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투證, 투자자 사지 내몰아"... 알펜루트 투자금 회수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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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투證, 투자자 사지 내몰아"... 알펜루트 투자금 회수 '후폭풍'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0.08.0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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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펜루트, 한투증권 자금 일시회수로 '된서리'
"증권사 살자고 투자자 우산 뺏어" 도덕성 도마위
'조국 펀드' 다음은 디스커버리... "장하성 동생이 대표니 믿어달라"
한국투자증권 모습. 사진=MBC뉴스화면캡처
한국투자증권 모습. 사진=MBC뉴스화면캡처

'알펜루트' 환매중단 사태를 둘러싸고 "한국투자증권이 폭우에 투자자들의 우산을 빼앗았다"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조국 펀드' 연루 의혹과 디스커버리 불완전판매 논란이 아직 진정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투자증권의 도덕성 문제가 또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법조계에선 "향후 원금손실이 발생할 경우 판매사인 한투 측의 불완전판매로 볼 여지도 있다"는 의견까지 제기됐다. 

7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알펜루트자산운용은 최근 만기가 도래한 6개 채권형 펀드에 대해 상환연기를 선언했다. 설정액은 403억원이며 상환되지 못한 금액은 225억원 상당이다. 연말까지 8개, 내년 3개 펀드의 만기가 도래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추가 환매연기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앞서 현금화된 자산과 그간의 이자 수익률은 고객들에게 지급됐다. 알펜루트 관계자는 "1년 안에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알펜루트는 7월 말에도 사채 만기와 펀드 만기의 '미스매치(불일치)'로 관련 펀드 1,300억원 가운데 약 절반의 환매를 미뤘다. 해당 사모펀드는 연 5%의 확정금리 수익을 내세운 앱솔루트 애플·체리·파인 알펜루트 리니어 등이다. 알펜루트 측은 "기초자산의 이율이 높고 신용등급도 좋은데 코로나19로 신용시장이 경색돼 일부 환매가 연기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11월 말 기준 알펜루트자산운용의 펀드를 가장 많이 판매한 증권사다. 한투의 설정액은 2,971억원으로 전체 판매금액의 31.64%에 달한다.

#. 한투 움직이자 알펜루트 위기 시작

알펜루트의 '유동성 고난의 행군'은 지난 1월 한국투자증권이 총수익스와프(TRS) 자금을 회수하면서 본격화됐다. 당시 한투와 미래에셋대우 등은 라임사태로 사모펀드에 대한 국민여론이 악화되자 선제적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460억원가량의 TRS를 일제히 회수했다. 이로 인해 알펜루트의 유동성이 급감하면서 약 2,300억원 규모의 펀드 환매연기를 해야 했다.

TRS는 증권사(총수익 매도자)가 펀드에 담긴 주식·채권 등 기초자산을 매입하고 이를 담보로 운용사에 대출을 해주는 방식의 거래다. 운용사는 100억원 규모의 펀드로 증권사와 TRS 계약을 할 경우 200억원으로 덩치를 키울 수 있다. 운용사는 레버리지를 얻고 증권사는 고액의 수수료를 챙기는 구조다.

당시 한투 측은 "지난해 10월부터 일부 금액에 대한 상환을 요구했으나 돌려받지 못해 불가피하게 1월 말 전액상환을 요구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알펜루트 측의 설명은 달랐다. 한투 측이 순차적으로 상환받기로 약속해놓고 자금회수 이틀 전인 1월 21일 260억원의 전액상환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업계에 알려지면서 상환요구가 잇따랐고 결국 환매중단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한투 측이 전액상환을 요구한 다음날인 22일 미래에셋대우도 540억원의 대출금 전액 회수를 요구했다.

당시 한투 측은 자금회수와 관련해 알펜루트가 드물게 개방형 펀드로 유동성 관리대상이었음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운용사들이 유동성이 낮은 자산으로 개방형 사모펀드를 운용할 수 있었던 배경은 증권사의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 부서들이 수수료를 노리고 적극적으로 TRS 자금을 공급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업계 일각에선 "대형 증권사가 뒤늦게 운용사의 유동성과 투자 포트폴리오를 문제삼는 것은 나무에 오르라 해놓고 흔드는 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동성 부족과 관련해 알펜루트 관계자는 당시 "30% 이상 자사 펀드를 판매한 회사가 일시에 전부 환매를 요청하는데 어렵지 않을 기업이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실제로 일부 증권사들은 앞서 실적이 좋았던 알펜루트 측에 오히려 TRS 규모를 증액하라고 요구했다가 반년 만에 입장을 바꿔 자금을 회수해간 것으로 알려졌다. '폭우에 우산 뺏기'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 사진=한국투자증권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 사진=한국투자증권

특히 지난 1월 28일 금융감독원 역시 한투를 비롯한 대형 증권사들과 회의를 열고 TRS 자금 회수자제를 당부한 바 있다.

