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노조법' 위반 했다더니... 檢, '업무방해죄'로 엮어 억지 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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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노조법' 위반 했다더니... 檢, '업무방해죄'로 엮어 억지 기소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0.08.2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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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에버랜드 노조방해 의혹 재판' 항소심 분석
공소시효 만료되자 노조법 아닌 형법 적용
"기소 자체가 검찰권 남용... 과잉금지원칙 위반"
"기업 징계행위에 형법 적용? 노조법 취지 상실"
수사 정당성 도마위... "위법한 압수수색 자료 증거능력 없어"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 사진=연합뉴스TV 캡쳐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 사진=연합뉴스TV 캡쳐

'삼성에버랜드 노조설립 방해' 혐의로 기소된 강경훈 부사장 등 삼성전자 전·현직 임직원 항소심 공판에서 변호인단이 검찰의 공소제기에 대해 '위법성'을 지적했다. 검찰이 공소시효 만료로 노동조합법상 부당노동행위를 적용할 수 없게 되자, 이를 피하기 위해 업무방해죄를 적용했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에버랜드 측이 2011년 당시 노조간부였던 근로자 3명을 징계한 사실에 대해서도, “정당한 징계사유가 있었고, 규정에 따라 절차를 거쳐 진행됐다”며 “이를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볼 수 없다”고 항변했다. 

18일 서울고등법원 제10형사부 심리로 열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 혐의 항소심 공판에서 삼성물산 측 변호인단은 변론요지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다. 변호인단은 ▲검찰 공소제기의 법리상 문제점 ▲검찰 부당징계 공소사실의 당부 및 업무방해죄 구성요건 충족 여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당부 ▲양형 등 주제별로 구분해 항소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변호인단은 이 사검 검찰의 공소 제기 자체가 위법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검찰이 이 사건에 적용한 혐의는 노동조합법상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 업무방해죄이다. 변호인단은 검찰의 혐의 적용 자체가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꼼수라는 점을 역설했다.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 공소시효는 5년.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할 수 없는 사건을 기소하기 위해 구성요건이 다른 업무방해죄를 무리하게 적용, 검찰권을 남용했다는 것이 변호인단 항변의 핵심이다. 검찰이 적용한 업무방해죄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다음은 변호인단의 이 부분 항변.

"검찰은 노동조합법 공소시효 완성을 회피하기 위해 부당노동행위로 보기 힘든 사안까지 묶어 업무방행죄를 적용, 공소를 제기했다."

이 사건 발단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에버랜드 측은 근로자 3명을 징계에 회부, 정직 및 감봉 결정을 내렸다. 기숙사 무단침입과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회사 명예훼손 등이 이유였다. 

징계를 받은 근로자들 중에는 노조위원장과 부위원장도 포함돼 있었다. 2013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이른바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폭로하면서 회사 측의 위 징계에 '노조 탄압'이란 꼬리표를 붙였다. 회사 측이 노소 설립을 막기 위해 그 간부들을 부당하게 징계했다는 것이 심 의원 주장의 요지이다. 금속노조 삼성지회도 같은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건희 회장 등을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했다.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2015년 ‘문건의 작성 주체와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만큼, 그룹차원에서 부당노동행위에 개입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에버랜드에 대해서는 구약식(벌금) 결정을 내렸다. 

3년 후인 2018년 2월, 검찰 '이명박 전 대통령 다스 수사팀'은 증거 확보를 위해 삼성전자 본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던 중, 압수 대상이 아닌 노조 관련 문건 등을 발견, 이를 모두 가져갔다. 검찰은 압색으로 확보한 문건과 이에 터잡은 관련자 진술 등을 토대로 삼성전자서비스 전현직 임원 등 32명을 무더기 기소했다. 동시에 검찰은 에버랜드 전현직 임직원 13명도 재판에 넘겼다. 두 사건에는 각각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의혹', '삼성 에버랜드 노조설립 방해 의혹'이란 명칭이 달렸다. 두 사건은 구체적 사실관계가 다르다. 적용 혐의 역시 전자는 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후자는 업무방해죄로 다르다.

그러나 두 사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사건의 출발점이 '검찰의 위법한 압수수색'에 있다는 점이다.

이달 10일,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의혹 사건'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3부는 검찰 압수수색의 위법성을 인정,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변호인단은 이 사건 1심부터 지속적으로 '위법수집증거 배제의 원칙'을 인용하며, "위법한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증거와 그로부터 파생된 2차 증거 모두 범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는 변호인단의 항변을 배척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판단을 달리했다.

