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성 보장받은 삼성 준법委, 본연 역할에 충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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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성 보장받은 삼성 준법委, 본연 역할에 충실해야"
  • 오창균 기자
  • 승인 2020.05.02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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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준법감시위 출범이 재계에 미치는 영향' 토론회
최준선 "판결 확정 전 유죄 인정 요구는 오버(Over)"
최승재 "준법경영 역량 강화 위한 의미 있는 사례"
천재민 "사회적 책임만 너무 강조하면 기업들 외면"
전지현 "내부 독립 못지 않게 외부 압력서 자유로워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출범이 갖는 의미와 전망을 분석하는 경제정책 토론회가 28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좌측부터) 전지현 변호사, 최준선 교수, 최승재 변호사, 천재민 변호사. 사진=이기륭 기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출범이 갖는 의미와 전망을 분석하는 경제정책 토론회가 28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좌측부터) 전지현 변호사, 최준선 교수, 최승재 변호사, 천재민 변호사. 사진=이기륭 기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출범이 갖는 의미와 전망을 분석하는 경제정책 토론회가 28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됐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출범이 재계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한 이날 토론회는 사단법인 한국기업법연구소가 주최했다.

발제는 국내 상사법 연구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와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연구원장으로 재임 중인 최승재 변호사가 맡았다. 토론에는 천재민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전지현 법무법인 참진 변호사가 참여했다.

올해 1월 출범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외부위원 6인과 내부위원 1인으로 구성됐다. 김지형 전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았다. 위원회는 효율적 업무수행을 위한 사무국과 지원조직 설립·운영, 기타 인력 채용, 심사 대상 선정 등 모든 과정에서 철저한 독립성을 보장 받았다.

위원회는 삼성 주요 계열사의 자금거래 흐름은 물론이고 경영 승계, 노동 이슈 등 민감한 현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직접조사권을 보장 받았다. 기존 컴플라이언스 조직과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위원회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그룹 핵심 7개 계열사와 개별적 협약을 맺고 올해 2월부터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다.

토론회에서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국가 전체의 경영문화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설립 취지를 크게 벗어나 사회적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엇갈렸다. 시민단체의 입김에 좌우될 경우 향후 준법감시제도가 기업들로부터 외면을 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이재용 재판부가 美 연방 제8장을 언급한 까닭

첫 발제에 나선 최준선 교수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출범 배경부터 조목조목 짚어나갔다.

준법감시위원회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파기환송심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 재판부의 조언을 계기로 출범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공판에서 재판부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위법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미국 연방법원 양형기준 제8장에 따른 실효적 준법감시제도 마련을 제안했다. 올해 1월 열린 공판에서는 "삼성의 준법감시는 실질적이고 실효적으로 운영돼야 양형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기 때문에 제도의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최준선 교수는 "재판부가 준법감시위원회를 회복적 사법(司法)의 일환이 될 수 있다고 본 견해는 매우 진취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삼성이 향후 위원회를 실질적·실효적으로 운영할 경우 준법을 위한 전향적 조치를 취하는 시도로 봐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준선 교수는 회복적 사법에 대해 "죄와 벌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형벌의 목적은 단순히 범죄인을 처벌해 복수하는 데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회복적 사법은 응보적 형사사법 또는 징벌적 형사사법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범죄를 지역사회 조정을 통해 해결하자는 것이다.

회복적 사법을 단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는 범죄로 인해 영향을 받은 관련 당사자들이 한 곳에 모여 손해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일체의 활동을 뜻한다. 결과적으로 피해의 회복은 당사자들의 능동적·자발적 참여,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최준선 교수는 "재판부가 굳이 미국 연방법원 양형 기준 제8장을 소개한 것은 한국 법률에는 없지만 미국에는 그런 프로그램과 적용 모델이 있으니 참고하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조언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재판부는 제8장의 핵심적 내용인 실질적이고 실효적 운영을 강조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최준선 교수는 "다만 미국 연방법원 양형 기준 제8장은 개인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단체에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재판부가 이재용 부회장에게 면죄부를 주자고 조언한 것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미국령도 아닌데 그러한 기준을 삼성 사건에 적용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재판부가 모를 리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과거 불미스러운 일들과 경영권 승계 문제와 연관시키는 데 대해선 "판결이 확정되기도 전에 유죄를 인정하라는 요구와 다를 바 없는 오버(Over)"라고 꼬집었다.

