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친환경보일러' 死藏될 판... 환경부, 보급의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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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친환경보일러' 死藏될 판... 환경부, 보급의지 있나
  • 배소라 기자
  • 승인 2020.04.0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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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 지원' 외면한 환경부의 친환경 2종보일러 정책
"환경부 '보일러 설치 지침' 초안 비현실적" 비난 목소리
1종 보일러 설치 지나치게 강제... 2종 개발 취지 실종
조명래 환경부 장관. 사진=시장경제신문DB
조명래 환경부 장관. 사진=시장경제신문DB

일부 보일러 개발 업체들이 정부의 미세먼지 저감 방침에 맞춰 개발한 ‘2종 보일러’(친환경 인증을 받은 일반형 보일러)가 빛을 보지 못하고 용도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점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히지만, 설치 기준이 너무 높다는 점도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지난해 11월 환경부는 수도권, 광역시 등 도심에서 낡은 보일러를 바꾸거나 새로 건물을 지을 때 '1종 보일러'(콘덴싱 보일러 중, 친환경 인증을 받은 보일러)를 의무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의 대기관리권역법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된 법률은 올해 4월 3일 시행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환경부는 배수구가 없는 가정집도 미세먼지를 적게 내뿜는 1종 수준 보일러를 설치할 수 있도록 2종 보일러 기준을 만들었다. 그리고 2종 보일러를 설치하는 경우에도 1종 보일러와 같은 정부 보조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서울시 전체 주택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노후 주택에 1종 보일러를 현실적으로 설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종 보일러는 배수구가 없거나, 있어도 보일러 본체와 거리가 3m 이상 떨어져 있으면 설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을 독려한 제품이 2종 보일러다. 2종 보일러는 기존 일반형 보일러와 비교할 때 탁월한 열효율과 환경친화성을 갖췄다. 반면 배수구가 없어도 설치를 하는데 제약이 없다. 환경부 방침에 따라 국내 보일러기업 2곳이 2종 보일러 개발을 완료했다. 

환경부가 법 개정에 착수하면서 친환경 보일러에 거는 기대감도 높아졌다. 전문가들도 “2종 보일러가 사각지대를 보완하고 미세먼지를 절감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환경부가 입장을 번복하면서 상황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환경부는 2종 보일러 설치 가구에 정부보조금을 지원키로 한 정책 시행을 올해 말까지 유보하며 친환경 인증을 받지 않은 기존 일반형 제품의 판매·설치를 사실상 허용했다. 2종 보일러 설치 기준도 대폭 높여 실효성 논란을 자초했다. 

환경부가 의견수렴 차원에서 업계에 보낸 '가정용 보일러 설치 지침' 초안을 보면, 2종 보일러 설치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환경부는 지침을 통해, 보일러 설치 장소에 배수구가 없어도 벽이나 문을 뚫어(타공) 연결이 가능한 구조라면 1종 보일러 설치를 의무로 규정했다. 예를 들어 보일러실 옆에 화장실이 있는 경우에는 그 벽을 뚫어 배수관을 연결해야 한다. 타공에 드는 추가 비용을 고려하면 가구주 부담은 그만큼 무거워진다.  

또한 공동주택일 경우 1종 보일러를 설치한 사례가 있으면 배수구 확보가 가능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명시했다. 만약 3층(301호)이 1종을 설치할 수 없는 구조였는데 현장 확인자의 오판으로 1종 보일러가 설치됐다면, 전체 층의 1호 라인은 모두 1종을 설치해야 된다는 의미다. 현실을 무시한 행정편의적 발상이란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환경부 초안을 기준으로 할 때, 2종 보일러 설치가 예외적으로 가능한 사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안전 관련 법규 등에 따라 타공이 불가능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구조가 동일한 공동주택으로 이미 배수구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은 경우이다. 

이쯤 되면 의구심이 든다. 보일러실에 배수구가 없다면 개발이 끝난 2종 보일러를 설치하면 된다. 굳이 벽까지 뚫어 1종 보일러를 설치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1종 보일러 설치를 강제한 환경부 지침 초안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서울시 주택의 절반 이상이 2009년 이전 지어진 노후주택이다. 정부보조금이 절실한 저소득층은 대체로 이들 노후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결국 1종으로 교체하려고 신청했다가 주택 구조상의 문제로 보조금 혜택(가구당 20만원, 총 360억원 지원)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설치도 못하는데 돈만 지원해 준다고 생색내는 꼴이다.

난방용 보일러 배출가스를 줄여 대기질을 개선하겠다는 정부 정책이 효과를 거두려면, 재정 지원이 절실한 노후주택 거주 저소득층에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2종 보일러 설치 기준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

업계는 올해 1종 보일러가 3만대 정도 보급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환경부 보급 목표 35만대(일반 30만대, 저소득층 5만대)의 12%에 불과하다. 

지난해 10월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이같은 문제가 지적됐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은 환경부의 1종 보일러 설치 지원사업과 관련, "일부 가구의 경우 설치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강 의원은 “1종은 오염원을 응축수로 모아 배출하기 때문에 배수구가 필요하다”며 “배수구가 없어 설치가 불가능한 가구가 250만 곳에 이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2종 보일러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2종 보일로는 열효율 측면에서 1종에 비해 다소 떨어지지만 대기오염 배출량은 1종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2종 보일러는 응축수 발생이 없기 때문에 배수구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설치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당시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1종 보일러 설치가 어려운 가정에 2종 보일러를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장관의 국감 답변과 최근 환경부가 의견 수렴 명목으로 업계에 제시한 '보일러 설치 지침' 초안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가정용 1종 보일러 설치 의무화 제도'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현실에 맞지 않으면 기대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환경부의 의견 수렴이 요식행위가 아니라면, 현실을 반영한 지침 개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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