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간 문자가 '이재용 시세조종' 증거?... 檢, 정도껏 흘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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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간 문자가 '이재용 시세조종' 증거?... 檢, 정도껏 흘리시라
  • 양원석 기자
  • 승인 2020.06.26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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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25시] 심의前 또 등장, 검찰발 '단독' 문제점
부족한 수사력, 흘리기(leak)로 메우는 구태 재현
지상파, 비공개 영장심사 옆에서 본 것처럼 보도
자사주매입, 법령 엄격 제한... 시세조종 수단 될 수 없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본지는 검찰이 26일 예정된 수사심의위원회를 앞두고 ‘정보 흘리기’(리크·leak)에 나설 것이란 예측 기사를 23일 내보냈습니다. 검찰의 리크와 여기에 터잡은 ‘출처 불명’ 검찰發 단독보도는 사라져야 할 구태(舊態)이기에 위 기사의 예측은 빗나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채 이틀이 지나지 않아 대검 수사심의위원회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리크 의심 기사가 출현했습니다. 

24일 한 지상파 방송은 ‘[단독] 삼성증권, 합병용 주가 방어 문자 메시지 확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앞두고, 삼성 측이 삼성증권을 통해 두 회사의 주가를 불법적으로 관리했다는 정황을 검찰이 포착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합병을 앞두고 주가 관리를 위해서 제일모직과 삼성증권 관계자가 주고받은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부연했습니다. 심지어 방송은 “8일 열린 이재용 부회장 영장실질심사 당시 담당 부장판사의 질문에 삼성 측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고도 했습니다. 

◆비공개 영장심사 옆에서 본 듯 기사 작성... 시세조종 증거라며 직원들 문자 대화 공개

위 기사는 리크 기사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검찰이 삼성 직원들 사이에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확보했다’는 보도 내용입니다. 위 방송은 보도를 통해 삼성증권과 제일모직 직원이 나눈 문자 대화를 매우 구체적으로 공개했습니다. 삼성 직원들 사이 문자메시지 내용은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입니다.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은 검찰 수사팀 및 이들과 친분이 깊은 검찰 관계자 외에는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두 번째, 방송은 비공개로 진행된 이재용 부회장 영장실질심사 특정 장면을 마치 옆에서 본 것처럼 보도했습니다. 이는 검찰 내부자가 흘려주지 않고는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방송 내용을 살펴보면 일방적인 검찰 주장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방송은 합병을 앞둔 제일모직 직원이 삼성증권 직원에게 “주가가 현재 수준만 유지하면 좋겠다”는 문자를 보냈고, 삼성증권 직원이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들의 문자 대화를 이 부회장 시세조종 의혹의 증거처럼 제시했습니다.

상장법인에 근무하는 임직원은 자기 회사 주가 동향을 매일 확인합니다. 더구나 합병이란 초대형 이벤트를 앞둔 시점이라면 주가 흐름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 삼성증권 직원의 답변을 일상업무 수준에서 벗어난 이례적인 케이스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직원들이 나눈 문자에 이 부회장은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이들 직원들의 문자메시지를 이 부회장 시세조종 혐의와 엮는 행태는 다분히 악의적입니다.

이 부회장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주가조작을 지시하거나 이를 묵인했다는 심증을 입증하려면, 최소한 이 부회장이 담당자나 책임자를 불러 ‘주가’와 관련된 지시를 한 사실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런 증명이 가능했다면 검찰이 일부 특정 매체를 동원해 리크를 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시세조종 유력 증거라는 ‘자사주매입’... 법령이 요건, 절차, 기준 등 엄격 제한

방송은 시세조종의 또 다른 증거로 제일모직의 자사주매입과 삼성증권을 통한 고가주문 정황을 꼽았습니디.

자사주매입은 법령에 방식과 절차, 기준, 요건이 엄격하게 규정돼 있습니다. 자사주매입은 ▲적대적 기업인수합병을 위한 방어 ▲자사 주식가격의 안정 ▲주주 배당 등을 목적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제일모직의 자사주매입을 시세조종의 유력한 증거로 본다면, 올해에만 같은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할 상장기업이 수십 곳은 될 것입니다.

제일모직이 삼성증권을 통해 ‘高價주문’을 냈다는 보도는 팩트파인딩부터 해야 합니다.

