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군사 전쟁과 코로나 전쟁의 '메타포(metaphor)'
상태바
[기고] 군사 전쟁과 코로나 전쟁의 '메타포(metaphor)'
  • 강영범기자
  • 승인 2020.06.04 13: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발되는 백신-치료약, 국적·이데올로기·구매능력 관계없이 공평하게 분배돼야
김수일 (아-태도시관광기구 사무총장, 전 동티모르 대사)
김수일(아-태도시관광기구 사무총장, 前동티모르 대사)

코로나19가 작년 말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후 세계보건기구 WHO는 3월 초 세계적인 유행병을 의미하는 팬데믹으로 분류했다. 테드로스 세계보건기구 WHO 사무총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는 지금 코로나19와 전쟁 중이다”라고 선언했다.

안일한 초기 대응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급기야 3월 초 트위트를 통해 “세계는 보이지 않는 적(invisible enemy)과 전쟁 중이다”라고 선언하며 "이 전쟁이 2차 대전 시 최대 격전으로 기록된 일본의 진주만 공격보다 더 치열하다”고 규정했다. 지금은 전 세계 지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현 상황을 '코로나19와의 전쟁'으로 묘사하고 있다.

과거에도 국가나 사회가 중대한 위기와 도전에 직면할 때, 전쟁이라는 군사적 메타포를 사용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이 민생치안 강화를 명분으로 '범죄 및 폭력과의 전쟁‘을,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은 1964년 위대한 사회건설을 목표로 '빈곤과의 전쟁'을,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바 있다. 군사적 맥락에서의 전쟁과 팬데믹 맥락에서의 전쟁의 의미를 비교하면서 유사점과 차이점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라고 본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전쟁의 용어를 사용하게된 이면에는 코로나19에 대해 갖고 있는 세계 지도자들의 위기 의식과 불안감이 적나라하게 반영돼 있다. 전쟁이라는 임팩트 강한 메타포를 사용함으로서 국민들로 하여금 공동의 위기 앞에 강한 단결심과 비장한 희생 정신을 보다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의 제한된 인적 물적 자원(resources)을 평상 시에 비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동원하는데 있어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다. 코로나가 발생한 지역을 '최전선(front line)'으로 부르거나, 코로나가 발생한 최전선에서 코로나와 싸우는 의료인과 지원 인력을 '전사(worrior)'라고 부르며 당사자들에게는 투혼을 불어넣고, 국민들에게는 그들에게 존경과 격려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한편, 군사전쟁과 코로나 바이러스 전쟁에서는 흥미롭게도 유사한 점들과 차이점들이 함께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군사 전쟁에서는 전우 끼리 신체 접촉을 강화해야 하지만, 코로나 전쟁에서는 전우끼리도 신체적 거리를 충분히 두어야 한다. 전쟁에서는 공격자(attacker)들이 적의를 품고 반대 편의 적군들만을 겨냥하지만, 우리 몸 속의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자녀들, 즉 아군들까지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군사적 전쟁에서는 추가적인 인명 혹은 경제적 손실을 막기 위해 때로는 완벽한 승리가 아닌 교착상태에서도 협상을 통해 휴전이나 종전을 선언할 수 있고 작전 상 후퇴도 할 수 있지만, 코로나와의 전쟁에서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어도 휴전을 하거나 후퇴를 하는 경우, 계속하여 희생자나 손실이 더 증가하고 장기화될 수 있다.

군사전쟁에 비해 코로나19와의 전쟁은 특이한 요인들도 많다. 군사전쟁은 특정한 몇 군데의 전선과 지역에서 전개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전선은 전 지구적으로 수없이 존재하고 있어, 한 전선 혹은 몇 몇 전선에서만의 승리는 무의미하다. 전 세계의 전선에서 동시적, 전체적 승리없이 진정한 승리를 이룰 수 없다. 군사전쟁에서는 국경과 국적이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는 요인이 되지만, 코로나와의 전쟁에서는 이런 구분이 없다.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 아군일 뿐이다. 트럼프와 푸틴은 각기 상대 진영의 사령관이 아니라 지구와 인류를 지키는 같은 진영의 사령관들이다.

결론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총알 대신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여 전 세계 인류를 대상으로 배분 활용하지 않으면 종식될 수 없다. 모든 세계 과학자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과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는 동료들(colleagues)이고, 이들에 의한 결과물도 전 세계 인류의 공동 자산이 돼야 한다. 개발되는 백신과 치료약은 국적, 이데오로기, 종교, 피부색, 구매능력에 관계없이 차별없이 공평하게 분배되고 사용돼야 한다. 코로나는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서 끝나지 않으면 끝난 것이 아니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안전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수일(아-태도시관광기구 사무총장, 前동티모르 대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