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간 6명을 17번 '뺑뺑이'... 檢 삼성 소환, 인권침해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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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간 6명을 17번 '뺑뺑이'... 檢 삼성 소환, 인권침해 수준
  • 양원석 기자
  • 승인 2020.03.2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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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삼바 분식회계' 이복현 수사팀, 도넘은 행보
김종중 전 삼성 사장, 올 들어서만 여섯 차례 소환조사
최지성 등 전현직 임원 6명, 4일에 한 번꼴로 불려 나와 
"특정 피의자 반복·겹치기 소환은 수사 부실 반증" 지적  
입으로만 피의자 인권 보장... 법무부, 대검 방침 무색
사진=시장경제신문DB
사진=시장경제신문DB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수사를 위해 구성된 검찰 전담 수사팀이 18일 김종중 전 삼성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을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올해 들어서만 여섯 번째입니다.

김 전 사장을 비롯해 최지성 전 부회장, 장충기 전 사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 6명은 올해 1월7일부터 이달 18일까지 17차례에 걸쳐 소환조사를 받았습니다. 나흘에 한 번 꼴입니다. 검찰 출신 변호사조차 “지나치다”라고 말할 만큼 수사팀은 삼성 전현직 임원에 대한 조사 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특정 피의자에 대한 반복 소환이 거듭되면서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해 밤샘조사를 금지한 법무부 방침에 역행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리고 있습니다.

검찰의 빈번한 소환 조사는 역설적으로 분식회계 및 삼성 합병 의혹에 대한 수사 부실을 반증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로 시작한 삼성 수사팀은 같은 해 8월 특수4부로 소속이 변경됐습니다. 이후에는 반부패수사4부, 올해 초 경제범죄수사부로 간판을 바꿔 달았습니다. 수사팀을 이끌던 부서장의 얼굴도 송경호 (사법연수원 29기·수원지검 여주지청장) 전 부장에서 이복현(연수원 32기) 부장으로 교체됐습니다.

명칭도 수장도 바뀌었으나 실질은 변함이 없습니다. 18년 12월 13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삼바 관계사), 삼성물산, 국내 4대 회계법인에 대한 대규모 압수수색을 계기로 닻을 올린 수사팀은 지난해 9월까지 10개월 동안 8번의 압수수색을 진행하면서 거칠 것 없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거기까지였습니다. 수사팀은 지난해 하반기 삼성바이오, 에피스, 삼성물산 전현직 임직원을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한 것을 제외하고, 삼성 수사의 발단이 된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선 구체적 혐의점을 찾는데 사실상 실패했습니다.

‘수사 절벽’에 몰린 검찰이 가늠자를 분식회계에서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으로 돌린 것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수사 초점과 방법론에서 초기와 다른 점을 보이고 있으나 수사팀의 본질은 그대로입니다. 수사 대상은 여전히 ‘삼성’이고 그들의 시선은 지금도 이재용 부회장을 향하고 있습니다.

분식회계에서 시세조종으로의 방향 전환은 검찰의 조급함은 물론 이 사건 수사가 처음부터 부실한 기초 아래 추진됐음을 시사합니다. 

[편집자주]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추진된 15년 5월,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일부 반기업 성향 시민단체가 ‘분식회계 의혹’을 처음 제기했을 때부터 경영학, 회계학 교수들과 주류 회계사들은 “이 사건 본질은 콜옵션 지배력에 대한 회계 해석의 차이일 뿐 분식회계와는 거리가 멀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지금도 같습니다. 중견, 소장, 신진을 막론하고 경영학이나 회계학을 전공한 학자들 가운데 ‘삼바 분식회계 의혹’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견해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기업감사 실무를 담당하는 공인회계사 쪽으로 시선을 돌려봐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노동시민단체의 눈치를 보느라 실명을 드러내놓고 의견을 밝히는 이들은 드물지만, 익명을 전제로 하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에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의 본질은 ‘회계기준 변경의 적절성 여부’입니다. 이는 곧 해석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연결회계에서 지분법회계로, 종속회사(자회사)에서 관계사로 회계를 변경한 결정이 ‘한국 채택 국제회계기준’(K-IFRS)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바로 이 사건 분식회계 의혹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이는 학문적 토론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자본시장법이 금지한 분식회계와는 성격 자체가 다릅니다. 

이복현 중앙지검 특수4부장. 사진=YTN뉴스 캡처
이복현 중앙지검 특수4부장. 사진=YTN뉴스 캡처

◆“수사 순조롭다”며 동일인 6번 소환 조사... 앞뒤 안 맞는 검찰 행보

본격적인 수사 착수 1년 6개월이 다 돼 가도록 증거인멸 이외에 건진 것이 없는 검찰 입장에서는 어떤 혐의를 적용하든 기소를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됐습니다.

검찰은 지금도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삼성바이오 등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이 한창이던 지난해 5월 이후 그랬듯, 검찰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사는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고 말합니다.

아쉽게도 검찰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모순된 상황이 존재합니다. 전현직 삼성 미래전략실 임원과 삼성물산 대표에 대한 반복적인 소환조사가 그것입니다.

1월 7일 김신 전 삼성물산 대표 소환을 시작으로 이달 18일까지 이복현 수사팀은 17차례에 걸쳐 삼성 전현직 임원들을 불러 조사했습니다. 약 70일 남짓한 기간 동안 평균 4일에 한 번꼴로 소환조사가 이뤄졌습니다. 소환 대상자가 많다면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특정 인물을 반복적으로 불러 조사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검찰의 수사행태를 수긍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김종중 전 사장의 경우는 무려 6번이나 불렀습니다. 1월에 3번(10, 17, 29일), 2월에 2번(6, 19일), 이달 들어서는 1번(18일) 입니다.

최지성 미전실 전 미전실장(부회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사장)도 각각 3차례씩 검찰에 불려 나왔습니다. 김신 전 삼성물산 대표(1월 7일, 15일)와 최치훈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2월 11일, 3월 18일)은 각각 2회 검찰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정현호 삼성물산 사업지원TF 사장은 2월 14일 검찰에 나왔습니다.

특정 피의자를 이처럼 반복 조사하는 예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검찰의 말대로 ‘수사가 순조롭다’면 동일 피의자를 6번이나 불러 조사할 이유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두 명을 같은 날 부른 ’겹치기 소환‘도 4회에 달합니다.

◆특정 피의자 반복 소환, ’인권 보호‘ 취지 무색

지난해 하반기 법무부가 피의자 인권 보호를 명분으로 밤샘조사를 금지하면서, 동일인에 대한 소환조사가 예전보다 늘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같은 피의자를 70일 동안 6회나 부른 건 지나치다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 A는 “대단히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라며,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해 밤샘 조사를 금지한 취지에도 반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서초동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 B는 “특정 피의자를 반복해서 조사하는 것으로 볼 때, 검찰이 원하는 그림이 예상대로 나오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곁들여 그는 “이렇게 불러놓고 수사 결과가 미진하면 내부에서 책임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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