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준법委 힘빼는 시민단체... 권태선 위원 사퇴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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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준법委 힘빼는 시민단체... 권태선 위원 사퇴 유감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0.03.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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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함 남긴 시민단체의 사퇴 압박, 정의는 밖에서만 세우나
독립적 컴플라이언스 조직은 시대적 요구... 열린 시각 필요할 때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기자회견 모습. 사진=이기륭 기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기자회견 모습. 사진=이기륭 기자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외부위원 중 한명인 권태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가 지난주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퇴 이유는 권 위원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환경운동연합 내에서 권 위원의 준법감시위 참여를 반대하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준법감시위의 존재 의의를 놓고 아직도 일각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양형 줄이기’를 위한 꼼수로 폄훼하고 있다. 이는 준법감시위에 부여된 권한과 역할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속칭 진보를 자처하는 시민사회 활동가 사이에서는 준법감시위를 삼성의 ‘방패막이’ 내지는 ‘거수기’로 보는 시각이 남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같은 태도는 '삐딱함'을 넘어선 '사실 왜곡'이나 다름 없다.  

삼성은 이 부회장이 16년 말 불거진 국정농단 사건에 휩쓸리면서, 무려 4년째 경영 외적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있다. 검찰은 2018년부터 지난해 중순까지 삼성 계열사를 20여 차례나 압수수색했고, ‘노조와해 의혹’과 같은 별건 수사로 이어지기도 했다. 대규모 M&A와 투자도 중단되면서, 미래 먹거리 발굴 및 개발에 있어서도 차질을 빚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출범한 준법감시위원회는 삼성이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구성원으로는 대법관 출신 김지형 위원장을 비롯해 시민단체와 학계, 법조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품과 능력을 검증받은 명망가들이 위촉됐다. 위원회는 출범 당시부터 철저한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했다. 위원은 모두 김지형 위원장이 직접 선택했으며, 준법경영 감시를 위해 필요한 사무국 등 지원조직과 인력도 위원장이 인사권을 행사했다. 조직 구성만이 아니다. 위원회는 국내외 기업 컴플라이언스 조직에서 좀처럼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직접 조사권'을 보유했다. 기업 내부제보를 직접 접수, 조사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주력 계열사의 '돈 거래'는 사실상 전부 들여달 볼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실제로 준법감시위는 출범 한 달여만에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28일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 7개 계열사는 과거 미래전략실이 임직원들의 시민단체 기부금 후원내역을 무단으로 열람한 사실을 지적했다. 이에 삼성 측은 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공식 사과했다. 

준법감시위의 ‘직언’에는 성역이 없었다. 11일에는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 의혹, 노동 관련 이슈 등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권고했다. 삼성 계열사 7곳에 대해서도 ▲경영권 승계 ▲노동이슈 ▲시민사회 소통 등 세 가지 의제에 대한 사과 및 재발방지 세부 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이는 위원회 스스로 그 존재 의미를 대내외에 드러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위원회의 권고 내용이 언론에 알려진 직후, 취재 기자들 사이에서 '지나치다'는 반응이 나올 만큼 그 행보는 파격적이고 거칠 것이 없다. 위원회의 행보를 보고도, '재벌 거수기'라거나 '이재용을 위한 전시용 기구'라는 식의 비아냥이 나오는 건 다분히 악의적이다. 위원회의 모습 어디를 봐도 이런 비난의 근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총수의 입김으로부터 완전하게 독립된 준법감시위 출범은, 국내 기업 경영의 수준을 한 차원 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 학계 뿐이 아니다. 시민사회 안에서도 "삼성 준법감시위 성공은 우리 기업들의 경영 투명성을 재고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란 견해가 나오고 있다.

준법감시위 출범은 우리나라 사법 체제의 중요한 화두인 ‘치유적 사법(회복적 사법)’ 개념과도 맞닿아있다. 지난해 10월 이 부회장에 대한 첫 파기환송심 공판에서 심리를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가 이례적으로 당부했던 말이 그러했다. 정 부장판사는 약 5분 동안 이 부회장을 향해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에 버금가는 노력 ▲실효적 준법감시제도 마련 ▲재벌 체제의 폐해 시정 등을 주문했었다.

‘치유적 사법’은 전통적인 '응보적 사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탄생했다. 범죄 행위에 대한 무조건적 처벌보다는 범죄에 따른 피해 회복과 재발방지에 목적이 있다. 보수적인 면이 강한 국내 법조계가 진보적 개념인 ‘치유적 사법’을 통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일부 노동시민단체의 '이 부회장 엄벌' 요구는 유감스럽다. 진보진영 인사에겐 치유적 사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유독 기업 총수에 대해서만 지나칠 정도의 엄벌을 요구하는 건 이중적이다.

이 부회장을 구속해 포승줄로 손을 묶고 포토라인에 세우는 것만이 정의는 아니다. 그것은 비열한 망신주기이며 헌법가치를 망각한 여론재판에 지나지 않는다. 

‘치유적 사법’은 진지한 반성과 피해 회복, 유사 사례 예방이란 측면에서 국내외 다수 형법학자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다. 삼성이 준법감시위를 통해 위법행위를 사전에 차단하는 경영 시스템을 갖춘다면, 이는 우리 재계 전체를 위해서도 환영할만한 일이다. 어렵게 첫 발을 뗀 준법감시위에 대해, 시민사회의 지지와 성원이 필요한 이유다. 

특정 기업이나 기업가를 ‘표적’삼아 돌팔매질하는 것은 쉽지만 결국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국민은 기업을 신뢰할 수 있고, 기업은 건전하게 벌어들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 준법감시위의 존재 이유다.

진보를 자처하는 시민단체들은 지금보다 열린 자세로 준법감시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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