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금에 CEO 중징계 엄포... 사모펀드 기피하는 증권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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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금에 CEO 중징계 엄포... 사모펀드 기피하는 증권사들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0.10.1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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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수 연초 대비 9.46% 감소
증권사들, 펀드 사고로 6,051억원 배상
증권가 "수수료 적고 리스크 너무 크다"
전문가들 "사모펀드 본연의 자리로 돌려놔야"
은성수 금융위원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은성수 금융위원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증권사들이 사모펀드 판매를 기피하고 있다. 금융권에선 라임·옵티머스 사태 당시 판매사가 책임을 떠안으면서 예상했던 일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13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최근 5년간 금융투자상품 투자자 피해에 대한 보상지급 내역'에 따르면, 2016년 1월부터 지난 8월 말까지 약 5년간 금융사가 투자상품 문제로 피해자들에게 이미 지급했거나 지급 예정인 보상액은 총 1조66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증권사들은 6,051억원, 은행은 4,615억원을 지급했거나 지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모펀드 시장의 외형도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설정보고가 접수된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는 일 평균 기준 2018년 17건, 2019년 18.5건으로 급증하다 올해 4.1건으로 급감했다. 작년과 단순비교하면 4분 1수준이다.

월별 건수로 봐도 2018년 1월 417건이던 신규 사모펀드 수는 지난해 4월 805건으로 약 2배 증가했다가 5월 금융당국이 옵티머스에 대한 검사에 착수하면서 신규 설정 규모는 월 54건으로 주저앉았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7일 기준 사모펀드 수는 9,953개로 집계됐다. 연초 1만994개에 비해 1,041개(9.46%) 감소한 셈이다.

사모펀드 설정이 급감한 것을 두고 업계에선 투자자들의 사모펀드 시장에 대한 불신, 대형 판매사들의 판매 기피 등이 주된 요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수요가 줄어들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사모펀드 순자산은 433조355억원으로 올해 초 416조679억원 대비 16조9,676억원(4.07%) 증액된 것으로 집계됐다.

결국 사모펀드 대란으로 증권가가 사모펀드 취급을 기피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실제로 각 은행과 증권사 지점을 중심으로 한 자산관리(WM) 시장도 크게 위축됐다. 업계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를 상대로 팔린 사모펀드 잔액은 8월 말 기준 19조3,413억원으로 작년 말 대비 26.7% 감소했다.

그래프=시장경제신문
그래프=시장경제신문

특히 증권사들이 사모펀드 취급을 꺼리는 이유는 환매중단 등 사고발생시 천문학적인 배상금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이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8월 말 기준 주요 환매 연기 펀드 현황'에 따르면 국내 판매된 펀드 상품의 환매 중단규모는 6조589억원에 달하며 향후 약 7,263억원의 추가 환매 중단이 우려되고 있다. 

관계자들은 특히 호주부동산펀드(2,420억원)와 옵티머스(2,109억원),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1,391억원), 헤리티지(817억원), 팝펀딩(325억원) 등에서 추가 환매중단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환매중단 규모가 늘수록 증권사의 부담이 가중된다. 환매 중단액 대부분을 증권사가 배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가 관계자들은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없는 한 사모펀드 기피는 계속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13일 한 증권가 관계자는 "현재 운용과 판매가 법적으로 엄격히 분리돼 있는데 판매 중인 펀드의 문제점을 판매사가 제대로 확인할 수 없으니 사고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대부분의 펀드 사고는 운용사, 수탁사, 판매사의 과실이 혼재돼 있는데 판매사에 100% 보상을 강요하고 CEO 중징계를 엄포하는 등 당국의 원님재판식 사후처리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합리적 판단이 어려운 고객을 상대로 불완전판매가 행해진 일부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모펀드는 '투자자 책임의 원칙'하에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사고방지책으로 제시한 '펀드사와 수탁사 간 견제 감시 체계'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펀드 운용단계에서 판매사, 수탁사가 운용상 불법행위를 감시, 견제하는 체계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는 유사시 수탁사에게도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므로 수탁업무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조장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탁사가 리스크에 대비해 수수료율을 대폭 인상할 경우 운용사가 마진을 남기기 어렵게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금융당국이 수탁서비스 회사들에게 사모펀드 운용사에 대한 감독·보고 의무를 요구하면서 은행이 수탁업무를 기피하는 사례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최근 한 사모펀드 운용사는 부동산 펀드를 만들면서 기존 이용하던 수탁은행에 문의를 하니 평소 6bp였던 수탁 수수료를 60bp로 올려달라는 답을 받기도 했다.

한 전문가는 "사모펀드는 고위험·고수익을 전제로 고도의 전문성과 자금력을 가진 개인들이 사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전제하며 "이익은 당연시하면서 리스크는 부당한 것으로 보는 투자자들의 인식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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