계열사 노동 이슈와 관련해선 "삼성은 이미 무노조 경영 방침 폐기를 이미 선언했고 사과도 한 만큼 앞으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준선 교수는 "삼성의 성장을 대견하게 바라보는 국민의 기대 속에서 출범한 준법감시위원회가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엄격한 법적 문제를 가볍게 유죄 자백하라는 것과 같기 때문에 헌법상 개인의 양심의 자유에 반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런 행동들이 준법감시위원회 설립 취지와 운용 방향에 맞는지 본연의 역할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고언을 던졌다.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연구원장으로 재임 중인 최승재 변호사. 사진=이기륭 기자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연구원장으로 재임 중인 최승재 변호사. 사진=이기륭 기자

◆한국 기업역사의 획을 그은 준법감시委 출범

다음 발제를 맡은 최승재 변호사는 "삼성이 독립된 외부 준법감시위원회를 둔 것은 대한민국 기업역사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최승재 변호사는 "삼성이 각사의 내부 컴플라이언스 조직을 대표이사 직속으로 변경한 점, 변호사들이 이들 조직을 뒷받침하도록 해 전문성을 확보한 점, 독립성 담보를 위해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김지형 전 대법관을 포함한 외부인사들을 위촉한 점은 우리나라 기업의 준법경영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출발을 보여준 예"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특징을 볼 때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COSO(Committee of Sponsoring Organization) 등이 제시하는 '내부통제를 위한 제안'보다 더욱 선진적 제도로 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COSO는 1985년 효과적인 내부통제 시스템 확립을 위해 미국 공인회계사협회(AICPA) 등 5개 전문가단체가 공동 설립한 조직이다. COSO는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와 함께 기업 내부통제 관련 다양한 개념과 정의를 모두가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기본 틀을 개발했다. 그 결과 COSO는 1992년 내부통제 포괄적 프레임워크(Internal Control Intergrated Framework) 보고서를 작성했다. 현재 COSO 프레임워크는 기업 내부통제 제도의 세계 표준으로 통용되고 있다.

최승재 변호사는 "2012년 준법지원인 제도 전면 도입 당시 비용 증가를 이유로 격렬하게 반대하는 견해가 있었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언급되기까지 했는데, 8년이 지난 현재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를 두기로 스스로 결정한 것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당면 과제로 풀뿌리 컴플라이언스 조직 연계·정비, 내부 자진신고에 대한 처리절차와 관련 규정 정비, 제도 운용과정에서 내부 조직과의 관계 설정 등을 제시했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설치 자체도 평가받아야 하지만 향후 운용도 지속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잘한 것과 못한 건 구별을 해야 하며 비판을 위한 비판보다는 건설적·발전적 시각에서 제도적 보완을 제안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경계했다.

최승재 변호사는 "준법감시제도는 아직 우리 법이 예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완결된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건설적 제안을 통해 보강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천재민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사진=이기륭 기자
천재민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사진=이기륭 기자

◆"준법감시委 흔드는 시민단체 입김 차단해야"

발제 후 이어진 토론에서 천재민 변호사와 전지현 변호사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출범이 재계에 미치는 영향을 전망했다.

천재민 변호사는 "지배주주로부터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 받는 준법감시위원회 설치는 현행법상 제도의 한계를 보완하고 기업 범죄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국내에서는 준법감시제도가 문화 측면에서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고 기업들은 준법감시제도를 비용 부담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지만, 만약 형사법 분야에서 양형 요소로 적극적으로 고려된다면 이는 제도 정착에 대한 상당한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는 2002년부터 우수한 준법감시제도를 갖춘 기업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범죄에 대한 긍정적인 예방 효과가 어느 정도 입증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천재민 변호사는 "국내 선두 기업인 삼성이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받는 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해 형사법상 양형에 반영된다면, 다른 기업들도 위원회 설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고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 마련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다만 이러한 준법감시제도가 일회성에 그치거나 홍보용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내부통제·업무지침 가이드라인을 정비하고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기업의 문화로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다. 

천재민 변호사는 준법감시기구의 독립성·자율성 보장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지배주주 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단체의 영향력을 받거나 사회적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외부 입김에 좌우될 경우 향후 준법감시제도가 기업들로부터 외면을 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지현 법무법인 참진 변호사. 사진=이기륭 기자
전지현 법무법인 참진 변호사. 사진=이기륭 기자

천재민 변호사의 의견에 전지현 변호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크를 넘겨 받은 전지현 변호사는 "(천재민 변호사의 의견처럼) 준법감시위원회가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삼성 내부의 독립 못지 않게 시민단체를 비롯한 외부 압력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했다.

준법감시위원회를 둘러싸고 긍정·부정적인 시선이 뒤섞이고 있는 가운데 향후 재계 전반으로 준법감시시스템이 확대 시행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전지현 변호사는 일부 진보 시민단체들이 준법감시위원회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로 반(反)기업 정서를 꼽았다. 준법감시위원회의 존재가 이재용 부회장에게 면죄부를 줄 것이라는 주장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도 반(反)기업 정서가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전지현 변호사는 "일부 시민단체의 경우 재판부가 이재용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줄 의도를 갖고 미국의 양형사유까지 거론한다고 하는데 이는 원인과 결과, 목적과 수단을 혼동한데서 기인한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어 "준법감시위원회의 목적은 기업의 감형이 아니라 건전한 기업문화 조성에 있고, 기업의 감형은 그 결과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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