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작물 중금속 350배' 발표오류 파문... 발칵 뒤집힌 석포,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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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물 중금속 350배' 발표오류 파문... 발칵 뒤집힌 석포, 왜?
  • 정규호 기자
  • 승인 2020.02.2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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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25시] 환경단체 발표 오류, '중금속 농작물' 사건 내막
안동환경운동연합, "석포 인근 농작물서 중금속 350배 검출"
발표 당일 저녁, 정정자료... "안동대서 ppb와 mg 표기 오류"
단위표기 정정 결과, 제련소 인근농산물 모두 '정상'으로 확인
"측정단위 표기 실수" 사과... 시료 채취 장소 공개는 거부
주민들 "분석 맡은 대학서 측정단위 표기 실수? 납득 어려워"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2019년 12월 20일 경북 봉화군이 발칵 뒤집혔다. 봉화군 생산 농작물에서 '350배'의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발표가 나왔기 때문이다. 중금속 검출을 주장한 곳은 안동환경운동연합(이하 안동연합). 발표 후 ‘청정 봉화’는 하루 아침에 ‘중금속 봉화’로 추락했다.

그런데 최근 반전이 일어났다. 봉화군 주민들이 "안동연합과 안동대가 중금속 수치를 조작했다"며 형사 고발을 추진 하고 나선 것이다. 안동연합은 "분석을 맡긴 안동대가 ‘ppb’와 ‘mg’ 단위를 실수로 잘못 기입했다"고 해명했지만 주민들은 그동안의 행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실수가 아닌, ‘특정 목적을 가진 의도적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봉화군 일대에서 불거진 '농작물 중금속 오염 논란'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18일 오후 기자는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경북 봉화 석포3리를 찾았다. 산골 마을답게 공기는 맑았고, 낙동강 상류는 깨끗했다. 경치와 다르게 마을에는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주민들은 "안동연합의 허위사실 공표로 피와 땀을 흘려 키운 농작물이 하루아침에 '암덩어리'로 전락했다"며 분노를 표시했다. 

이번 사안과 관련돼 지역 주민들을 대표하고 있는 봉화군 석포면발전협의회 최원춘 회장은 "안동연합에서 수치를 바꿔 농작물 중금속 함량을 조작하면서 우리 주민들은 하루 아침에 중금속 농산물을 재배하는 인간들이 됐다. 오늘 안동연합을 고발하기 위해 변호사 선임계를 제출했다. 안동연합으로부터 반드시 사과를 받아내고, 우리군 농작물에 대한 신뢰를 되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북 봉화군 주민들은 2월 6일 회의를 열고, 안동환경운동연합과 안동대가 중금속 수치를 조작했다며 형사고발키로 결정하고, 18일 변호사 선임계를 제출했다. 사진=봉화 주민
경북 봉화군 주민들은 2월 6일 회의를 열고, 안동환경운동연합과 안동대가 중금속 수치를 조작했다며 형사고발키로 결정하고, 18일 변호사 선임계를 제출했다. 사진=봉화 주민

주민 B씨는 “(안동연합의) 중금속 발표 이후 사과 등 농작물 택배 물량이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라고 들었다. 안동연합이 (영풍을) 내쫓고 싶어하는 것은 알겠는데, 이번 중금속 검출 발표는 심해도 너무 심했다. 시민단체라는 곳이 사람들을 볼모로 삼아 이렇게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냐” 반문했다.

주민들은 중금속 함량을 속인 안동연합을 상대로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2월 2일부터 공언해 왔다. 고발은 봉화군 석포면발전협의회, 농촌지도자회, 사과발전회, 여성농민회, 농업경영인회 등 5개 단체가 공동으로 진행 중이다.

인근 석포3리에는 아연을 생산하는 영풍그룹 계열 석포제련소가 위치해 있다. 안동연합은 이 제련소에서 낙동강을 오염시키는 물질이 배출되고 있다며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 논란도 석포제련소를 겨냥해 인근 농작물 중금속 함량을 조사하다가 발생했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그날’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날은 안동연합이 "기준치의 350배에 달하는 중금속이 봉화군 농작물에 포함돼 있다"고 처음 발표한 지난해 12월 20일이다. 

봉화군 주민들은 가능하다면 '2019년 12월 20일' 이전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은 안동환경운동연합은 '2019년 낙동강상류 중금속 오염 실태 모니터 결과 발표 및 토론회'를 개최하고, 봉화군 농작물에 중금속이 기준치 보다 350배 넘게 검출됐다고 밝힌 날이다. 사진=봉화 주민
봉화군 주민들은 가능하다면 '2019년 12월 20일' 이전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 안동환경운동연합은 '2019년 낙동강상류 중금속 오염 실태 모니터 결과 발표 및 토론회'를 개최하고, 봉화군 농작물에서 중금속이 기준치 보다 350배 넘게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사진=봉화 주민. 

