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선물' 하자니 법에 걸리고, 안 하자니 마음에 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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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선물' 하자니 법에 걸리고, 안 하자니 마음에 걸리고
  • 방성주 기자 정규호 기자
  • 승인 2017.05.15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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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이션은 안 되고 편지지는 된다? 카네이션보다 비싼 편지지는?

 

날 종이 꽃은 안 되고, 종이 편지는 가능하다고 보도한 KBS 사진=KBS 뉴스9 캡처

가슴 찡한 노래 '스승의 은혜'를 연습하던 학생과 학부모를 쓴웃음 짓게 만든 것은 매스컴이 "스승의 날, 카네이션 대신 편지" 라는 뉴스를 보도한 이후부터다. 언론사들은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을 거론하며 선생님들에게 "카네이션 한 송이도 법에 저촉된다"고 전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카네이션은 공개석상에서 대표자가 달아야 한다며 구체적인 전달방식도 알려줬다. 그러면서 기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감사의 마음을 편지에 담아 전하는게 좋겠다"며 편지를 쓰라고 조언했다.

이러한 뉴스를 듣고 본 시청자들은 각박해진 세상에 혀를 내둘렀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학부모 정 모씨(45)는 "옷깃에 달아주는 천 원짜리 카네이션 한 송이는 안되고 손편지만 된다는 것은 비약이다. 고액 상품권을 선물하지 말고 손편지를 쓰라고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초구에 사는 김 모 고등학생(18)은 "김영란 법으로 선생님께 10원 한 장 건네지 말라고 하는데 편지지도 다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냐, 그리고 카네이션보다 비싼 편지지도 많다"며  모순적인 규제의 이면을 지적했다. 

학부모들의 말대로 시장엔 몇 백, 몇 천원 대 카네이션보다 비싼 편지지가 수두룩했다. 하물며 수 만원대 수입 제품과 장식이 첨가된 편지지도 상당수 존재했다. 일반 문구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스승의 은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간 편지지는 2000~3000원 대로 가슴에 다는 카네이션보다 비쌌다. 해외 직구 편지지는 배송비를 제외하고도 1만 원을 넘었다. 다발 카네이션보다 비싼 것이었다. 심지어 국내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도금이 들어간 편지지도 판매했다. 뉴스 보도대로라면 가능한 선물인 셈이다.

한편 ‘스승의 날 선물’이라는 검색어를 소셜커머스에서 검색하면 김영란법의 존재가 무색할 정도로 다양한 상품이 쏟아져 나온다.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둔 5월 13일 기준으로 ‘쿠팡’에서는 1만 4천개, ‘위메프’에서는 812개, ‘티몬’에서는 452개가 선물 상품이 나온다. 물론 김영란법 적용대상이 아닌 스승에게 드리는 선물로 판매되는 것이다. 하지만 광고의 몇몇 문구에서 김영란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학교법인에 종사하는 교사에게 선물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 학생과 학부모들의 혼란을 자아내고 있다.

    1. 스승에 날 문구가 들어간 편지지 (3800원) , 2. 24K 도금 제품이 들어간 편지지, 3. 해외 직구입 편지지 (2만원), 4. 가슴에 다는 카네이션 (600원)

▼ 부정청탁금지법 제정 이후 첫 스승의 날, 선물 관련 상품 매출 감소

현직 학교 선생님들이 카네이션 한 송이도 받을 수 없게 된 것은 '부정청탁금지법 제8조'에 따른 것이다. 법에 따르면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는 ‘직무연관성’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청탁금지법은 직무와 연관성이 있다면 대가성 여부와 관계없이 금품을 일체 받을 수 없도록 규정했다. 그렇기에 10원 한장 받아서는 안된다.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도 위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똑같은 종이에 마음을 담아 적은 편지는 괜찮다고한다.

이같은 규제 도입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스승의 날이 지정된 첫해 1983년 롯데·신세계·미도파 백화점은 스승의 날을 맞아 지난해보다 30~50% 매출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2005년 롯데백화점은 5월 매출이 스승의날, 어린이날, 성년의날, 어버이날 순으로 많으며 매출이 약 15%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10년 전 1997년, 언론은 스승의날 백화점의 고객 유치 경쟁이 경제를 살린다는 의미도 부여했다. 작년만 해도 백화점들은 스승의 날을 맞아 ‘감사선물 축제’ 등 판촉 행사를 열었고 “선물 수요가 넘친다”고 자축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전년 대비 매출이 감소했다. 롯데 백화점 본점과 현대백화점 신촌점 관계자는 "올해 본사 차원에서 스승의날 행사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롯데, 신세계 백화점은 2017년 스승의 날을 앞둔 기간, 상품권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약 30% 줄었다고 11일 발표했다. 백화점 관계자는 “김영란 법 도입의 여파로 스승의 날 목전에 두고 배송선물 준비량이 작년에 비해 절반도 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심지어 관계자는 “발송된 상품을 고객이 받지 않겠다고 반송하는 선물도 있다”고 전했다.

여파는 소상공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스승의 날 이틀 전 주말, 남대문시장은 여느 주말과 같이 쇼핑객들로 붐볐지만 스승을 위한 선물을 구매하러 온 고객들은 찾아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본지 기자는 몇몇 잡화점에 들려 은사(恩師)에게 전할 선물을 구매한 고객과 선물포장을 요청하는 고객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악세서리 상가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김영철 사장(46)은 “우리는 선물 포장고객은 거의 없다”고 한숨을 지었다.

스승의 날을 목전에 둔 주말 신촌 대학가에 위치한 백화점 잡화코너는 한산했다 사진=시장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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