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보국' 외친 유통巨人의 99년... 신격호 삶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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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보국' 외친 유통巨人의 99년... 신격호 삶 재조명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0.01.2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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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건너가 맨주먹으로 일군 '롯데'... "한국 경제의 신화적인 존재"
'관광보국' 꿈꾼 신격호... 숙원 사업인 '롯데월드 타워'로 국가경제에 기여
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사진=롯데
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사진=롯데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 맨주먹으로 현해탄을 건넌 청년은 일본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성장했고, 한국과 일본의 경제·산업 분야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채 고국 땅에서 잠들었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장남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 회장 등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9일 향년 99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근·현대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창업 1세대’ 시대가 저물게 됐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지난 18일부터 갑작스런 건강악화로 인해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신 명예회장은 결국 19일 오후 4시 30분쯤 영면에 들었다. 신 명예회장의 타계 소식이 알려지자 경제계에선 즉각 애도의 뜻을 표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고인은 선구적 투자와 공격적 경영으로 국내 식품.유통.관광 산업의 기틀을 마련했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그룹 임직원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도 허창수 회장 명의로 추도사를 발표했다. 허 회장은 “갑자기 들려온 애통한 소식에 마음 속 깊이 슬픔이 밀려든다. 신 명예회장은 한국 경제의 신화와 같은 존재였다”며 “그가 걸은 길은 국민에게 즐거움을 전하며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아름다운 여정”이라고 애도했다. 

신 명예회장의 장지는 울산시 울주군에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발인은 22일 오전이다. 
 

젊은 시절의 신격호 명예회장. 사진=롯데
젊은 시절의 신격호 명예회장. 사진=롯데

◆ 단돈 83엔 들고 일본행...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성실함과 신용으로 일어선 사업가

우리나라가 해방 직후 일본 기업들이 철수하면서 놓고 간 적산기업을 불하받아 성장한 타 기업들의 사례와 달리, 신 명예회장은 ‘혈혈단신’ 타국으로 건너가 맨주먹으로 사업을 일군 자수성가형 기업가였다. 

1922년 10월 4일 경상남도 울산군 상남면 둔기리에서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신 명예회장은 1941년 성공하겠다는 꿈을 안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의 수중에 있는 돈이라고는 사촌형이 노잣돈으로 쥐어준 83엔이 전부였다.  

처음 일본에 당도한 신 명예회장은 도쿄에 살고 있던 고향 친구의 자취방에서 얹혀살면서 신문·우유 배달 등 닥치는 대로 잡일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그는 가슴 한편에 ‘작가’를 동경하는 ‘문학청년’이기도 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감명 깊게 읽고 여주인공인 ‘샤롯데’에서 ‘롯데’라는 사명을 지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현 와세다 대학교의 전신인 와세다 고등공업학교 화학과에 입학한 그는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고단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 보던 일본인 사업가 하나미츠(花光)가 당시 거금이었던 5만엔을 사업자금으로 빌려주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신 명예회장은 이 돈을 밑천으로 윤활유 공장을 지었지만, 전쟁 중 폭격으로 인해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돈을 빌려 공장을 새로 짓고 운영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다시 폭격을 당하면서 막대한 빚더미에 올라앉는 신세가 된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고 광복이 찾아오면서 다수의 재일 한국인들이 귀국선에 올랐지만, 신 명예회장만은 달랐다. 그는 자신을 믿고 돈을 빌려준 이를 배신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일본에 남았다. 이후 비누 공장을 짓고 사업가로서 성공한 그는 1년여 만에 하나미츠에게 빌린 돈을 모두 갚고 고마움의 표시로 집도 한 채 사줬다고 한다. 
 

롯데월드타워 전경. 사진=롯데
롯데월드타워 전경. 사진=롯데

◆ 롯데, 고국에서 재계 5위 대기업으로 성장... '평생의 꿈'이었던 롯데월드타워  

청년시절 신 명예회장이 천부적인 사업 감각으로 시작한 사업이 바로 ‘껌’ 사업이었다. 화학을 전공했던 그였던 만큼, 당시 일본에서도 손에 곱힐 정도로 품질이 좋은 껌을 생산해 판매하면서 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껌 사업을 기반으로 1948년 주식회사 롯데를 세운 신 명예회장은 1960년대 후반부터 한국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하면서 한국에 뿌리를 내렸고, 호텔사업과 유통사업, 관광사업, 건설업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을 확대하면서 국내 재계 5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신 명예회장은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관광보국(觀光報國)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 줄수는 없다”며 “세계 최고층 빌딩을 지어 새로운 한국의 랜드마크를 만들겠다”고 했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이 갈수록 줄어든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나라를 다시 찾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신 명예회장의 지론이었다. 서울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타워는 이러한 신 명예회장의 숙원 사업이자 꿈이었다. 그러나 1987년 처음 입지를 선정한 이래, 2016년 말 완공될 때까지 무려 3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지상 123층, 높이 555미터의 초고층 빌딩을 포함해 80만 5782㎡에 이르는 롯데월드타워는 대한민국 최초의 100층짜리 빌딩이자,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빌딩이다. 롯데 창립 50주년을 맞은 2017년 4월 3일 공식으로 개장했다. 일평균 이용객은 13만여명, 1월 현재 누적 방문객은 2억2500만명을 기록했다. 상시 고용인원만 약 1만명, 경제적 파급 효과는 연 4조 3000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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