'아름다운 재단'이 후원을 했고, 주최 및 주관은 안동연합이 맡았다. 안동연합 수장인 김수동 공동의장이 직접 주제 발표자로 나섰다. 이 자리에서 안동연합은 "석포제련소 인근 농작물에서 수백배의 중금속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당시 배포 자료에는 ▲무 줄기: 카드뮴 117배(23.45ppm) ▲파뿌리: 카드뮴 185배, 납 192배 ▲사과: 카드뮴 58배, 납 83배 등 기준치의 350배가 넘는 중금속이 검출됐다고 명시돼 있었다.

안동연합이 중금속 검출을 발표하자 언론사들은 그 내용을 받아 썼다. 기사가 나가자 청정 봉화군이 자랑하던 농산물들은 하루아침에 ‘중금속 범벅 농산물’로 낙인 찍혔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농작물로 생계를 이어온 농민들이었다.

그런데 '중금속 검출'을 주장하던 안동연합은 당일 저녁 돌연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분석을 맡긴 안동대에서 중금속 수치를 'ppb/kg'으로 표기해야 하는데, 'mg/kg'으로 오기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ppm은 '10억분의 1', mg는 '100만분의 1'을 의미하는 수치로 1000배의 차이가 나는 단위다. 단위가 바로잡히자 봉화군 농작물의 중금속 수치는 모두 기준치 이하 '정상'으로 바뀌었다. 

안동환경운동연합이 2019년 12월 20일 배포한 해명자료. '표기가 단위가 mg/kg로 표시되었으나, 이는 ppb/kg로 단위 표시가 되었어야 하나 분석기관(안동대)에서 실수를 인정해 와서 이를 바로잡고자 합니다'라고 적혀있다. 사진=봉화 주민
안동환경운동연합이 2019년 12월 20일 배포한 해명자료. '표기 단위가 mg/kg로 표시되었으나, 이는 ppb/kg로 단위 표시가 되었어야 했다. 분석기관(안동대)에서 실수를 인정해 이를 바로잡고자 합니다'라고 적혀있다. 사진=봉화 주민

안동대는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했다. 안동대 관계자는 20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안동연합에서 ppb, ppm 등의 수치를 알기 쉽게 mg 등으로 변환해 달라고 요청했고, 단위를 바꿔 제공하다가 문제가 일어났다”며 “안동연합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측 잘못이 맞다”고 인정했다.

안동대의 시인으로 봉화군 농산물 중금속 검출 논란은 끝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주민들이 안동연합과 안동대가 후속조치는 커녕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양측 갈등이 깊어진 것이다. 특히, 주민들은 "안동연합과 안동대가 취한 그동안의 행태를 감안할 때, 실수가 아니라 주민들을 여론몰이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형사고발을 진행했다.

주민들이 ‘여론몰이’에 이용되고 있다는 근거는 네 가지로 정리 할 수 있다.

먼저 안동연합의 '시료 채취 지역 비공개'다. 농민들은 "안동연합이 어디서 시료(농작물)를 채취했는지 아직도 밝히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안동연합이 언론사에 제공한 해명자료를 보면 어느 밭에서 어떤 농작물을 채취했는지 알 수 없다. 무 3개, 파 4개, 사과 6개에서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것이 전부다. 1개의 밭에서 3개의 시료를 채취한 것인지, 각기 다른 밭에서 1개씩 채취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시료 채취장소 공개는 조사의 신뢰성 확보에 필수적인 사안이다. 안동연합 자료에서 시료 채취 지역을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표현은 '석포제련소 인근서 채취했다'는 한 문장이 전부다. 이마저도 반경 몇 km안에서 채취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지난해 안동연합과 비슷한 시기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발표한 '석포제련소 반경 4km 이내 농경지 256필지 농산물 전수조사 중금속 결과표'를 보면 시료 지역이 어디인지 확인이 가능하다. 모든 필지의 농작물에서 '적합' 판정이 나왔다. 신뢰도 면에서 안동연합 자료와 매우 비교되는 대목이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22일 발표한 '석포제련소 반경 4km 이내 농경지 256필지 농산물 전소조사 중금속 결과표'. 시료 채취 지역이 명확히 기재돼 있다. 이 결과에서 석포제련소 인근 농작물은 모두 '적합' 판정을 받았다. 사진=봉화 주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22일 발표한 '석포제련소 반경 4km 이내 농경지 256필지 농산물 전수조사 중금속 결과표'. 시료 채취 지역이 명확히 기재돼 있다. 이 결과에서 석포제련소 인근 농작물은 모두 '적합' 판정을 받았다. 사진=봉화 주민

이에 대해 안동연합 김수동 의장은 “석포제련소 반경 2km 이내 밭에사 농작물을 채취했고, 최초 발표 자료에서 농작물을 채취한 밭의 위치를 공개했다”고 반박했다.

