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감독 확대" 금감원 진단에... 재계, 규제확산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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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감독 확대" 금감원 진단에... 재계, 규제확산 우려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0.05.2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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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위험분석보고서' 발간... "시장 거시건전성 감독"
"올 자본시장 최대 리스크는 부동산 금융-고위험 투자"
전문가들, 지나친 시장개입 우려... "시장 문제는 시장에 맡겨야"
윤석허 금융감독원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윤석허 금융감독원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금융감독원이 자본시장에 대한 리스크 관리감독을 확대할 전망이다. 금감원 측은 개별 금융 사건이 실물경제 전반을 뒤흔드는 이른바 '시스템 리스크'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관리감독의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경기침체를 이유로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커지는 것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금감원은 지난 11일 발간한 '자본시장 위험분석보고서'에서 현 국내외 경제 위험요인을 열거하고 향후 자본시장에 대한 선제적 관리감독을 강화해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자본시장은 중개형태로 그 규모가 커지는 과정에서 시장 전체의 '시스템 리스크'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미시 건전성과 거시건전성을 함께 관리감독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증권관리위원회(IOSCO)는 시스템 리스크를 '일련의 금융사건 및 행위가 금융시스템 및 실물경제에 광범위하고 심각하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성'이라고 정의한다. 

사진=금융감독원 제공
시스템 리스크 개요. 사진=양일국 기자

이어 보고서는 현 자본시장 위험요인으로 △부동산 '그림자금융' 증가 △고위험·저유동성 자산 투자확대 △글로벌 경기침체와 자본시장 위험 △증권사 건전성과 시스템 리스크를 들었다.  

먼저 부동산 '그림자금융'이란 펀드처럼 은행 외의 시장으로 유입되는 자금으로, 증권사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과 채무보증, 부동산 펀드·신탁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은행에 비해 건전성 규제가 소홀하고 중앙 은행의 예금자 보호를 받지 못하는 금융 상품들이다. 

'그림자금융'이 문제가 됐던 대표적인 예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당시 미국은 은행보다 규제가 적은 대형 투자은행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담보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대규모로 발행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주택담보대출로, 당시 집값이 대출금리보다 높은 상승률을 보일 것으로 기대되면서 거래량이 폭증했다. 

그러나 2004년부터 저금리 정책이 종료되면서 금리가 올라 저소득층 대출자들이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이후 금융사와 증권회사들이 줄줄이 파산하면서 세계적 규모의 금융위기로 확산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으로 부동산 '그림자금융'은 총 281조2000억원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 정도 규모라면 문제발생시 자본시장 안정성을 흔들 수 있는 수준으로 보고 체계적인 위험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진=금융감독원 제공
사진=양일국 기자

다음으로 보고서는 고위험·저유동성 자산투자의 확대를 주요한 위험요소로 소개했다.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파생결합증권(DLS), 주가연계증권(ELS), 기타 사모 펀드를 통한 위험자산 투자가 늘고 있어 이에 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DLS와 ELS는 주가나 실물자산 지수처럼 실시간으로 변하는 지수들이 특정 시점에 정해진 조건을 충족하면 약정 수익률을 지급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원금손실을 보게 되는 상품들이다.

보고서는 최근 발행된 DLS와 ELS 상당수가 해외주가지수와 연계돼있어 해외 주식시장의 위험이 국내로 전이되는 경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6월 기준 ELS 기초자산별 비중은 유로스톡스(80.5%), 홍콩H지수(76.4%), S&P 500(58.8%) 순이었다.  DLS의 경우 신용·주식·금리와 연계된 비중이 74.7%로 집계됐다.  

사진=금융감독원 제공
사진=양일국 기자

보고서는 이 외에도 사모펀드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부분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운용자산의 종류는 다양해졌음에도 펀드시장이 사모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펀드의 투명성은 낮아지고 관리감독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또한 사모펀드가 해외 특정 지역과 대상으로 투자를 집중하면서 손실발생시 피해규모가 커질 수 있음을 우려했다. 

사모펀드는 49인 이하의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모아 운용된다. 50인 이상의 공모펀드에 비해 다양한 종목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으며 자산에 대한 보고, 공시 의무 등 규제에서 자유롭다.

사진=금융감독원 제공
사진=양일국 기자

이 외에도 보고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의 장기화, 증권사가 원금을 보장하는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기타파생결합사채(DLB) 비중이 약 40% 수준인 점을 향후 예의주시해야 할 위험요소로 들었다. 일반적으로 ELB와 DLB는 증권사가 발행하는 회사채라 할 수 있다. ELB는 주로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며 DLB는 펀드·신용·유가 등 기초자산의 종류가 다양하다.

일정 조건이 만족될 경우 연 2-10% 수준의 수익률을 준다. 이러한 유형의 증권은 원금을 보장하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는 안정적이지만 대량 손실 발생시 증권사 부실이 전체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5장에서 향후 관리방안을 제시했다. 주요 관리항목으로는 △ 대형증권사들의 성장으로 시스템 리스크에 영향이 커짐 △ 대기업이 자본시장에 많은 자본을 조달하고 있어 구조조정 등 관리 필요 △ 사전 위기관리와 함께 사후적 위기관리 방안도 필요하다고 적고 있다. 

또한 자본시장 및 연관 금융시장의 리스크를 사전에 점검하기 위한 '리스크 대쉬보드'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대쉬보드는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과 각각의 진행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체계도를 일컫는다. 

사진=금융감독원 제공
사진=양일국 기자

금감원 측의 방침이 전해지자 시장 관계자들은 대체로 취지는 공감하지만 지나친 규제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현직 은행 리스크 관리 담당자는 21일 "자본시장의 위험요소를 사전에 감지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수치상으로 문제가 감지됐을때는 이미 사후약방문이 되기 쉽다"고 말했다. 그는 "감독당국의 규제 일변도 관리보다는 금융사의 자체적 리스크 조기경보 시스템, 당국간 소통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김승욱 교수는 "불황이나 금융위기가 올때마다 정부는 규제를 늘리고 시장을 통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시장의 문제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람직한 정부의 역할을 묻는 취재진에게는 "미국 정부는 금융위기 당시 제너럴 모터스(GM)에게 필요한 자금을 빌려주고 돌려받았을 뿐 다른 부분은 개입하지 않았다"는 일화로 답변을 대신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대학의 이병태 교수는 사모펀드를 관리감독하겠다는 방침에 우려를 표명했다. "사모펀드 자체가 규제를 최소화해서 투자를 활성화하려는 것인데 자칫 관리감독이 지나치면 공모펀드와 다를게 없다"고 지적했다.   

이병태 교수는 "과거 투자자들 스스로 리스크가 큰 투자를 해놓고 문제가 생기면 정부에게 책임을 떠넘겨온 행태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잘못된 관행이 정부로 하여금 금융시장에 더 많이 개입할 명분을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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