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대국민 사과하라"... 준법委의 월권 혹은 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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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대국민 사과하라"... 준법委의 월권 혹은 파격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0.03.14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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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승계 사과·무노조 포기, 총수 이재용이 직접 선언하라"
전자-7개 관계사에 재발방지 권고문... 30일 이내 회신 요청
'면피용 조직' 폄훼 정면돌파... 글로벌 수준 '준법경영' 요구
"준법감시조직의 한계 벗어난 행위, 위원회가 재판부냐" 비판도
김지형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 사진=시장경제DB
김지형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 사진=시장경제DB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법감시위)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경영권 승계 의혹과 노동 관련 이슈 등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권고했다. 위원회는 향후 같은 상황이 재현되지 않도록, 그룹 차원의 세부방안 마련을 함께 권고했다. 삼성은 준법감시위의 이 같은 권고에 “충실히 검토하겠다”고 입장을 전했다. 

11일 준법감시위는 이재용 부회장 및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SDS,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7개 관계사에 권고문을 송부하고, 30일 이내에 회신할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권고문에는 ▲경영권 승계 ▲노동 ▲시민사회 소통 등 세 가지 의제와 각각의 개선방안에 대한 위원회 제안이 담겼다. 준법감시위는 “출범 이후 지금까지 삼성 최고경영진에게 요구되는 준법 의제에 대해 장시간 논의를 거듭한 끝에 권고의견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준법감시위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근간으로 삼성의 윤리준법경영을 위한 파수꾼 역할에 집중하고, 준법감시 프로그램을 전반적이고 실효적으로 작동하게 하며, 준법감시 분야에 성역을 두지 않겠다고 다짐한 결과물”이라며 “이번 권고가 변화속에 삼성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됨을 우리 사회에 널리 알리는 울림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부연했다. 

먼저, 준법감시위는 그간 삼성의 과거 불미스러운 일들이 대체적으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이 있다고 봤다.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 관련 법원 심리가 진행 중이란 점을 고려하면 준법위의 '사과 권고'는 선을 넘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준법감시위는 “과거 총수 일가의 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준법의무를 위반하는 행위가 있었던 점에 대해 '그룹 총수'인 이재용 부회장이 반성과 사과는 물론, 향후 경영권 행사 및 승계 관련 준법의무 위반이 발생하지 않을 것임을 국민들에게 공표해 줄 것”을 주문했다. 

이와 함께 “각 관계사들의 경우, 일반 주주 이익을 지배주주의 이익과 동일하게 존중하고 일부 지배주주 이익을 위해 나머지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할 것”을 권고했다. 

노동관련 의제에 대해서도 준법감시위는 ‘돌직구’와 같은 직언을 권고안에 담았다. 이는 지난해 12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노조와해 사건 1심 선고에서 삼성 및 삼성전자서비스 전·현직 임직원들이 무더기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재판에서 변호인단은 '위법 수집 증거 배제의 원칙'과 '별건수사'의 위법성을 항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준법감시위는 국민 눈높이에 맞춰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를 향한 재발방지 약속'이 법원의 판단보다 우선이라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권고안에서 준법감시위는 ”노동 관련 준법의무 위반이 삼성의 기업가치에 커다란 손실을 입힐 수 있다는 인식 아래, 노사가 모두 노동 관련 법규를 준수하면서 화합하고 상생하는 것이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에 도움이 된다“며 ”자유로운 노조활동이 거시적 관점에서 오히려 기업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밖에 ▲삼성 계열사에서 수차례 노동법규를 위반하는 등 노동관계에서 준법의무 위반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점에 대한 반성과 사과 ▲노동 관련 준법의무 위반 재발방지 방안을 노사 간 충분한 소통을 통해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약속 ▲삼성그룹 사업장에서 무노조 경영 방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 등을 '그룹 총수'인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표명할 것을 제시했다. 

‘시민사회 소통’ 의제 역시 중요 의제로 다뤘다. 준법위는 삼성이 그동안 시민사회와의 소통에 있어 신뢰관계를 구축하지 못했다고 보고, 이 부회장과 관계사 모두가 시민사회 신뢰 회복을 위한 구체적 실행방안을 마련, 공표할 것을 권고했다. 

이 부회장의 사과를 요구하면서 '그룹 총수'라는 꾸밈말을 두 차례 사용한 점을 고려할 때, 위원회가 요구하는 사과의 본질은 '법적인 측면에서 유죄를 시인하라'는 뜻이 아니라, 기업 오너로서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민감한 이슈부터 매듭짓자는 준법감시위... "위원회가 재판부냐", 월권 논란도 

권고안에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관련 논란과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가 삼성 및 관계사 차원에서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는 준법감시위가 이 부회장의 형량 감경을 위한 ‘면피용 조직’이라는 일부의 부정적 시각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준법감시위는 “본연의 사명과 임무에 충실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는 위원회 역할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며 “이 부회장과 관계사 모두가 위와 같은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조치를 마련, 공표할 것”을 요구했다. 

앞서 올해 1월 17일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4차 공판에서 재판부는 “준법감시제도는 기업범죄 양형 기준의 핵심적 내용으로, 미국 연방법원 양형기준 제8장에도 언급된 양형 사유”라며 “준법감시위원회 운영 실태 검증을 위한 전문심리의원단을 구성, 이들의 법정 의견 및 보고내용을 양형판단에 반영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바 있다. 

박영수 특검은 “준법감시제도가 양형사유 어디에 해당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며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특검은 지난달 파기심 사건 재판부에 대한 기피신청을 서울고법에 냈다.  

법조계 반응을 종합하면 특검의 ‘기피신청’은 인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대법원 판례가 제시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다.  

지난 1월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공식 출범한 준법감시위는 2월 5일 첫 회의를 연 이래 이달 5일까지 총 세 차례 회의를 가졌다. 설립 초기부터 독립적인 준법경영 감시 기능과 이례적인 자체조사권 등을 내세우며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왔다. 

실제로 준법감시위는 지난달 13일 정례회의를 열고, 과거 미래전략실이 임직원들의 시민단체 기부금 후원내역을 무단 열람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를 촉구한 바 있다. 

삼성전자도 위원회 권고를 받아들여 해당 시민단체 및 관계자들에게 사과를 표시했다.  

삼성은 준법감시위와 별개로 삼성전자를 비롯한 각 계열사 준법감시조직을 대폭 강화했다. 각 계열사 내부 준법감시조직을 대표이사 직속으로 배치해 위상을 높이고, 변호사를 부서장으로 선임해 전문성도 업그레이드했다.

준법감시위의 이날 권고안 발표에 대해서는 "기업 준법감시조직으로서 권한을 넘어섰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위원회의 제안은 '권고'라는 표현이 붙었을 뿐 이 부회장이나 삼성 측이 다른 행보를 보이기 어렵다는 현실 상황을 고려할 때, 상당한 구속력이 부여된 '요구'에 가깝다.

법원이 심리 중인 사건과 기소초자 안 된 사안을 모두 묶어 '사과부터 먼저할 것'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형태의 여론재판이란 비판적 견해도 있다.

위원회의 '과감한' 행보 이면에 이 부회장의 준법경영 의지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부회장의 강력한 준법경영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위원회의 이같은 움직임은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지형 준법감시위원장도 1월 기자간담회에서 “이 부회장은 위원회의 완전한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실히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과 삼성 측이 권고를 받아들여 전향적 자세를 보인다면, 일부 노동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위원회 무용론'은 입지가 크게 좁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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