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영장기각 부른 '수사 부실', 檢수사심의위 잣대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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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영장기각 부른 '수사 부실', 檢수사심의위 잣대 될 것"
  • 양원석 기자
  • 승인 2020.06.1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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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검 시민위, 11일 수사심의위 부의 심의
통과땐 대검 수사심의회 소집, '수사 타당성' 논의
영장기각 '혐의소명 부족', 부의위원 판단에 영향
법조인 "부의되면 (영장) 재청구 어렵다고 봐야"
檢 "사상최대 금융범죄, 기소 불가피"... "혐의 소명 실패한 검찰이 할 얘기 아니다" 반론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이 나온 9일 새벽 2시 40분경 서울구치소를 나서는 모습. 사진=이기륭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이 나온 9일 새벽 2시 40분경 서울구치소를 나서는 모습. 사진=이기륭 기자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수사부(부장검사 이복현)가 청구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경영진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전부 기각하면서 이 부회장 변호인단이 낸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요청’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서울중앙지검 시민위원장은 위 소집 요청의 첫 단계로 시민위원회 위원 중 무작위로 15명을 추점해 부의위원회 구성을 마쳤다. 중앙지검 부의위원회는 11일 열릴 예정이다. 부의위원회가 “수사심의위를 소집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면, 윤석열 검찰총장은 그 뜻에 따라 검찰수사심의위를 소집해야 한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의 소집 요청이 중앙지검 부의위원회를 통과하면, 이 부회장 관련 검찰 수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다. 검찰 수사팀의 영장 재청구 및 기소 여부와 별개로, 수사의 타당성 내지 적절성 자체가 심판대에 오르기 때문이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도입을 추진한 검찰수사심의위는 기소권, 수사권을 사실상 독점한 검찰의 권한을 견제하는 데 근본 목적이 있다. 검찰의 먼지털이식 수사, 망신주기 수사, 언론을 동원한 마녀사냥식 여론 재판, 현장에 존재하는 자료는 모두 싹쓸이하고 보는 위법한 압수수색 관행 등 주로 인지수사부서 검사들에 의해 벌어지는 수사권 오·남용 폐해를 줄여보자는 데 제도의 의미가 있다.

검찰 스스로의 내부 혁신 혹은 자체 개혁 프로그램의 하나로 도입된 측면이 강해, 내부적으로는 제도 운영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도 존재한다. 위원회의 결정은 구속력이 없다. 다만 검찰수사심의위 운영지침은 ‘검찰총장은 그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했다(동 지침 19조, 29조).

수사심의위 판단을 앞둔 시점에서 법원이 검찰의 영장 청구를 기각한 사유를 들여다보면 검찰이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사진=이기륭 기자.
사진=이기륭 기자.

◆법원, 영장기각 첫 번째 사유는 ‘혐의 소명 부족’

법원이 밝힌 영장기각 사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검찰이 적용한 혐의에 대한 소명 부족’이고 다른 하나는 ‘구속사유 없음’이다.

이복현 부장이 이끄는 수사팀은 20만쪽에 달하는 수사기록을 제출하면서 혐의 소명에 주력했다. 검찰이 이 부회장 등 3인에 적용한 혐의는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및 외부감사법 위반(분식회계) 등이다. 수사팀이 완성한 이 사건 얼개는 이렇다.

[시세조종을 통한 물산 주가 하락-삼바 분식을 통한 모직 주가 상승-이 부회장 보고-이 부회장 그룹 지배력 강화.]

검찰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앞두고 삼성 옛 미래전략실 주도로 물산 주가는 떨어트리고, 모직 주가는 높이는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시세조종). 이 부회장이 지분을 다수 보유한 모직에 유리한 합병비율 산정을 위해, 물산에 유리한 호재는 은폐하고 악재는 부각하는 방법으로 주가를 조작했다는 것이 검찰의 기본 시각이다. 동시에 모직 주가 상승을 위해 그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재무제표를 조작, 4조5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시세조종은 물산 주가 하락, 삼바 분식은 모직 주가 상승을 위한 수단이 된다. 검찰은 이 모든 작업의 목적이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에 맞춰져 있으며, 이 부회장이 주요 내용을 보고받았다는 심증을 갖고 있다.

일부 親검찰 매체는 영장 청구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검찰이 혐의를 입증할 내부 문건을 다수 확보했다’,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 주요 내용을 보고했다는 삼성 임원 진술이 나왔다’는 취지의 기사를 내보내며 영장 발부의 당위성을 적극 홍보했다.

그러나 5일 새벽 나온 법원의 영장기각 사유는 검찰의 혐의 소명이 실패했음을 반증한다. 이런 사정은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밝힌 아래 기각 사유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와 그 정도는 재판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검찰의 長期 수사가 소명하는 것, ‘증거인멸 위험성’ 아닌 ‘수사 부실’

혐의가 소명된 경우 법원이 적시하는 사유는 위와 전혀 다르다. 이런 경우는 대개 ‘검찰이 제출한 자료와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된다’는 문구를 넣는다.

