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내용과 딴판... 공정위 '이해욱 조사', 공정(公正)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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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내용과 딴판... 공정위 '이해욱 조사', 공정(公正) 했나
  • 정규호 기자
  • 승인 2020.08.3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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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대림 이해욱 공정거래법 위반 1차 공판
증인신문 통해 드러난 조사·기소 4가지 문제점
"이해욱 불공정행위 지시-관여" 주장 허점투성이, 공정성 의심
사진=시장경제신문DB
사진=시장경제신문DB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자들에게 배포한 ‘대림그룹 이해욱 회장 사익편취 사건’ 보도자료와 공정위의 고발로 시작된 공판은 그 내용이 전혀 달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5월 3일 '기업집단 대림의 총수일가 사익 편취 행위 엄중 제재' 사실을 발표했다. 대림 이해욱 회장이 그룹 계열사를 시켜 자신과 아들이 소유한 APD(Asia Plus Development)에 ‘부당한 사업 기회’를 제공하고, 공정거래법이 금지한 ‘유리한 조건의 거래 행위’를 지시 혹은 관여했다는 내용이다. 공정위는 이 같은 결론을 바탕으로 이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올해 8월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이해욱 회장에 대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1차 공판이 열렸다. 첫 번째 증인으로 공정위 김 모 조사관이 나왔다. 그는 이 회장의 사익편취 행위를 조사한 당사자이다. 검찰과 변호인단이 이날 증인신문에 할애한 시간은 약 5시간. 14시에 시작된 공판은 20시쯤 끝났다.

공판은 의문의 연속이었다. 증인으로 나온 공정위 담당 조사관의 진술과 공정위가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혐의 내용 사이 간극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이날 증인신문을 통해 드러난 공정위 조사 및 검찰 기소의 허점은 대략 4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공정위 조사관은 "이 회장이 호텔브랜드 수수료 협상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김 모 조사관은 6시간 가량 진행된 증인신문이 거의 끝나갈 무렵, '(대림산업-오라관광-APD 브랜드 사용) 수수료율 협상과정에서 이해욱 피고인이 관여한 사실은 있나요?'라는 변호인의 질문에 "직접 관여한 사실은 없습니다다"라고 답변했다.

‘대림산업이 오라관광이나 APD에게 '수수료율을 몇 %로 하라'고 지시한 증거 자료나 사실은 있나요?’라는 질문에도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공정위와 검찰이 이 회장에게 적용한 공정거래법 23조의2 4항 구성요건이 성립하려면, 이 회장이 위 기업들 사이 브랜드 사용 수수요율 협상 과정에 '관여'하거나 '지시'한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조사관의 증언을 기준으로 하면 공정위의 고발이나 검찰의 기소는 기초가 무너진다.

두 번째, 공정위 보도자료는 이 회장을 ‘지시 및 관여자’로 특정했다. 그러나 이날 증언 가운데 이 회장이 대림 계열사간 부당한 거래행위를 지시했거나 그 행위에 관여했다고 볼 만한 내용은 없었다. 

검찰은 ‘지시 및 관여자’의 증거로 이 회장이 참석한 '호텔 사업 주간회의' 문건을 제시했다. 문건에 따르면 이해욱 회장, 대림산업, JOH, 오라관광, APD 관계자들은 매주 화요일, 목요일 두 차례씩 대림그룹 호텔 사업 회의를 가졌다.

변호인단은 이 문서 어디를 봐도 ‘사익편취’를 의심할만한 증거는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변호인단은 "대림의 브랜드 호텔 사업은 이 회장이 총대 매고 진행한 그룹 차원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였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회의 참석 사실을 '계열사간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지시 내지 관여'의 증거로 보는 검찰 주장은 논리의 비약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검찰은 ‘지시 및 관여’를 했다고 볼만한 녹취록, 쪽지, 결재서류 등의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세 번째, 공정위는 문제된 호텔 브랜드 ‘글래드(GLAD)’ 개발 과정을 살피면서 치명적 허점을 드러냈다. 

검찰은 이 회장이 소규모 신설법인을 설립한 뒤, 대림 측에 호텔브랜드 ‘글래드’ 상표권을 동 회사에 이전할 것을 지시, 상표권 사용에 따른 수수료조로 매년 상당한 규모의 금전적 이익을 취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 회장이 만든 신설법인이 바로 APD이다. 공정위와 검찰은 "글래드는 대림이 개발했으며, APD는 대림으로부터 매년 상표권 사용료조로 막대한 대금을 수취했을 뿐 호텔 브랜드 개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덧붙여 검찰은 "APD는 호텔 브랜드를 개발할 능력도, 호텔 체인사업을 운영하거나 이를 기획할 능력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이런 밑그림은 변호인단의 반대신문으로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김 모 조사관은 변호인단이 진행한 반대신문에서 APD 주요 임직원의 업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음을 시인했다. APD는 소규모 신설법인이었지만 소속 임직원의 '맨 파워'는 달랐다. APD 창립 멤버 대부분은 국내외 글로벌 호텔 체인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엘리트 호텔리어'였다. APD는 공정위 및 검찰의 주장과 달리 국내 5성급 호텔에 다양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사업 역량을 발휘했다. 

APD가 '글래드' 로고 개발과 관련돼 또 다른 협력사 'JOH'에 지급한 대금의 액수와 관련해서도 공정위와 검찰은 판단 오류를 범했다. 검찰은 APD가 JOH에 지급한 금액이 불과 1000만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변호인단은 글래드 브랜드 개발을 위해 APD가 JOH 등 외주업체에 지급한 대금이 총 3억원임을 밝혔다. 이 가운데 JOH에 입금한 금액은 2차례에 걸쳐 2억2000만원이었다. 

네 번째, 공정위 조사관은 ‘피고인 이해욱을 조사 한 적이 있나요?’라는 변호인단의 반대신문에 “없다”고 증언했다.

이번 공판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공정위의 고발로 시작됐다. 공정위와 검찰이 이 회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3조의2 제4항이다. 공정위 조사 및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계열사들 사이에 불공정한 거래 행위를 지시하고, 이를 통해 사익을 편취한 주체는 이해욱 회장이다. 

김 모 조사관의 이날 증언은 공정위의 이 사건 '조사 부실'을 시사한다. 공정위가 이 회장에 대한 조사도 하지 않고, 그의 혐의를 특정한 뒤 사건을 검찰로 넘긴 사실이 이날 증언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공판이 끝난 후 기자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공정위 보도자료와 공판 내용이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특히 “이 회장의 죄는 ‘이것’이다”라고 특정할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공정위는 무엇을 근거로 이 회장을 사익편취로 고발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 공판 기록을 다시 들여다봤지만 결론은 같았다. 

공정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국내 첫 기업 총수 사익편취 제재’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앞으로의 공판이 이번과 같은 양상으로 진행된다면, 공정위는 '성과 지상주의'에 매몰돼 본연의 권한을 남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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