두 번째는 분석을 전문하는 대학 기관이 기초적인 단위 사용에서 실수를 범하고, 이를 검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안동대와 안동연합 측의 해명 자체를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의문을 나타냈다.

실제로 안동연합 김수동 의장은 수십년간 환경운동을 한 경력을 갖고 있다. 안동대 역시 실험을 주관한 연구원이 모두 박사급이다. 특히, 이 두 곳은 이번 뿐 아니라 과거에도 농작물 중금속 검출 분석을 공동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 회장은 “수십년간 환경운동을 해온 단체와 전문가 집단인 대학에서 1000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단위를 틀리게 사용하고, 이를 검증하지 못했다는 것을 단순 실수로 보기는 힘들다”고 주장했다.

농작물에서 중금속이 기준치보다 350배 검출됐다는 것은 한 마을의 경제가 완전히 파탄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안동대로부터 분석 결과를 넘겨받은 안동연합이 발표에 앞서 충분한 검증을 취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안동대는 “‘중금속 검출’ 발표가 있기 1~2개월 전 안동연합으로부터 시료를 받아 분석했고, 결과는 발표 1개월 전에 줬다”고 밝혔다. 대학 측 해명에 따르면 안동연합은 한 달 가까운 충분한 검증기간이 있었다. 

수치가 정상이었다면 석포제련소 폐쇄를 주장하는 환경단체가 오히려 제련소가 안전하다고 증명하게 되는 꼴이 되므로 토론회를 개최하지 않았을 개연성도 존재한다.

주민들은 안동연합이 안동대의 단위 실수를 토론회 전에 인지했고 차마 석포제련소가 안전하다고 발표할 수 없으니, 누군가 단위 오류 문제를 제기하지 전까지 ‘중금속 350배 검출’ 프레임을 계속 끌고 간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안동연합 김 의장은 “1월 6일 석포면 주민들 앞에서 공식 사과를 했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경과에 대해서도 설명을 드렸다”며 “분석 결과를 받은 후 수치가 너무 높게 나와 문자로 대학 측에 ‘수치가 맞느냐’고 질문을 했더니 ‘맞다’라는 답변이 왔고, 재차 전화를 걸어 ‘맞느냐’고 물었더니 다시 한번 ‘맞다’라고 대답해 발표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단위가 잘못됐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숨기지 않았다는 해명이다. 하지만 주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문자 공개’는 거부했다.

김 의장은 사과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진정성에 의심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1월 6일 김 의장의 사과 현장에 안동대 관계자는 배석하지 않았다. 정작 잘못을 한 사람은 자리에 없고, 안동연합이 '대리 사과'를 한 셈이다.

세 번째로 안동대안동연합의 잘못으로 봉화군 농작물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음에도 이미지 회복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자신들의 실수만 감추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12월 20일 안동엽합은 ‘봉화군 농작물 중금속 350배 검출’을 발표했고, 많은 언론사들이 이 내용을 보도했다.

하지만 기사 보도 후  '단위 오기'를 알게 된 안동대와 안동연합은 '해명 자료'를 추가로 배포하면서 언론사에 엉뚱하게 '해명기사'가 아닌 '기사삭제'를 요청했다. 실제로 현재 중금속 검출 기사는 포털사이트 등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정작 가장 중요한 실추된 농작물들의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한 해명자료는 하나도 보도되지 않고 있고, (안동연합, 안동대가)보도를 위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이 직접 봉화군, 경북도를 찾아 이미지를 바로잡아달라는 홍보를 요청하고 있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의장은 “해명자료가 추가로 보도되면 봉화군 농산물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고,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 같아서 아예 삭제시키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기사삭제를 언론사에 요청했다”고 해명했다.

네 번째는 안동대에서 '중금속 350배 검출'을 선전 공표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는 점이다.

봉화주민들에 따르면 안동대는 안동연합에게 '공인된 분석기관도 아닌 대학 자체에서 운영하는 실험분석기관이 제공한 성적서는 선전 및 공표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인된 성적서가 아니므로 선전용으로 활용하지 말라고 권고를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의장은 “과거에 계속해왔던 방식”이라며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안동대 관계자는 사안을 취재한 기자에게 “그동안 피해자에게 사과를 할 기회가 없었다. 피해를 입은 농민들 연락처를 알려주면 지금이라도 가서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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