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파트 이름서 '우리말'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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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아파트 이름서 '우리말'이 사라지고 있다
  • 정규호 기자
  • 승인 2020.08.03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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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 불명 콩글리쉬에 외국인은 물론 한국인도 '갸우뚱'
국민 2명 중 1명 "아파트 단지 이름 외래어 남용"
부영 '사랑으로', 금호 '어울림' 등... 순 한글 브랜드 '호평'
사진=각 사 제공
사진=각 사 제공

개나리, 장미, 은마아파트… 이들 아파트는 지역 곳곳에 오랜 기간 자리 잡은 정겨운 우리말 아파트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최근 공급되고 있는 아파트를 보면 언제부터인지 정체 불명의 외래어가 사용되고 있다. 단지명에 외래어를 써야 수요자들이 고급스럽다 느끼고 집값 상승에 도움이 된다는 건설사들의 마케팅 차원인 듯하다.

단지에 붙여지는 '펫 네임'까지 합치면 선뜻 이해가 안되는 경우가 상당하다. 무려 10자 이상의 펫네임을 가진 단지들도 나타나고 있고, 영어, 프랑스어에 우리말까지 더해진 단지명도 있다. 

문제는 다양한 언어를 섞다 보니 외국인은 물론 한국인 보기에도 황당할만한 콩글리시도 있다는 점이다. 건설사의 설명 없이는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든 아파트도 있을 정도다.

국립국어연구원은 2015년 전국 성인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를 한 바 있다. 아주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응답자 중 60.2%가 “외래어나 외국어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쓰인다”고 답했고, 외국어ㆍ외래어 표기가 많은 분야로 52%가 “아파트나 건물명”을 뽑았다. 다른 영역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였다.

한글 브랜드를 꿋꿋하게 지켜나가는 건설사들도 있다. 2006년 한글날 ‘우리말 살리기 겨레모임’으로부터 ‘우리말 지킴이’ 브랜드로 선정된 부영그룹의 ‘사랑으로’가 대표적이다. 금호건설의 ‘어울림’, 코오롱건설의 ‘하늘채’ 등도 한글 브랜드로 유명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나라는 없다"는 말처럼 말과 글을 지키고 발전, 계승하는 일은 우리의 숙명이다. 국가도 없이 전 세계를 떠돌던 유대민족이 이스라엘을 재건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신앙과 더불어 '언어'를 지켰기 때문이다. 우리말 계승에 대해 건설사업계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아파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정체 불명의 이름 모를 외래어를 사용하기 보다 튼튼하게 잘 짓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살기 좋은 아파트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사랑으로, 어울림, 하늘채… 순우리말 아파트들이 얼마나 좋은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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