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안전 팽개친 현대차 '카공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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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안전 팽개친 현대차 '카공족'
  • 임현지 기자
  • 승인 2019.12.13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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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노조의 ‘와이파이 파업’, 사회적 책임은 기업만의 의무인가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주문하고 공짜 와이파이로 인터넷 강의를 보거나 노트북 작업하는 사람을 일명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이라 부른다. 최근 또 다른 카공족이 등장했다. 자동차(Car) 공장에서 회사 측이 제공한 무료 와이파이로 동영상을 시청하며 부품을 조립해온 현대차 노조원들이다.

‘와이파이 파업’이라고 불리는 이번 사건은 현대차가 울산 공장에 24시간 제공했던 와이파이를 식사시간과 휴식시간으로 한정하겠다고 노조에 통보하며 시작됐다. 작업시간에 유튜브를 시청하거나 게임하는 모습이 눈에 띄자 이런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시간제한을 둔 것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나 화물차 운전기사들이 휴대폰 동영상이나 게임에 한눈을 팔다가 사고를 내는 장면은 TV 뉴스를 통해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차량 운행 중 스마트폰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행위가 다수의 선량한 시민을 치명적 위험에 빠트리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현대차 사측이 작업 시간 중 와이파이 서비스를 제한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차량을 조립 중인 근로자들이 한눈을 팔며 작업을 한다면, 완성차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현대차 브랜드를 신뢰하고 제품을 구매한 고객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회사 측의 조치에 딴지를 걸 여지는 거의 없다. 오히려 회사가 이런 사정을 알고도 이를 방치하거나 묵인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심각한 직무유기이다. 이 경우 사측은 감독 의무 불이행에 따른 법적 책임을 부담해야 함은 물론 윤리적 측면에서도 비판을 면할 수 없다.

현대차 울산 공장에서 벌어진 '작업 중 휴대폰 동영상 시청행위'는 수십년간 쌓아올린 현대차 브랜드 신뢰도를 뿌리부터 훼손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이런 사정을 종합하면 현대차의 조치는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노조의 반응은 상식을 벗어났다.

노조는 “사측이 일방적으로 변경 공문과 안전교육 시행 공문을 발송했다. 이는 현장 탄압”이라고 반발했다. 14일 예정된 토요일 특근을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노조 반발에 현대차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사측은 조치 이틀 만에 와이파이 제한을 풀었다.

여론은 들끓었다. 대국민 사과를 해도 부족할 노조가 되레 핏대를 세워가며 ‘현장 탄압’ 운운하는 모습에 비판적 의견이 쏟아졌다. 노조 게시판에도 ‘와이파이 끊는다고 주말 특근 거부하는 행동이 옳은 일인가’, ‘기가 찬다’는 부정적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다.

제품 안전을 위협하는 현대차 울산 공장 근로자들의 안일한 근무 태도 역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동아일보, 문화일보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이곳 근로자들은 한 번에 부품을 빠르게 조립하는 ‘내려치기’, 뒤에 있는 차부터 빠르게 조립하는 ‘올려치기’ 등의 비정상적 방법을 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차는 20일까지 노조와 와이파이 서비스 운영 시간을 놓고 협의를 할 예정이다.

완성차의 품질 신뢰도 확보를 위해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고도, 노조 반발에 고개를 숙인 현대차가 아쉽다.

현대차는 완성차 제조사로서 고객과 그 가족의 안전을 위해 제품 신뢰도를 유지·강화 할 책임이 있다. 근로자들이 작업 중 동영상을 시청하며 조립한 자동차를 타고 싶어 하는 고객은 없다. 현대차는 노조와의 협의 이전에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 칼 폴리 포모나대 도킨스 교수는 “한 조직체의 행위는 규범적 척도 안에서만 이뤄져야 정당성을 갖는다”며 “노조도 다른 제도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승인을 얻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 노조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측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기에 앞서 자신들에게도 사회적 책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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