면이 전개됩니다.

합병 전 제일모직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그 자회사인 삼성바이오 기업가치를 부풀렸다는 것이 검찰 기본 시각인데, 그 전제가 되는 회계분식이 없다면 검찰의 이 부분 주장 내지 설명은 허언이 되고 맙니다. 이 경우 삼바 분식회계를 전제로 한 검찰 삼성 수사의 신뢰도는 훼손이 불가피합니다. 김기식 전 원장의 위 발언을 되짚어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김 전 원장이 스스로 밝혔듯, 그는 삼바 분식 의혹에 대한 금감원 입장을 취임한 지 보름 남짓한 기간 안에 뒤집었습니다. 수장이 바뀐 지 2주 만에 금융당국이 기존 판단을 번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과정을 살펴볼 이유는 충분합니다.

그의 말처럼 단 1주일 만에 특정 기업에 대한 금융당국의 분식 여부 판단이 번복됐다면, 이는 김 전 원장의 자찬(自讚)처럼 자랑할 일이 아니라, 그 경위를 살펴 판단 과정에 위법은 없었는지를 따지는 것이 상식에 부합합니다.

검찰이 대규모 전담팀을 구성, 삼성 수사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결정적 계기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와 금감원의 ‘고의 분식’ 판단이었습니다. 금융당국이 이런 판단을 내리게 된 과정에 부당하거나 위법한 정황이 있다면 이 사건 수사는 처음부터 정당성을 상실합니다.

 

진웅섭 전 원장 “삼바 의혹, 여러 외부평가 거쳐 문제없다 결론 나와”

김 전 원장 취임 이전 삼바 분식회계 논란에 대한 금융당국의 판단은 일관됐습니다.
2017년 2월 16일 진웅섭 당시 금감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 중 삼바 분식회계 관련 특별감리를 해야 한다는 일부 의원의 질의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여러 외부평가를 통해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고, (특별)감리는 구체적인 혐의가 나와야 가능합니다. 

삼성바이오 관계사인 바이오에피스에 대한 회계처리는 2015년, 2016년 반기보고서에 대한 감사나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실시한 위탁감리에서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김 전 원장 취임 이전 삼바 분식회계 논란에 대해 금융당국 및 전문가집단은 “회계처리는 적정했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2016년 금융당국의 위탁을 받아 삼성바이오를 감리한 한국공인회계사회의 판단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전문가집단의 시각을 잘 보여줍니다. 공인회계사회는 감리 후 “중요성 관점에서 삼성바이오 재무제표는 적정하게 작성됐다”고 판단했습니다.

삼성바이오 위탁 감리에 참여했던 A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삼성바이오 문제의 핵심은 연결회계를 적용하다가 지분법 회계로 변경한 사실에 대한 당부 판단인데, 고의 분식을 했다고 볼만한 사정은 없었다. 다른 감리위원들의 견해도 같았다”고 털어놨습니다.

A는 회계학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학자 중 한 명으로 특히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 조예가 깊습니다. K-IFRS은 외부감사인과 당해 기업에 큰 폭의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기존 기업회계기준(GAAP)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A는 “K-IFRS가 부여한 자율의 범위를 위법하게 넘어섰다고 볼만한 사정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부연했습니다.

 

‘회계기준원’ 관계자 참여한 ‘IFRS 질의회신 연석회의’... “삼바 회계 적법”

삼바 분식 의혹에 대한 전문가그룹의 견해를 살필 때 놓쳐서는 안 되는 이벤트가 있습니다. 
공인회계사회의 위탁 감리가 실시된 16년 말 열린 ‘IFRS 질의회신 연석회의’가 그것입니다. 

‘IFRS 질의회신 연석회의’는 금감원에 대한 참여연대의 질의를 계기로 개최됐습니다. 금감원은 회의가 끝난 뒤 참여연대에 ‘회계처리는 적법했다’는 취지의 답변을 보냅니다.

회의 개최 사실과 그 결론은, 이 사건 실체를 규명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증거’로서 의미를 가집니다.

회의에는 금융감독원, 한국회계기준원, 한국공인회계사회, 대형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삼바 회계담당자, 회계학 전공 교수 2명 등이 참여했습니다.

참석자들의 면면에서 알 수 있듯 정부와 공공기관, 회계법인과 학계가 망라된 최고의 전문가 회의였습니다. 특히 회계기준원 관계자가 참석한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회계기준원은 국내 회계처리 기준의 제정과 개정, 해석, 기업 회계관리자 및 회계법인 등의 질의에 대한 회신을 담당하는 독립된 민간 기구입니다. 기업에 있어 회계기준원의 답변만큼 강력한 공신력을 가지는 문서도 없습니다.

 

법원도 주목한 ‘IFRS 질의회신 연석회의’

법원도 위 회의의 존재 및 회신결과를 눈여겨 봤습니다.

지난해 1월 2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삼성바이오가 금융위 제재처분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며 낸 신청사건을 인용했습니다. 서울고법과 대법원은 효혁정지신청을 받아들인 1심 판단에 위법이 없다며 금융위 측의 항고 및 재항고를 기각했습니다.

행정법원 재판부는 3가지 이유를 들어 삼바 측이 낸 신청을 인용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금융당국이 분식회계 의혹을 최초 제기한 시민단체 참여연대의 관련 질의에 ‘삼성바이오 회계처리는 적법했다’는 답변을 보낸 점,

두 번째 다수의 회계전문가들이 ‘삼성바이오의 2015년 회계처리 변경은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 부합한다’는 의견을 밝힌 점,

세 번째 증선위 제재처분의 효력을 정지하지 않으면 신청인(삼성바이오)이 대규모 분식회계를 한 기업으로 낙인찍히고 그 신용과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될 것으로 판단되는 점 등을 고려해 이 사건 신청을 인용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 집행정지신청 인용 이유 중 일부.

재판부가 적시한 첫 번째 사유는 16년 말 열린 ‘IFRS 질의회신 연석회의’를 뜻합니다.

 

금감원, 김 전 원장 취임 이후 태도 급변  

진웅섭 전 원장의 국회 답변을 보면, 적어도 17년 2월까지 삼바 분식회계 논란에 대한 금융당국의 판단은 ‘K-IFRS 기준에 부합한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금융당국의 판단을 뒤엎은 주역이 바로 김 전 원장입니다.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삼바 분식회계 논란에 대한 금감원의 태도는 김 전 원장의 취임을 계기로 급변했습니다.

그가 떠난 지 약 한 달 뒤인 18년 5월, 금감원은 삼성바이오 회계 이슈 처리 과정을 묻는 기자들에게 “분식회계 정황이 있으며 감리위원회와 증권선물위원회로 안건을 넘겼다”고 답했습니다.

김기식 전 원장은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아 외유성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는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재임 18일 만에 낙마했습니다.

1994년 참여연대 창립 멤버인 김 전 원장은 2011년까지 사무국장 정책실장 사무처장 정책위원장을 지냈습니다. 2012년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기 전까지 김 전 원장은 이력의 대부분을 참여연대에서 쌓았습니다.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전후해, 삼바 분식 및 합병비율 부당 산정 의혹을 처음 제기한 곳이 바로 참여연대입니다. 

참여연대에서 경제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그가 금감원 수장에 임명된 직후, 당국의 판단이 180도 달라졌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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