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를 살리자] 소비지표는 봄, 체감 한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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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를 살리자] 소비지표는 봄, 체감 한겨울
  • 김원석 기자
  • 승인 2016.06.2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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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작성 기준변경으로 성장률 끌어올린 착시효과
건설 등 여전히 바닥…경기 체감지수 BSI 떨어져

한가한 식당 많고 마트·시장 손님도 안 늘어
현오석 부총리 "2분기 재정 더 풀어 체감경기 살린다"

수출이 홀로 지탱하던 경기회복이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하반기부터는 수출증가율이 급격히 낮아질 것이라는 한국은행의 경고다. 

견조한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내수가 살아나야 하는데 좀처럼 조짐이 없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금리인상과 중국 경제도 성장률이 둔화, 고유가 행진이 한국경제의 풍랑을 예고하고 있다.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는 경제를 구할 정책은 무엇일까. 달러대비 고환율을 유지하며 수출에만 의존하던 모습에서 탈피해 내수부양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이에 뉴데일리경제는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내수경기를 진단하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주>

 

지표상으론 봄이 엿보이지만 밑바닥 경기는 여전히 겨울이다. 경제성장률이 3%에 이르고 1인당 국민소득도 2만6000달러를 웃돌아 사상 최대지만 국민이 체감할 정도로 생활수준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한국은행 관계자도 "국내총생산(GDP) 지표와 체감 경기의 괴리가 커졌다"고 말했다. 경제성장의 효과가 가계에까지 미치지 못하는 경제구조의 불균형이 심해진 탓이다. 지표가 좋아져도 개인의 생활은 여전히 팍팍한 이유다.

한국은행이 지난 1월 속보치로 내놓은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8%였다. 이번에 국제 통계작성 기준을 개편해 산출한 경제성장률은 0.2%포인트 높은 3.0%였다.

음악·드라마·영화·문학 등 창작품의 제작비와 기업 및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출이 지적재산권에 편입되고, 정부의 소비지출로 인식되던 전투함, 군함 등 일부 무기시스템도 자산으로 인정하면서 성장률 수치가 상승했다.

이들 항목이 자산이 되면서 감가 상각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부가가치를 계산해 GDP 통계에 잡은 것이다. 지금까지 일회적으로 인정했던 것보다 부가가치의 총량이 늘어났다.

가공무역과 중계무역 등 글로벌 생산 활동의 거래발생 시점도 '국경 통과'에서 '소유권 이전'으로 변경됐다. 즉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이 해외에 법인을 세워 소유권을 유지하고 있다면 해외에서 발생한 이익도 국내 GDP로 잡힌다는 의미다.

이 같은 개편으로 전체 성장률을 끌어올린 효과가 있었지만 이는 가계 몫이 아닌 정부와 기업 소득이 커졌을 뿐이다. 일반 국민으로서는 성장률 상승의 효과를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지난해 국민총소득(GNI)이 늘어난 것은 원화 강세(원·달러 환율 하락) 덕이 컸다. 원화 기준으로는 소득이 2782만9000원에서 2869만5000원으로 3.1% 증가했지만 달러로 환산하면 6.1% 증가했다. 실제 가계가 소비할 수 있는 지표인 1인당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DI)은 1만4690달러로 전년보다 7.5% 증가했다.

지표상 가계소득이 이렇게 증가했지만 서민들이 체감하기는 어렵다. 상위 1%의 소득이 더 큰 폭으로 늘어나는 등 양극화가 심해진 데다 가계·기업·정부를 포함한 1인당 GNI에서 가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56.1%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62.6%)보다 낮기 때문이다. 전체 소득 중 가계로 유입되는 부분이 미국(74.2%), 프랑스(66.9%), 일본(64.2%) 등 외국에 비해 그만큼 적다는 의미다.

"경기가 너무 안 좋아" 요즈음 식당마다 가게마다 듣게 되는 소리다. 정부는 올해 우리경제가 지난해보다 3.9% 성장할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현실은 까마득해 보인다.

대한민국은 21개월 연속 경상수지 흑자를 이어가고 있고 이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에만 이익 10조원을 냈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풀뿌리라고 할 수 있는 소매업, 음식업, 중개업 등 '골목상권' 체감경기는 냉랭하기만 하다.

직업소개소를 헤매던 박철민(55)씨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겨울공사는 끝나 가는데 새 현장 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아서다. 시장 통에 삼삼오오 모여 현장 정보를 나누지만 건설경기가 바닥이라 현장 잡기는 하늘에 별 따기다.

박 씨는 "새벽부터 나왔는데 일감을 찾지 못했다. 올해 건설경기가 정말 너무 어려운 것 같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데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용문시장 내 한 미용실. 원장 김미경 씨는 어렵게 마련한 보증금으로 미용실을 열었지만 운영할수록 적자다. 임대료 120만원을 내지 못해 보증금을 까먹은 지 오래다. 가게를 내놨지만 미용실 운영을 하겠다는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권리금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 김씨는 "경기가 나만 안 좋은 것인지, 불황도 이런 불황은 처음"이라고 했다.

영등포구 양평동에 사는 주부 김진희 씨는 "명절 이후로 대형마트를 찾지 않았다가 대형마트의 재고처분 행사 때 다시 생필품 쇼핑에 나섰다. 요새 대형마트에 재고처분 행사가 많아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지만 우리 같은 서민들이 체감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했다.

서울신용보증재단이 서울 소재 1200여 소기업·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체감 경기를 조사해 보니 1분기 실적BSI(경기실사지수)는 58.3으로 지난해 4분기(62.3)보다 4.0포인트 하락했다. 또 1분기 백화점 매출이 다소 늘었지만, 대형마트는 업체별로 3∼5% 일제히 매출 감소를 기록했다.

정부의 잇단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집계한 3월 건설기업 BSI는 67.9로 전달보다 1.0포인트 떨어졌다. 기준치 100을 크게 밀돌 정도로 건설경기를 어둡게 보는 업체가 많다는 것이다.

한 국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체감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느끼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크게 불어난 기업의 저축이 임금 등으로 분산될 수 있게 가계경기를 호전시켜 경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재정집행 규모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투입된 재정이 효과적으로 시장에서 발휘되려면 규제완화와 내수진작 같은 근본적인 경기활성화 정책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경기회복세에도 체감경기가 기대만큼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보고 상반기 재정집행규모를 확대하기로 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 "투자 등 민간부문의 회복세가 견고하지 않고 체감경기가 어려워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중소기업 등에 대한 정책금융이 상반기 중 60% 수준으로 조기에 집행될 수 있도록 2분기에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며 "일자리가 늘어나는 등 삶이 나아지는 것을 국민이 체감하는 게 정책의 최고 목표다. 경기회복이 본격화할 수 있도록 정책대응 노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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