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감정위원 "미술품 감정價에 효성 입김? 차라리 감정 안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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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감정위원 "미술품 감정價에 효성 입김? 차라리 감정 안했을 것"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0.05.1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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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준, 계열사 미술품 고가매입 강제'사건 항소심
당시 감정위원, 정준모 전 학예연구실장 증인 신문
檢 "가격 산정에 조현준-효성 측 영향력 행사"
정 전 실장, "효성아트펀드' 의뢰 받아 가격 감정"
"감정 과정에 효성 개입 사실 없다. 그랬으면 업무 맡지 않았을 것"
사진=시장경제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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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아트펀드'가 조현준 효성 회장으로부터 매입한 해외 유명 미술품 가격 산정 과정을 놓고 검찰과 변호인단이 공방을 벌였다. 검찰은 해당 미술품들의 가격을 감정하는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조 회장 혹은 효성측의 개입 여부를 집중 추궁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효성아트펀드의 미술품 매입 과정에 조 회장이 개입한 사실 자체가 없고, 가격 산정 과정 역시 미술 전문가들에 의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맞섰다. 

13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오석준 부장판사) 심리로, 조현준 회장 등에 대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 항소심 4차 공판이 열렸다. 이날 증인으로는 효성아트펀드에 편입된 미술품들의 가치를 감정평가한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 출석했다. 

정 전 실장은 중앙대 예대 서양학과를 졸업한 뒤 1995년 광주비엔날레 전시 총괄, 2011년 청주 국제비엔날레 총감독,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덕수궁 미술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미술품감정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30년 이상 미술품 감정 및 가격평가 업무를 수행한 전문가다. 

효성은 2005년부터 예술 관련 사업을 진행키로 하고, 2007년 하반기 한국투자신탁(이하 한투)과 계약을 체결했다. 출범 당시 아트펀드 규모는 300억원대였다. 정 전 실장은 "한투로부터 이메일로 미술품 감정을 의뢰받으면 가격을 감정을 하는 업무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조현준 회장이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미술품 38점을 아트펀드가 고가로 사들이도록 했는지 여부다. 앞선 1심 재판부는 해당 혐의에 대해 “업무 수행을 빙자해 자신이 소유하던 미술품을 규정까지 위반하면서 실제 가치보다 비싸게 처분했다”며 조 회장이 12억원의 차익을 얻은 것으로 보고, 업무상 배임 혐의 부분 유죄 판결을 내렸다.  

변호인단은 아트펀드가 해당 미술품들을 매입하는 과정에 조 회장은 개입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미술품 감정은 한투 측이 선정한 3명의 자문위원에 의해 결정됐으며, 당시 미술품 시세와 비교해 과도하게 비싸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항변의 요지이다.  

증인으로 출석한 정 전 실장은 아트펀드의 미술품 감정 과정을 상세히 이렇게 설명했다.

"한투에서 미술품에 대한 간략한 정보와 사진을 보내면 미술사적 가치와 진위여부, 시장에서의 수요, 작가의 이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가격을 산정했다." 

특히 그는 효성 측의 개입 사실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미술품 가격 감정 과정에서 효성이 연락을 한 적 없고, 만일 효성이 알려준대로 가격을 감정해야 하는 것이라면 감정 자체를 안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한투도 작품의 소장가나 다른 감정위원의 감정가 등을 알려준 적이 없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2008년 미국 경제위기 때도 해외 유명 미술작품 가격은 하락 안해" 

해외 유명 작가 작품에 대한 가격 산정 방식을 묻는 변호인단의 질문에 정 전 실장은 “작가의 소속 갤러리에 확인하고, 경매 이력, 거래 기록 등을 감안해야 한다”며 “유명 수집가들의 소장 여부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정 전 실장은 아트펀드의 의뢰를 받아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가격 감정서를 작성했다. 그는 미국의 개념주의 예술가 존 발데사리 작품은 1억 5000만원에서 1억 8000만원, 독일의 신표현주의 작가 게오르그 바젤리츠 작품은 약 6억원, 영국의 추상화가 세실리 브라운 작품은 13~14억으로 감정했다. 

그는 해당 작품들의 가격에 대해 “해외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미술시장에서 매우 높게 평가받고 있다”며 “전문가 평가에 따라 가격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그 차이가 1천만원을 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변호인단은 3인의 감정위원 중 한 명인 최 모씨가 감정한 평가 내역을 제시하며 전문가적 평가의 범주로 볼 수 있는지 물었다. 최씨가 작성한 감정평가서 작품가는 정 전 실장이 감정한 가격에 비해 적게는 5배에서 많게는 10배까지 차이날 정도로 낮게 기재돼 있었다. 

최씨 감정가에 대해 정 전 실장은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다. 동의할 수 없는 가격”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복제품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작가의 오리지널 작품에 대한 감정가를 저렇게 했다면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측은 반대 신문에서 미술품 감정 과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메일을 통해 전송된 사진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너무 허술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에 정 전 실장은 “회화 작품은 한 번 보면 몇 년전 어느 갤러리에 걸렸던 그림인지까지 기억할 수 있다”며 “6~10점 정도 외뢰를 받으면 보통 6시간 가량 컴퓨터 앞에 앉아 감정 업무를 본다”고 말했다. 

정 전 실장은 “중국의 사진작가 왕칭쑹 작품의 경우 한투측에서 에디션 넘버가 몇 번인지 알려주지 않아 감정가를 기재하지 않은 적도 있다”며 “사진 작품은 5~7장까지만 인화하도록 돼 있는데 몇 번째로 인화한 작품인지 알 수 없을 경우 가격을 매길 수 없다”고 했다. 

검찰은 “2007년부터 2008년 경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술품에 대한 국내 투자가 위축될 것이란 전문가 언급도 있었는데 이런 점을 가격 산정 시 고려했느냐”고 추궁했다. 

정 전 실장은 “국내 미술시장과 해외 미술시장은 다르다.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주로 거래되기 때문”이라며 “주로 미술에 대한 이해가 짧은 신규 수집가들이 손해를 봤으나, 제대로 된 유명 작품들의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 사건 다음 공판 기일은 다음달 17일 오후 서울고법 302호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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