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생명이 횡포"... 석연치 않은 靑 국민청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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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생명이 횡포"... 석연치 않은 靑 국민청원글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0.04.07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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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 설계사의 '갑질 고발' 청원게시물, 사실관계 따져보니
4월 2일자 청와대 청원. 사진=캡처
S생명의 횡포를 고발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 캡처 화면

지난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S생명으로부터 갑질을 당했다는 보험 설계사의 고발이 올라왔다.

그는 23년 간 S생명에서 일하다가 최근 보험법인대리점(GA)으로 이직했다고 소개했다. GA는 여러 보험사의 상품을 두루 취급할 수 있어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다. 소속 설계사들에게 높은 수수료를 지급해 많은 이들이 몰리는 추세다. 

피해를 입었다는 청원인은 지난해 11월 대리점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전(前) 직장인 S생명이 '설계사 코드'를 발급하지 않아 영업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험사가 코드를 발급하지 않으면 GA 설계사는 당사 보험상품을 취급할 수 없다. 

그는 "S생명 재직 시 월 말이면 입금되지 않은 고객 보험료를 대납까지 하면서 회사를 위해 일했는데도 (S생명이) 코드를 주지 않은 것은 갑질 중의 갑질"이라 비판했다.

청원이 올라온 직후 일부 언론사들은 전후 사정을 확인하지 않고 관련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보도했고, 일각에서는 대형 생명보험사가 일개 설계사의 생계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하지만 취재진이 팩트를 체크한 결과 청원 내용이 일방적이고 과장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S생명 관계자는 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고발은) 합당한 문제 제기라고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부 퇴사자들에게 코드 발급이 연기·제한되는 데에는 불가피한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GA로 이직한 설계사가 바로 전 직장의 상품을 취급하게 될 경우 고객에게 이직 사실을 통보하지 않고 영업을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고객은 자신이 GA를 거쳐 해당 보험상품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완전 판매 문제가 발생한다면, 타격은 GA나 설계사가 아닌 보험사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간다.

'불완전 판매'란 은행·증권사·보험사에서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고객에게 관련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7년과 2018년 보험사 전속 설계사의 불완전 판매율은 각각 0.19%, 0.12%로 집계됐다. 반면 GA 소속 설계사의 불완전 판매율은 0.28%, 0.21%로 월등히 높았다. GA 소속 설계사들이 고객 유치를 위해 무리한 영업을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19년 9월을 기준으로 국내 보험설계사는 총 59만6,310명에 달한다. 그 중 68%인 40만 8,826명이 GA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2020. 1. 23일자 보도자료. 사진=캡처
GA 수입수수료 추이와 불완전판매비율. 사진=금융감독원 제공

지난해 8월 금융위원회는 보험 부문의 무분별한 경쟁을 막기 위해 설계사에게 지급하는 첫해 수수료를 1,200%로 제한하고 수수료를 나눠 지급하는 방안을 도입했다. 해당 제도는 2021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S생명 관계자는 "GA로 이직한 설계사는 전직 보험사의 코드를 발급받지 않더라도 다양한 타사 상품을 자유롭게 취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전직 코드를 발급받지 못해 설계사들이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는 일부 보도 역시 정확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생명 관계자는 월 말이면 미입금된 보험료를 대납까지 했다는 청원인의 주장에 대해서도 "지금은 고객이 아닌 설계사가 보험료를 대납할 경우 자격을 박탈하는 등 중징계에 처하고 있는데, (청원인이) 20여년 경력의 설계사를 자처한 점을 감안하면 오래 전 사라진 관행을 최근의 일처럼 적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후속 조치를 묻는 질문에는 "청원 내용이 합리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고 신원도 불명확해 현재로써는 접촉할 방도가 없다"고 답했다. 아울러 "확인되지 않은 의혹만으로 대기업이 '갑질' 누명을 쓰는 경우가 많아 조심스럽다"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업계에서는 대형 보험사들의 '갑질'보다는 GA 측의 '을질'이 만연하다는 지적이 많다. 

금감원은 일부 GA가 매년 실적이 우수한 설계사 600~800명을 선정해 해외여행을 보내주면서 이에 필요한 수십억원의 경비를 보험사에게 부담토록 한 사실을 적발하기도 했다. GA 측이 수수료를 편취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허위계약을 작성하고 타인 명의로 보험계약을 모집, 과장 광고를 통해 신계약 체결을 유도하는 행위도 발견됐다.

한편, 7일 오전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던 해당 글은 삭제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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