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보일러 먼저 만든 죄?... 환경부 '지원금 유예' 역차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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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보일러 먼저 만든 죄?... 환경부 '지원금 유예' 역차별 논란
  • 정규호 기자
  • 승인 2020.02.1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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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가정용 친환경 보일러 설치 의무화' 작년 11월 입법 예고
올해 4월 3일 시행 예고 후, 돌연 2021년 1월 1일로 보조금 지급 연기
환경부 "보일러사 모두가 유예 요청" vs 일부 보일러사 "그런 적 없다"
친환경 보일러 개발 기업들 "손해 보며 대기 상황"... 역차별 논란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10월 8일 오후 서울시 노원구 하계1차 청구아파트를 방문하여 친환경 보일러 설치 현장을 둘러보고 미세먼지 저감에 동참한 주민, 지자체, 업계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사진=환경부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8일 오후 서울 노원구 하계1차 청구아파트를 방문, 친환경 보일러 설치 현장을 둘러보고 미세먼지 저감에 동참한 주민, 지자체, 업계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사진=환경부

올해 4월부터 '가정용 친환경 보일러 의무 설치' 방침을 밝힌 환경부가 돌연 제도를 유예해 역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보일러 개발기업들이 '일반보일러' 재고분을 올해 말까지 판매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해 제도 시행을 유예했다는 것이 환경부의 설명인데, 정부 제도 시행계획에 맞춰 이미 친환경 저녹스 보일러 개발을 끝낸 기업들은 역차별을 받게 된 상황이다. 대조적으로 아직 친환경 가정용 보일로 개발을 완료하지 못한 기업들은 정부 제도 유예로 혜택을 받게 될 전망이다.

정부 방침에 따라 개발을 서두른 기업들은 불이익을, 아직 개발을 마치지 못한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게 되는 상황에 놓이면서 제도 유예를 둘러싼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다. 

환경부는 2019년 11월 7일 국민에게 초대형 환경 정책을 발표했다. <대기관리권역의 대기환경개선에 관한 특별법>(대기관리권역법)을 제정하고, 올해 4월 3일부터 제도를 시행키로 한 것이다.

대기관리권역법의 핵심은 공기질 관리 범위를 기존 수도권에서 중부, 남부, 동남권까지 확대하는 데 있다. 관리 방식은 크게 ▲오염물질 배출 총량제 ▲자동차 배출가스 억제 ▲생활 배출원 관리 등으로 압축된다.

이번 역차별 논란은 ‘생활 배출원 관리’에서 발생했다.

환경부는 생활 배출원 관리를 위해 가정집에는 앞으로 친환경 보일러만 설치할 수 있도록 의무화 규정을 만들었고, 시행일은 ‘2020년 4월 3일’이라고 못 박았다. 환경부는 ‘친환경 보일러’ 인증을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맡겼고, 국민들이 인증을 받은 보일러를 설치하거나 교체 할 때 정부지원금 20만원을 제공키로 했다. 지원대수는 총 30만대다.

자료=환경부
자료=환경부

대기관리권역법 시행규칙 별표6에 따르면, '설치‧교체 지원비(20만원)'를 받을 수 있는 가스보일러는 1~2등급 뿐이다. 1등급은 열효율 92% 이상, 질소산화물(NOx) 배출농도 20ppm 이하, 일산화탄소(CO) 배출농도 100ppm 이하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2등급은 열효율 81% 이상, 질소산화물(NOx) 배출농도 40ppm 이하, 일산화탄소(CO) 배출농도 200ppm 이하를 충족해야 한다.

등급을 나눈 이유는 ‘배수구’ 때문이다. 1등급은 열효율을 높이기 위해 배기가스를 재활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응축수가 많이 나온다. 따라서 보일러 설치장소에 배수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보일러 전용 배수구가 없는 가정집이 많다는 것. 공기질 관리를 위해서는 배수구가 없는 가정집도 미세먼지를 적게 내뿜는 1등급 수준 보일러를 설치할 수 있도록 제도를 운영할 필요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2등급 가스보일러’다.

2등급 가스보일러는 '일반보일러' 대비 질소산화물과 일산화탄소 배출농도가 1/5 수준이다. 다만 저녹스 친환경 장치를 장착하기 때문에 일반보일러 보다 10만원 가량 비싸다. 정부는 2등급 가스보일러를 설치하는 경우에도 1등급 보일러와 같은 정부지원금을 제공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국내 보일러 개발 기업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시행시기는 역시 2020년 4월 3일이었다. 

취재 결과 국내 보일러 개발기업 중 2곳이 2등급 보일러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7일 대기관리권역법 입법 예고를 했고, 발 빠르게 ‘2등급 가스보일러’ 개발에 박차를 가한 일부 보일러사는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변수가 발생한 것은 그 이후다. 환경부는 돌연 ‘2등급 가스보일러’ 설치‧교체 지원비 제공시기를 내년으로 유예한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A보일러 관계자는 “환경부의 친환경 보일러 정책에 발맞춰 기술을 개발한 기업은 아직 개발을 못한 업체들을 위해 손해를 보며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며 “이런 식으로 정책을 펼치면 어떤 기업도 정부 정책에 신뢰를 갖지 못하고, 기술 개발도 못한다”고 하소연 했다.

B사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새로운 스마트폰을 개발했는데, 정부에서 경쟁사가 아직 개발을 못했으니 출시를 기다리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환경부는 "보일러 개발사들이 제도 시행 연기를 먼저 요청했기 때문에 유예 결정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대기관리과 관계자는 “보일러 기업들이 모두 내년으로 제도 연기를 요구했다”며 “기존에 제작한 제품(일반보일러)이 남아 있으니 팔 수 있게 유예를 해달라는 요청이어서 받아들였다. 아울러, 2등급 가스보일러 개발에 성공한 기업들은 인증을 받고 그대로 팔면 된다. 2등급 가스보일러 인증도 그대로 받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보일러 기업들의 설명은 환경부의 그것과 온도차가 있다. A사 관계자는 “환경부 주장처럼 말한 적이 없다. 4월 3일 제도 시행에 맞춰 2등급 가스보일러를 개발한 업체가 있으니 지원금을 원안대로 제공할 경우 유예에 동의한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반박했다.

단순히 “보일러 기업들이 연기를 요청했다”는 환경부의 주장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환경부는 “그동안 수차례 회의를 가졌지만 보일러 기업들이 '2등급 가스보일러 지원금' 등을 주장한 적은 없었다. 조건을 달았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고 재반박했다.

양측 주장이 엇갈리면서 논란은 진실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설득력은 업계 쪽으로 쏠리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제도 시행에 맞춰 신기술을 개발한 업체가 아직 개발을 하지 못한 기업의 이익 보전을 위해 자진해서 제도 도입 연기를 요청했다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환경부는 친환경 보일러 의무화 도입 목적을 ‘미세먼지 저감’이라고 밝혔다. 미세먼지를 저감할 수 있는 보일러가 개발됐는데, 일부 기업이 도입 연기를 요청했다고 해서 환경부가 이를 수용했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

‘미세먼지 저감’이라는 정부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원래 계획대로 2등급 가스보일러에 정부지원금을 제공토록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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