당시 삼성증권은 제일모직의 자사주 매입 업무를 수행하는 증권사 가운데 한 곳이었습니다. 자사주 매입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법령에 의해 요건이 제한돼 있습니다. 호가(呼價) 역시 마찬가지로 법령의 규제를 받습니다. ‘고가주문’이란 용어 자체가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親검찰 매체, 수사심의위 이틀 앞두고 ‘이 부회장 혐의 포착’ 보도

‘이 부회장 경영권 부당 승계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수사부(이복현 부장검사)는 8일 열린 영장실질심사 과정서 20만 쪽에 이르는 수사기록을 증거자료로 제출했습니다. 여기에는 위 문자메시지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럼에도 법원은 ‘혐의 소명 부족’을 이유로 검찰의 영장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검찰의 수사 부실을 반증합니다. 위 방송의 보도대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직원 사이 문자메시지가 시세조종의 유력한 증거였다면 영장심사 결과는 다르게 나왔을 것입니다.

영장실질심사 당시 확인된 객관적 사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위 방송 보도는 대검 수사심의위를 앞둔 ‘여론조성용’ 검찰발 단독기사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 부회장 및 삼성에 대한 검찰의 수사·기소 타당성을 논의하는 수사심의위원회는 26일 오전 대검찰청 회의실에서 비공개로 열릴 예정입니다. 박영수 특검때부터 무려 3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사를 진행하고도 이 부회장 관련 뚜렷한 혐의를 찾지 못한 검찰은 9일 새벽 법원의 영장기각 결정으로 수세에 몰린 형국입니다.

검찰이 혐의 입증보다 리크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수사 부실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위 방송은 ‘삼성 수사’에 관한한 대표적인 ‘친검찰 매체’ 중 한 곳입니다. 2016년 12월 박영수 특검 당시부터 이번과 비슷한 유형의 단독 기사를 다수 생산했으며, 지난해 상반기에만 5건의 삼성바이오 수사 관련 검찰발 단독 기사를 출고했습니다. 방송은 이 부회장 영장심사를 하루 앞둔 7일에도 비슷한 형태의 출처 불명 검찰발 단독기사를 냈습니다([단독] 경영권 승계 '프로젝트G'…이재용, 관여했나). 

◆출처 불명 검찰발 단독기사... 마녀사냥식 여론재판, 특정인 인격 살인 초래     
검찰이 리크를 할 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심증은 있지만 혐의를 발견하지 못한 경우’, 다른 하나는 ‘검찰의 직접 수사 사건이거나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경우’입니다. 리크는 과거 특수부 검사들이 기소를 위해 가장 즐겨 쓴 방법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반부패부로 간판을 바꿔 단 옛 특수부 검사들은 ‘거악척결’이란 구호 아래, 먼저 혐의를 정해 놓고 여기에 사실관계를 꿰맞추는 식의 수사를 진행하곤 했습니다. 혐의 입증이 여의치 않을 때 '수사의 빈틈'을 언론의 리크 기사로 메우는 편법을 쓴 것입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검찰의 리크와 여기에 기댄 단독 기사는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으나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박영수 특검의 수사를 계기로 과거의 망령이 되살아났습니다. 박영수 특검 출범 시점부터 출처 불명의 검찰(특검)발 단독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리크에 기댄 검찰발 단독기사가 위험한 이유는 이들이 특정인에 대한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을 부추긴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들 기사는 검찰이 흘려주는 정보에 기대는 특성 때문인지 거의 예외 없이 검찰 편향적입니다. 검찰의 시각을 그대로 담는 것은 물론이고 검증 안 된 의혹까지 사실처럼 보도하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한발 더 나아가 기자 개인의 상상력을 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 기사가 표적으로 삼은 특정인이나 특정 기관, 기업은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파렴치범으로 내몰립니다. 시간이 흐른 뒤 무죄선고를 받아도 언론이 만들어낸 범죄자 낙인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검찰의 리크와 여기에 기댄 단독기사들은 우리 헌법이 보장한 ‘무죄추정의 원칙’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본질적으로 훼손합니다. 리크를 통해 부족한 수사력을 포장하려는 관행은 청산돼야 할 ‘적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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