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면 다 걸린다"... '공정거래법 23조의 2' 재계 공포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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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면 다 걸린다"... '공정거래법 23조의 2' 재계 공포 확산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0.09.2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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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입맛대로 해석 가능... "기업 옥죄기 우려"
총수 사익편취 막는다며 처벌 범위 무제한 확대
변호사들 "명확성의 원칙, 죄형법정주의 위반"
효성 조현준, 대림 이해욱 공판서 문제점 수면위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논란... 경제계 "현장 목소리 반영" 호소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사진=시장경제DB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사진=시장경제DB

재벌의 사익편취와 경제력 집중을 막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공정거래법 ‘23조의 2’가 재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조현준 효성 회장, 이해욱 대림 회장 등이 동 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고, 한화그룹의 경우 가까스로 고발을 면했지만 장기간에 걸친 공정위 조사로 호된 몸살을 앓았다. 위 조항은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금지를 목적으로 한다. 

동 조항에 대해 학계가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적용 기준이나 대상이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범죄구성요건 자체가 모호해 얼마든지 임의적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해당 조문을 확대 적용하는 경우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서 벗어날 기업집단은 사실상 없다는 것이 상사법학계의 공통된 우려이다.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위헌조항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공정위가 동 조항 적용을 남발한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정확한 사실 조사보다는 심증과 예단에 기대 사안을 왜곡하고 있다는 쓴소리도 나오고 있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효성 계열사 가운데 한 곳인 효성투자개발이 다른 계열사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GE) 발행 영구전환사채 250억원 상당을 간접 인수한 행위와 관련, 공정거래법 23조의2를 위반했다며 과징금 부과 등을 의결하고, 사건을 검찰에 고발했다. 혐의는 공정거래법 23조의2 제 4항이다. 동 항은 [특수관계인은 누구에게든지 제1항 또는 제3항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도록 '지시'하거나 해당 행위에 '관여'하여서는 아니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올해 4월 중순 열린 이 사건 1회 공판준비기일에서 변호인단은 동 항 구성요건의 모호함을 지적하면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위 조항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관여'이다. '지시'가 아닌 '관여'는 지극히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이다. '관여'의 의미를 확대 해석하면 동항을 위반했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기업인은 없다. 기업인에 대한 규제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처벌 범위가 무제한 확장되는 모순이 벌어진 것이다.

 

'관여' 땐 처벌?... 입맛대로 법해석 여지 

구체적 증거 없는 고발, '기업 발목잡기' 우려도

지난달 열린 이해욱 대림 회장에 대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1차 공판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공정위와 검찰이 이 회장에게 적용한 법조항 역시 ‘총수 사익편취 금지’를 명시한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4항이다. 

동항 적용을 위해선 먼저,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가, 당해 기업집단 총수(일가 포함) 혹은 그 총수가 보유한 지분 비율 30% 이상(비상장기업은 20%)인 계열사와 불공정거래행위를 했는지 여부 ▲계열사가 위 불공정거래행위를 함에 있어 총수의 ‘지시’ 혹은 ‘관여’가 있었는지 여부를 살펴봐야 한다. 

공정위는 2010년 7월 12일 이 회장이 설립한 APD(Asia Plus Development)를 ‘승계‧사익편취용 법인’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 회사가 호텔사업을 기획하거나 브랜드를 개발할 만한 역량을 전혀 갖추지 못했으며, 대림으로부터 브랜드 사용 수수료만 받아 챙겼다는 것이 공정위와 검찰 판단이다. 

그러나 이 공판 증인으로 출석한 공정위 담당 조사관은 이 사건 핵심 쟁점 중 하나인 ‘오라관광과 APD 간 브랜드 수수료 협상‘ 과정에 이 회장이 관여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담당 조사관을 상대로 한 증인신문 절차에서 드러난 것은 더 있다. 공정위는 APD를 수수료만 받아 챙긴 소규모 신설 법인으로 판단했으나, 이 회사에 몸담은 임직원 상당수가 엘리트 호텔리어였으며, 국내 5성급 호텔에 다양한 컨설팅을 제공한 사실은 파악하지 못했다. 이같은 사실은 공정위 조사의 신뢰도에 의문을 던진다.   

공판 과정에서 드러난 공정위의 ‘부실조사’ 정황은 공소사실의 객관성을 의심케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는 향후 이 사건 심리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규제대상 확대 '공정거래법 개정안' 통과 유력

재계 "산업생태계 위축" 전전긍긍

최근 정부 여당은 '의원 발의' 형태의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이미 지난달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거대여당이 장악한 국회 현실을 고려할 때 정기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상당하다. 개정안은 대기업 집단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사익편취) 규제 대상을 확대하고, 과징금 상한도 두 배로 늘리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한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고, 누구든 자유롭게 고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개정안이 원문 그대로 국회를 통과하는 경우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고발이 난무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검찰 수사와 공정위 조사 중복으로 인한 행정력 낭비, 소송 대응에 따른 기업 리스크 가중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경제단체들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내 경제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기업 현장의 의견을 반영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달 31일 상법개정안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에 대한 의견을 국회에 전달했다. 전경련은 “사익 편취 규제대상을 확대하면 경영상 필요에 의해 수직계열화한 계열사 간 거래가 위축돼 기업 경영의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속고발권이 폐지될 경우 누구나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기업을 직접 고발할 수 있게 돼 경쟁사업자에 의한 무분별한 고발, 공정위·검찰의 중복조사 등 큰 혼란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법조계도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변호사단체 '경제를생각하는변호사모임'(경변)은 2일 성명을 통해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산업생태계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며 "국민 세금을 투입해 정책적으로 육성한 우리 기업들이 외국기업에 매각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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