반면 검찰의 혐의 소명이 부족한 경우 ‘주요 혐의에 있어 다툼의 여지가 상당하다’는 점을 앞세운다. 이 부회장 영장심사를 맡은 원정숙 부장판사가 공표한 기각사유는 後者에 해당한다.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와 그 정도는 재판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표현은 ‘혐의에 있어 다툼의 여지가 상당하다’는 말과 그 뜻이 같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불필요한 시비 차단을 위해 표현을 조심했을 뿐, 주된 기각사유가 ‘소명 부족’임은 분명해 보인다.

사진=이기륭 기자.
사진=이기륭 기자.

‘삼성 경영권 부당 승계 의혹’은 검찰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이례적인 ‘장기 수사 사건’이다.

수사기간은 기점을 언제로 잡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벌어진 2018년 12월을 기준으로 잡아도 만 1년 6개월이 지났다. 박영수 특검부터 지금까지 동일 혐의로 이뤄진 압수수색만 50회를 훌쩍 넘겨 이 부문 기록에 있어서도 역대급이다. 소환조사를 받은 전현직 임직원은 모두 110여명, 그 횟수는 430여회에 이른다. 처음부터 검찰이 말한 ‘증거인멸’은 구속사유가 되지 못했다.

이렇게 긴 기간 동안 압색과 소환조사를 해 놓고, 이제 와서 ‘증거를 인멸할 위험이 있다’고 한 검찰 주장은 스스로 ‘수사 부실’을 자인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반대로 수사가 부실하지 않다면, 충분한 증거를 확보한 셈이므로 역시 증거인멸은 해당 사항이 없다.

이 사건 검찰의 장기 수사가 소명하는 것은 ‘증거인멸 위험성’이 아니라 ‘검찰의 수사 부실’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검찰 출신 변호사 “부의되면 (영장) 재청구 어렵다고 본다”

검찰 수사팀이 역대급 시간과 인력을 투자하고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은 앞으로 열릴 수사심의위에서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 영장기각으로 검찰에 대한 수사 부실 비판이 현실화된 점은 수사팀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수사팀은 11일 소집되는 부의위원들에게 ‘수사가 부실하지 않았음’을 해명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 A는 “수사팀 입장에서는 부의해선 안 된다는 점을 설득하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부의 결정이 나면 그 순간부터 검찰은 부담을 지고 갈 수밖에 없다. 부의 결정이 나면 (영장) 재청구는 더 이상 어렵다고 봐야 한다. 대검 수사심의위에서 나중에 기소의견으로 결론이 나도 위원 중 일부가 ‘검찰 수사는 무모하다’ 등의 의견을 내고, 이런 의견들이 언론을 통해 나오면 검찰은 수사는 물론 기소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부의가 필요하지 않음을 설득하는 게 관건이다.”

서초동 로펌 파트너변호사 B는 "영장 기각은 어느 정도 예견된 측면이 있다"면서 "검찰이 혐의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너무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는 부의위원회 참여 시민들이 사안을 판단하는데 있어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검찰 “심의 자체가 불필요... 기소 불가피”, 변호인단 “삼성 합병, 삼바 이슈... 여러 법원이 문제없다 판단”

법원의 영장기각과 함께 수사심의위 소집 여부가 이 사건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자 검찰은 친분 있는 매체와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전하고 있다. 

검찰이 말하는 ‘수사심의위 소집 불가론’의 요점은 ‘이 부회장은 사상 최대 금융범죄의 당사자이므로 기소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까지 수년간에 걸쳐 수사를 진행한 결과 그 기록만 20만 페이지에 이를 만큼 내막을 파헤치는 데 최선을 다했는데, 기소조차 할 수 없다면 검찰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검찰 스스로 무너트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주장도 있다. 영장기각 사유를 인용해 ‘법원도 피의자 책임의 유무와 정도 등은 공판을 통해 심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힌 만큼 기소의 필요성은 충분히 검증됐다는 견해도 있다.

이들 주장에 대해서는 “범죄 혐의 자체가 확실치 않은데, 유죄라는 심증에 사실관계를 억지로 꿰맞추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사상 최대 금융범죄’라는 주장은 범죄 성립을 전제로 하는데, 그 ‘소명’에도 실패한 검찰이 내세울 주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법원의 영장기각 사유를 보더라도 기소가 필요하다’는 견해는, 검찰 스스로 자신들의 수사가 소명에 이르지 못했음을 자인하는 셈이다. 이는 곧 장기간에 걸친 수사에도 불구하고 구체적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역설적으로 수사 자체가 무리하게 이뤄졌음을 반증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변호인단에 유리한 주장이 될 수 있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피의자는 자기 사건의 수사 및 기소와 관련돼 심의를 요청할 권리를 가진다”며 “기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수사심의위 소집은 필요없다는 검찰 주장은 명백한 권리 침해”라고 반박했다. 이어 “실질적 적법 절차 원리를 천명하고 있는 헌법 정신에도 반한다”고 곁들였다.

변호인단은 “국정농단 사건을 비롯 다수의 민형사 소송에서 우리 법원은 삼성 합병과 삼바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돼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일관되게 판시했다”며 “대다수 법조인과 전문가들도 수사팀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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