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法 "삼바공소장 곳곳 의문투성이, 해명하라"... 핀치 몰린 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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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法 "삼바공소장 곳곳 의문투성이, 해명하라"... 핀치 몰린 檢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0.05.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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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 증거인멸 항소심 3차 공판 분석
法 "피고인별 공소, 1심 판결 사실과도 안맞아"
'공소·법리'에 강한 의문... 5개안 釋明(석명) 요구
증인들 "연이은 압색에 두려움... 증거인멸 윗선 지시 없어"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에서 출발한 증거인멸 사건 항소심이 중대한 변곡점을 맞았다. 25일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함상훈 부장판사)는 '삼성바이오 증거인멸 사건' 항소심 3차 공판기일을 열고, 검찰에 최소 5가지 이상의 석명(釋明)을 요구하면서 검찰의 공소사실 및 이 사건 법리 구성에 강한 의문을 나타냈다.

재판부가 구체적으로 검찰에 의견을 요구한 대표적 사안은 '교사범들 사이의 공동정범이 성립 가능한지', 이른바 '공동교사'의 법리 적용에 문제가 없는지 등이다. 특히 재판부는 위 법리적 쟁점사안에 대한 선례(대법원 판례)와 논거를 함께 제시할 것을 검찰에 요구했다. 

재판부가 요구한 석명사항은 대부분 이 사건 증거인멸 관련 검찰 법리구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만약 검찰이 만족할만한 수준의 선례나 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항소심 판결에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교사범들 사이의 공동정범 성립 여부'나 '공동교사 법리 구성' 등은 매우 테크니컬한 법리 이슈이다. '법리오해'는 대표적인 원심 파기 사유이다. 이날 재판부의 석명은 검찰에게 달갑지 않은 상황변화라고 할 수 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증거인멸 혐의 본죄에 해당하는 '삼바 분식회계' 의혹의 당부와 관련해서도 검찰에 입장 표명을 주문했다. 공판에 앞서 변호인단은 '검찰이 그리는 삼바 분식회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서면을 냈다. 

한편 이날 재판에서는 일부 피고인 측 변호인이 '자기사건에 대한 증거인멸은 처벌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 무죄를 주장하고 나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재판부 "공소사실에 법리적 의문 많아... 시간 걸리더라도 증거조사할 것"

재판부가 검찰에 요구한 석명 사항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그 내용이 매우 전문적이고 난이도가 높다. 본지는 검찰 고위간부 출신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재판부 요구사항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검찰은 공소사실에 순차교사, 연쇄교사, 간접교사 등의 표현을 쓰고 있는데 용어를 통일해 달라.
▶교사범들 사이에 이른바 ‘공동교사’라는 법리 구성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선례가 있는지 확인해서 의견을 내달라.
▶교사범들 사이에 교사와 별개로, ‘공동정범’이 성립할 수 있는지 선례 및 의견 내달라. 
▶어린이날 회의 참석자들 사이에서도 교사와 피교사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이들 모두를 공동정범으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의견 내달라. 
▶어린이날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피고인들에게 공동정범 법리를 적용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각자의 역할이 다르다.
▶일부 피고인이 ‘자기사건(정범) 증거인멸’ 주장하는데 이에 대한 의견 내달라. 
▶삼바 변호인단의 분식회계 의혹 항변에 의견 내달라.  

위 사항 중 '자기사건 증거인멸' 항변에 대한 의견, 변호인단 분식회계 의혹 항변에 대한 의견 제시 요구 등은 석명사항이라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검찰 공소사실 및 법리구성 관련 석명사항은 이 두가지를 제외한 5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이들 사안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들 각각의 개별적 행위사실을 명확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증거조사를 해 볼 예정"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각 피고인별 공소사실과 1심 판결에서의 범죄사실이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부연해, 검찰 공소사실은 물론 1심 재판부의 판시사항에 대해서도 우회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다음은 이 부분 재판부 법정 발언.

“증거인멸 공동정범인지 교사범인지 굉장히 모호한 측면이 많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증거조사를 해 볼 생각.” 

다만 재판부는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선 “언급하는 것은 좋으나 심도있게 심리할 계획은 아니”라고 말했다. 항소심 심리 초점을 본죄 성립 여부가 아니라, 검찰 공소사실 및 법리구성의 타당성에 맞추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삭제됐다는 파일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았고, 증거인멸에 이르게 된 경위도 상당히 모호한 측면이 있다”며 검찰 공소사실의 허점을 지적했다. 

