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대표소송·감사위원 분리선임, 한국경제 뿌리째 흔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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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대표소송·감사위원 분리선임, 한국경제 뿌리째 흔들 것"
  • 김태영 기자
  • 승인 2020.09.2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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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毒 든 성배, 공정경제법 개정을 경계한다' 토론회
권재열 교수 "다중대표소송, 국제기준에 역행"
천재민 변호사 "감사위원 분리선임, 외국 투기자본 침입"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상장회사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독(毒)이 든 성배, 공정경제법 개정을 경계한다'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이기륭 기자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상장회사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독(毒)이 든 성배, 공정경제법 개정을 경계한다'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이기륭 기자

"상법개정안 전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배당기준일 규정과 관련된 내용들은 합리적인 적용이 가능하다. 개선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다중대표소송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임제다. 지배구조 개선, 경영투명성 확보 등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입법 취지와 달리 도입이 된다면 한국 경제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모두 발언 中 

정부와 거대 여당이 주도한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 감독에 관한 법률 제정안 등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이 정기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특히 상법개정안에는 다중대표소송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임 등 기업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독소조항이 다수 포함돼 재계의 근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될 경우 무분별한 소송과 외국 투기자본 침입으로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는 분석이 쏟아진다. 주요 기업들이 잇따라 소송전에 휘말리면서 경제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법안들이 향후 기업활동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국내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상사법 전문가들이 독소조항을 쟁점별로 분석하는 토론회가 개최됐다. 

시장경제신문과 자유경제포럼은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대흥동 한국상장회사회관 대강당에서 '독(毒)이 든 성배, 공정경제법 개정을 경계한다' 정책토론회를 진행했다.

좌장으로는 금융감독원 분쟁조정 전문위원과 법무부 상법 회사편 특별분과위원을 역임한 강희주 증권법학회장(사법연수원 23기)이 나섰다. 토론회 발제는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자본시장법) 교수, 최승재 대한변협 법제연수원장(연수원 29기)이 각각 맡았다. 쟁점토론에는 천재민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연수원 28기),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참여했다. 토론회는 참석한 전문가들이 각각 발제를 한 뒤 종합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권재열 교수는 연세대 법대를 나와 조지타운대 로스쿨에서 법학박사(SJD)를 받았다. 법무부 상법개정특별위원,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시험·행정고등고시 출제위원 등을 지낸 중견학자로 국내외 학술지에 다수의 연구논문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한국상사법학회 연구이사, 한국증권법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저서로 <자본시장법 사례와 이론>, <한국 회사법의 경제학>, <상법판례 100선(공저)>, <주식회사법(공저)> 등이 있다.

권재열 교수는 해외 입법례와의 비교를 통해 상법개정안이 안고 있는 법리적·현실적 문제점을 집중 분석했다. 

 

규제형편, 과거보다 악화... 상법개정안은 해묵은 논쟁

마이크를 잡은 권재열 교수는 현재 한국의 규제형편이 과거보다 개선됐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의 대답은 분명했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근거는 명확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실적 부진에 불확실성까지 가중되면서 올해 국내 기업의 협상 여건은 지난해보다 훨씬 악화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실시한 '2020년 주요 대기업 단체교섭 현황과 노동현안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경제실적 전망을 두고 "작년보다 악화할 것"이라는 응답이 54.1%에 달했다. 

권 교수는 "과거와 비교했을 때 바뀐 것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서민의 삶이 더욱 어려워졌고 여당이 단독으로 법안 처리에 나설 수 있는 176석의 의석수를 확보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법개정안이 해묵은 논쟁 주제에 불과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20대 국회 당시 여야 의원들이 앞다퉈 상법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모두 입법으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주요 선진국, 다중대표소송제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상법개정안의 핵심은 △다중대표소송제도 신설 △감사위원 분리선임 △3% 의결권 제한규정 등이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 주주가 불법 행위를 한 자회사(또는 손자회사) 이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상장사 지분 0.01%만 보유해도 대표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가총액이 약 14조원인 LG 주식을 2주(약 16만원)만 사면, 수십개의 LG그룹 자회사 임원들을 상대로 소송할 수 있다.