속이 타는 쪽은 일반 투자자들이다. 증권사들이 알펜루트의 차입금을 선제적으로 회수할 경우 펀드에는 상대적으로 비우량자산이 남아 투자자들의 피해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투를 비롯한 증권사들이 알펜루트에 대출한 자금을 회수하면서 결과적으로 수 많은 투자자들을 위험으로 내몰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에선 "증권사들이 운용사에 대출한 원금을 회수하는데는 전력을 다하지만 이미 수수료를 챙긴 해당 펀드의 운용성과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알펜루트자산운용의 펀드 판매 잔액은 약 9,394억원이며 이중 개인투자자들의 판매잔액은 4,766억원으로 집계됐다. 

#. 알펜루트, 빅히트·마켓컬리 성장 예측하기도 

알펜루트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기획사, 식품배달 서비스 '마켓컬리'의 가능성을 미리 예견하고 투자해온 유망 운용사로 알려졌다. 라임과 달리 위험자산을 대규모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는 평이다. 

유동성 위기를 겪는 와중에 알펜루트는 출범 후 최대 순익을 기록했다. 지난 2월 2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알펜루트자산운용의 2019년 순익은 65억원으로 전년 28억원 대비 132%가 증액됐다. 같은 기간 펀드 설정액은 6,450억원에서 9,190억원으로 증가했다. 

7인조 댄스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월드 팝스타로 발돋움하면서 소속사인 빅히트엔터엔터테인먼트가 상장할 경우 기업가치가 4조원에 달한다는 전망이 나왔다. 알펜루트자산운용은 2018년 빅히트의 지분 2.33%를 187억원에 매수해 적잖은 차익이 예상된다.

마켓컬리도 순항 중이다. 올해 4월 기준 한해 동안 누적 가입자수가 140만에서 390만으로 급증했고 매출은 4,289억원으로 전년 대비 2.7배 성장했다. 2018년 기준 알펜루트는 마켓컬리 보통주를 21.5%보유해 2대 주주에 올라 있다. 김슬아 대표이사가 27.94%로 최대 주주에 올라있다.

지금까지 순익 대부분을 재투자해온 알펜루트의 투자철학도 호평을 받고 있다. 현재 환매중단된 펀드에 고유재산과 임직원 투자금 총 497억원이 투입돼 있는 점도 향후 신뢰회복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8월 알펜루트 자산운용은 100억원을 중고자동차 업체 U사에 지원했다가 U사 대표가 해외로 도주하는 악재를 만났지만, 지급보증을 섰던 사업가 김모씨의 통장을 가압류하며 채권회수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알펜루트 홈페이지 공지
사진=알펜루트 홈페이지 공지

업계 안팎에선 "라임 사태로 인한 한투의 노파심과 이기심으로 일부 운용사와 투자자들이 된서리를 맞았다"는 말이 나온다. 증권사가 투자금을 회수한 것은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도의적인 비판을 면키 어렵다는 취지다.

한국투자증권이 도덕적 비난의 중심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2월엔 한투 측이 70억원 상당을 판매한 디스커버리 자산운용의 'US핀테크 글로벌채권' 펀드가 환매중단되면서 불완전판매 논란이 일었다. 디스커버리 측은 미국 운용사인 DLI를 통해 해당 펀드를 운용해오다 3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수익률 허위보고가 적발돼 자산동결과 투자금 환매중단조치를 받았다.

이후 7월 15일에 한투 측은 해당 펀드 투자자 50여명에게 부실발생 가능성을 고지했다. 보고서 말미에 "디스커버리 자산운용의 대표가 장하성 전 대통령 비서실 정책실장의 동생"이라고 언급하며 이해를 부탁했다. 당시 투자자들은 운용사가 책임을 다할 것으로 믿고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손실이 크게 불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2020. 5. 26 디스커버리 피해자 구제방안 촉구 기자회견.사진=시장경제DB
2020. 5. 26 디스커버리 피해자 구제방안 촉구 기자회견. 사진=시장경제DB

논란이 일자 한투 측은 "직원 개인이 작성한 보고서"라고 선을 그었지만 일각에선 정권 실세와의 연계를 강조해 투자자들을 기만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같은 해 9월 '조국 펀드' 사태에선 한투 소속 직원이 정경심씨와 함께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반출하고 은닉을 도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또 한 차례 국민적 공분을 샀다. 

사진=2020. 4. 7 YTN보도화면 캡쳐
사진=2020. 4. 7 YTN보도화면 캡쳐

한투 관계자는 6일 알펜루트와 관련해 "지난 1월에 특별한 이유가 있어 투자금을 회수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만기가 돼서 자금을 회수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펀드 부실로 볼만한 사유가 없다면 얼마든지 TRS 계약기간을 연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귀뜸했다. 이어 "자금회수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건실한 운용사의 앞길을 막았다는 점에서 도덕적 비난의 소지가 있다"고 논평했다.

다른 관계자는 "알펜루트가 앞으로 환매중단 사태를 원만하게 수습한다면 '죄 없는' 운용사를 괴롭힌 한투에 대한 도덕적 비난 여론은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H법무법인 관계자는 "향후 알펜루트 펀드의 원금손실이 발생하고 그것이 판매사의 TRS 회수와 인과관계가 입증되면 법적으로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TRS회수와 관련해 있을 수 있는 위험성을 투자자에게 충분히 고지하지 않았다면 불완전판매로 볼 여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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