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왜 화장지부터 동날까?... '팬데믹'과 '사재기'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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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화장지부터 동날까?... '팬데믹'과 '사재기' 심리학
  • 강영범기자
  • 승인 2020.03.3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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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일 TPO사무총장, 前 동티모르 대사
김수일(전. 동티모르대사/TPO사무총장)

코로나19 상황을 비롯해 사회불안이 발생할 때 마다 세계 각국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수의 시민들이 화장지 사재기에 집착하는 소비심리를 보인다. 수 만 가지의 생필품 가운데 왜 하필 화장지가 최우선 사재기 타겟이 될까. 여러 측면에서 살펴봐도 쉽게 수긍이 되지 않았다. 비상 물품으로서는 화장지 보다도 건강과 생존에 보다 직결되고, 부피가 적어 보관도 용이한 캔과 냉동 식품, 그리고 비타민, 비상의약품 등 부지기 수로 많은 것들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화장지 사재기 행위의 저변 심리에 대한 학자들의 분석도 다양하다. 심리학자 Steven Taylor 교수는 그의 저서 '전염병 심리(The Psychology of Pandemics)'에서 ‘전염병이 유행하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화장지를 유독 우선 구매하려는 심리’를 흥미롭게 설명했다.

‘인간들은 혐오하는 전염병을 화장지에 싸서 자신으로 부터 떼어 던져 버리고 싶은 심리를 가질 수 있다‘는 분석과 함께, '제한된 예산으로 다양한 비상 물품을 구입해야하는 소비자들의 경우, 화장지나 라면 등 저렴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부피가 큰 물품을 구입하면 보다 심리적 안정과 만족감을 크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혹자는 오랫동안 보관해도 부패하지 않는 화장지의 장점을 이유로 꼽기도 한다.

필자도 이러한 분석에 동의하게 되었다. 화장지 포장의 부피가 상대적으로 대형이기 때문에 매장 진열대에 스톡(Stock)을 할 수 있는 수량이 적을 수 밖에 없고, 소수의 소비자가 구매에 참여해도 화장지 진열대는 순식간에 텅비게 되는 광경이 연출되다 보니, 소비자들의 눈에는 가장 소진이 잘 되는 상품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러한 광경은 소비자들 간 경쟁 구매 심리를 부추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고 본다. 객관적 필요성이나 중요성이 크고 적음을 떠나, 충동 구매, 혹은 경쟁 구매를 유발시킬 수 있는 비주얼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이 외에도 가격이 저렴하여 구매 시 비용 대비 포만감이 큰 점도 또 다른 동인으로 보인다.

이러한 특성과 현상들, 특히 순식 간에 매진되어 진열대가 비게 되는 시각적 착시현상이나, 높은 구매 만족도로 인해 텅빈 화장지 진열대는 미디어들이 비상상황을 효과적이고 드라마틱하게 연출하고자 할 때, 가장 즐겨 활용하는 비주얼 자료가 된 것 같다.

집에서 TV를 통해 이 광경을 시청하던 소비자들까지 덩달아 충동을 받아 화장지 구매에 나서게 만듦으로서 화장지 사재기 현상은 더욱 추동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비이성적 충동구매, 혹은 패닉구매 행위를 게임이론(Game Theory)으로 재미나게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 ‘소비자들은 공급이 제한된 물품을 구매하는 경우, 남이 한 개를 구입하면, 자신도 최소 한 개 이상을 구입하는 것을 현명한 구매 행위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화장지와 가장 유사한 심리적 배경으로 사재기가 발생하는 상품을 꼽는다면, 라면이 아닐까 싶다. 라면이 비상식품으로 간편한 조리법, 긴 보관기간 등 뛰어난 점도 많지만, 화장지 처럼 상대적으로 큰 포장 부피와 고가인 냉동식품, 캔식품, 비타민 등에 비해 구매 후 심리적 만족감이 큰 특징이 유사하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보면, 오늘날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화와 4차산업혁명의 영향 탓에 화장지를 포함하여 대부분 상품의 사재기 필요성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는 눈부신 정보통신운송 기술의 발전, 글로벌 공급체인망, 시민의식의 향상에 기인한다. 식품, 의약품 등 비상 상품들을 온라인을 통해 단숨에 전 세계적으로 아웃소싱할 수 있고, 소비자들은 자택에서 글로벌 직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글로벌 구매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제조업과 운송 등에서 셧 다운이 발생해선 안될 것이다. 그와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지 않는 한, 현재의 코로나19 상황에서나 미래의 어떤 재난 상황에서도 2급 비상물자에 불과한 화장지 사재기 현상은 물론, 1급 비상물자의 사재기 필요성은 더 크게 감소할 것이다.

- 김수일(前 동티모르 대사/TPO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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