권재열 교수는 주요 선진국 사례를 언급하며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은 국제적인 스탠다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다중대표소송 자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경제적 일체성이 인정되는 제한적 요건에 한정해 인정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주주대표소송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소송 제기권은 단독주주에 부여한다. 또한 소송의 제소권자는 소송에서 문제가 되는 행위가 있는 시점에 이미 주식을 소유했던 주주 또는 그 시기에 주식을 보유했던 주주여야만 한다.

일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일본 역시 소송 주체는 단독주주에 있다. 청구권자는 자회사의 완전모회사 주주이면서 동시에 총의결권의 100분의 1이상 또는 발행주식 총수의 100분의 1이상을 가진 주주에 한해 소송할 수 있다. 

권 교수는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모두 법원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만 정식 제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법원의 소제기허가를 신청해 적격성 판단을 인정받아야 제소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주요 선진국들은 자회사의 법인격과 주주권 보호, 다중대표소송제도의 남용 가능성을 고려해 다중대표소송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정리했다. 이어 "한국의 입법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전적으로 역행하는 처사다"고 비판했다.

 

감사위원 분리선임, 모범국 미국도 시행하지 않아

감사위원 분리선임제에 대한 지적도 날카로웠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제는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 1명 이상을 이사 선출단계에서부터 다른 이사와 분리해 별도로 선출하는 제도다. 현행법은 이사를 먼저 선임한 후 이사 가운데 감사위원을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권재열 교수는 "미국 사례만 비춰봐도 감사위원회 위원들은 이사회에서 선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감사위원회 제도의 모국으로 손꼽힌다. 이사회 내부에 설치되고 대부분 독립적인 사외이사 중심으로 구성된다. 감사위원회 제도의 모범국(模範國)인 미국조차 감사위원 분리선임제는 시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비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권 교수는 "감사위원 분리선임 도입 시 회사 인수를 꾀하는 세력이 감사위원회를 이용해 기업의 내부 정보를 취득할 수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영 간섭을 통해 인수하기 쉽도록 고의적으로 기업 가치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의견이다. 

기관투자자의 행동주의 수단으로도 악용될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는 "단기차익을 노리는 기관이 개입하면 장기 투자는 어려워지고 근시안적 경영이 고착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기업의 장기성장에 방해가 될 것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기존 주주대표소송도 외면... 도입 강행시 기업가치 훼손

천재민 변호사가 '독(毒)이 든 성배, 공정경제법 개정을 경계한다' 시장경제신문 창간 9주년 정책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기륭 기자
천재민 변호사가 '독(毒)이 든 성배, 공정경제법 개정을 경계한다' 시장경제신문 창간 9주년 정책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기륭 기자

토론에 나선 전문가들은 상법개정안의 문제점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특히 천재민 변호사는 다중대표소송 도입에 앞서 기존 주주대표소송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천 변호사에 따르면, 주주대표 소송은 상법 제정 당시부터 규정돼 있었지만 1997년에 비로소 최초 사례가 나왔고 소송 건수도 통계상 총 38건에 지나지 않는다. 다중대표소송은커녕 현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주주대표소송조차 주주들이 활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주주대표소송도 외면당한 상황에서 굳이 다중대표소송까지 도입할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법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법인격이라고 하는 것은 독립돼 있는데 다중대표소송은 모회사를 대리하는 주주가 자회사 이사회를 상대로 소송하는 것이다. 꼭 허용해야 한다면 미국과 일본처럼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맞다. 법률로서 강행한다면 막을 수 없지만 법리적으로는 옳지 않다."

천재민 변호사는 지주회사 증가에 따라 자회사 비위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대부분 외부감사인에 의한 감사, 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 조사 등 이중삼중 감독체계를 통해 상당부분 달성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와 여당이 다중대표소송제 시행을 강행할 것이라는 예측에 대해서는 "도입 시 기업 가치는 훼손당하고 본업에 충실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경고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으로 시장경제신문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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