◆삼바 및 에피스 직원들 "자료정리(파일 삭제), 윗선 지시 없었다" 

이날 증인신문에서는 '윗선'의 지시 여부를 놓고 검찰과 변호인단간 팽팽한 공방이 벌어졌다. 검찰은 '증거인멸 지시가 사업지원TF로부터 나왔다'는 증언을 듣기 위해 공을 들였으나 기대만큼의 소득은 얻지 못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삼성바이오 직원 A는 ‘윗선’으로부터 지시가 내려온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는 "사업지원TF에서 지시가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일이 있었어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직원 B도 사업지원TF에서 자료를 정리하라는 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B는 기존에 쓰던 휴대전화를 두 달만에 교체한 이유를 묻는 검사 질문에 “압수수색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노출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진=시장경제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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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辯 "자기 사건 증거인멸은 무죄"... 대법 판례 인용, 항변

검찰은 삼성전자 사업지원TF 및 삼성바이오 소속 임원 등이 2018년 5월 5일 서울 서초동 삼성 본사에 모여 대책회의를 열고 증거인멸을 모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의에서 삼성바이오와 삼성바이오에피스 내 전산자료에 대한 삭제가 결정됐고, 부하직원에게 순차 지시하는 방식으로 증거인멸이 이뤄졌다는 것이 검찰의 기본 시각이다.   

증거인멸죄(형법 제155조)의 구성요건은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하거나 위조 또는 변조한 증거를 사용하는 경우’로 규정돼 있다. 

[편집자주]

회계 분식 입증도 버거운데 이 부회장 기소라니...

이 사건에서 ‘타인의 형사사건’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사건을 일컫는다. 구체적으로 검찰은 삼성그룹 옛 미래전략실 주도로 이재용 부회장을 위한 경영권 승계작업이 치밀하게 진행됐고, 그 작업의 배후로 이 부회장을 지목하고 있다.

이 부분 범죄구성요건 충족 여부는 검찰의 이 사건 수사 당시부터 쟁점이 됐다. '본죄'인 삼바 분식회계 의혹은 2015년 5월 참여연대 등의 고발이 계기가 됐으나 5년이 지난 지금도 설만 무성할 뿐 뚜렷한 혐의는 드러난 것이 없다.

검찰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삼성 합병과정에서의 시세조종 의혹'으로 수사 방향을 바꾸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성과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26일 오전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피고발인 신분으로 비공개 소환하면서 일부 언론은 '이 부회장 기소'에 무게를 둔 기사를 내고 있지만, 검찰 수사팀 사정이 여의치만은 않아 보인다. 검찰 내부 소식에 밝은 관계자에 따르면, 수사팀은 이 부회장과 삼성 합병 및 삼바 분식회계 의혹의 접점을 찾지 못했다.

무엇보다 부담스러운 점은 모든 의혹의 근간이 되는 삼바 분식회계 의혹 관련 혐의 입증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회계 분식 의혹 규명도 버거운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 부회장 기소나 신병처리는 검찰의 희망사항에 가깝다.    

검찰은 전현직 삼성물산 임원 일부에 대한 영장 청구를 먼저 시도한 뒤,  그 결과에 따라 이 부회장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시장경제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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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단의 '자기 자건 증거인멸' 무죄 항변은, 2018년 11월 ‘오병윤 전 통합진보당 의원 사건’에서 대법원이 내린 판단에 근거한다. 당시 대법원은 "피고인 자신이 직접 처벌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증거가 될 자료를 은닉했다면, 증거은닉죄가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제3자와 공동해 그런 행위를 했더라도 마찬가지“라고 곁들였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삼바 일부 임직원들이 외부로 유출될 경우 피해가 우려되는 전산 파일 등을 삭제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 이유다. 삼성전자 사업지원TF 등 '윗선'의 지시에 응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불이익을 우려해 자료를 삭제했다는 것이다. 2016년 11월부터 2018년 4월까지 약 1년6개월 동안, 검찰 압수수색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이어졌다. 변호인단은 "이 과정에서 불안과 공포에 떨던 직원들이 오해를 살만한 자료를 스스로 지웠다"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검찰에 "일부 피고인들이 자기사건에 대한 증거인멸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의견을 내달라"고 요구했다. 검찰 입장에서 본다면 '사업지원TF-삼성바이오-에피스'로 이어지는 증거인멸 교사 과정 입증을 위해, 구체적 물증이나 증언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이 사건 4차 공판은 다음달 29일 오후 서울고법 417호 대법정에서 속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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