“압수수색은 영장에 따른 압수 물건이나 요건 등을 엄격히 해석해야 하고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하는 대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 이 사건 1차 압수수색에서 하드디스크가 발견된 장소는 영장에 의한 검증장소로 볼 수 없고, 영장제시도 이뤄지지 않아 위법하다.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압수된 만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고, 영장 미제시 역시 영장주의에 대한 본질적이고 실질적인 침해로 봐야 한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의혹' 항소심 재판부 판시이유 중 일부.

위 항소심 판결은 실체적 진실 발견 못지 않게 절차적 정당성의 확보가 중요하다는 우리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에버랜드 노조 설립 방해 의혹' 사건도 그 시작이 검찰의 위법한 압색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원심 파기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辯 "정당한 사유에 의한 징계는 사용자의 권리... 1심 판결은 과중한 측면 있어"

검찰은 강경훈 부사장 등 삼성 임원들이 노조설립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노조원들에 대한 징계를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변호인단은 ‘부당징계’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변호인단은 “각각의 징계는 대상자와 절차, 사유 등이 모두 다르고 시기적으로도 상당한 간격이 있다”며 검찰 공소사실의 허점을 지적했다. 변호인단은 “정당한 징계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력'(威力)으로 판단해 처벌하는 것이야말로 형벌권을 남용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삼성 미래전략실 노사업무 총괄 책임자였던 강경훈 부사장에 대해 징역 1년 4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노조 부지회장 조 모씨를 부당징계해 노조활동을 방해했다는 검찰 측 공소를 받아들여 ‘업무방해’ 혐의 유죄를 인정한 것이다. 형법상 업무방해죄의 법정형 상한은 징역 5년으로, 법정형 상한이 2년인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보다 형량이 높다. 

근로자들의 위법한 쟁의행위를 업무방해죄로 처벌한 대법원 판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반대로 사용자의 근로자에 대한 징계권 행사를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봤다.  

변호인단은 1심 판결이 안고 있는 법리상 모순을 이렇게 설명했다. 

“노조법이 '부당노동행위'를 도입한 목적은, 일반 형법 영역과는 다른 노사대등의 원칙과 노사관계 고유의 질서 유지에 있다. 1심 판결처럼 사안을 판단하면 ‘부당노동행위’를 도입한 입법취지가 몰각(沒却)된다. 이런 논리라면 실질적으로 모든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업무방해죄 적용 및 처벌이 가능해진다.”

특히 변호인단은 1심과 같이 사용자의 징계행위를 노조법이 아닌,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편법이 허용된다면, 우리 헌법의 기본원리인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할 수 있다고 항변했다. 

“노조법에서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보다 유효하고 직접적인 규제와 구제절차를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의 징계행위를 형법상 업무뱅해죄 처벌대상으로 삼는 것은 노사 간 자율적 협상을 오히려 타율적으로 강요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근로3권 보장이라는 목적과 비교할 때, 법익 균형성을 해치므로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 

형법상 업무방해죄 구성요건의 불명확함을 고려해야 한다는 항변도 이어졌다. 변호인단은 “업무방해죄의 경우, 부당노동행위 금지규정에 비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모호한 측면이 있어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며 “법정형의 형평성을 고려하더라도 애초 입법자가 예정한 불법과 책임의 양을 초과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변호인단은 에버랜드의 징계행위를 업무방해죄 구성요건 중 하나인 '위력'으로 보기 위해선 ▲노조가 징계를 예측할 수 있었는지 ▲징계로 인해 노조 운영에 심대한 혼란 및 손해가 초래되는 위험이 발생했는지 ▲징계권 행사 과정에서 폭행이나 강요 또는 없는 사실을 꾸며낸 일이 있는지 여부 등을 살펴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서 노조위원장인 박 모씨에 대한 징계가 경미해 노조 운영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노조원들도 적극적으로 노조활동을 전개하는 등 방해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징계 과정에서도 정당한 절차를 거쳤고, 비위행위를 꾸며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변호인단은 "피고인들이 복수노조 시행 초기, 대응 과정에서 일부 부당노동행위가 있었던 점은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삼성이 노조에 대한 인식과 문화를 완전히 바꿨고, 그룹 전체적으로도 노사문화 개선을 위해 힘쓰고 있는 점을 참작해 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변호인단은 "징계 등으로 인한 노조 피해가 중대하지 않았음에도 1심은 과도한 양형을 선고했다"며 "부당노동행위를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정당성, 실효성 논란이 있는 만큼 책임주의 비례원칙에 어긋나지 않도록 양형에 반영해 줄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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