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증거인멸 1심 有罪... 檢 실토에도 엉뚱한 판례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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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 증거인멸 1심 有罪... 檢 실토에도 엉뚱한 판례 적용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9.12.1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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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25시] 삼바 증거인멸 1심 판결 '두 가지 의문'
검찰, 지난 10월 결심공판서 기존 주장 번복
檢, 백업데이터 1200만건 확보 사실 '고백'
'자료 삭재돼 내용 알 수 없다' 기존 주장 설득력 잃어
재판부, 검찰 '고백' 불구 기존 주장 그대로 인용
재판부 앞선 공준기일 심리 당시와 상반된 태도 보여
사진=시장경제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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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서관 417호 대법정, 이 법원 형사합의24부(소병석 부장판사)는 ‘삼성바이오 증거인멸 혐의 사건’ 1심 선고 공판을 열고, 피고인 8명 모두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피고인 중 증거인멸을 주도한 3명에게는 징역 1년6월에서 2년의 실형이, 나머지 5명에게는 징역 6월에서 1년6월의 형과 함께 집행유예가 각각 선고됐습니다.

이 사건 1심 공판 핵심 쟁점은, 이른바 ‘인멸 증거의 특정’이 없는 경우에도 증거인멸죄가 성립될 수 있는가였습니다.

증거인멸죄는 타인의 형사사건 혹은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하거나 위·변조된 증거를 사용한 경우를 구성요건으로 합니다(형법 제155조 1항).

이 사건 1심 공판 내내 변호인단은 “피고인들이 인멸한 증거가 타인의 형사사건 혹은 징계사건과 관련 있음을 특정하지 않으면 증거인멸죄는 성립할 수 없다”고 항변했습니다.

인멸 증거가 특정되지 않으면 구성요건을 충족할 수 없기 때문에 증거인멸죄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 변호인단 항변의 요지라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하는 타인의 형사사건 내지 징계사건을 편의상 ‘본죄’라 표현합니다. 이 사건은 분식회계 의혹에서 출발합니다. 따라서 ‘본죄’는 자본시장법 혹은 외부감사법 위반(분식회계 혐의)입니다.

변호인단이 이런 항변을 하게 된 데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이 사건 공판 초기 검찰은 공소장과 법정에서의 공소 이유 설명을 통해 삼성전자,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임직원들이 고의로 인멸한 자료가 2,156건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정작 검찰이 제시한 인멸 증거는 20여건에 불과합니다. 그마저 2015년 6월 작성된 회사설명회 Q&A 자료, 삼바 재경팀 주간업무 현황 등 본죄인 ‘분식회계 혐의’와 무관한 문건이 상당수입니다. 사실상 인멸 증거의 특정을 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인멸 증거의 특정이 없어도 증거인멸죄는 성립할 수 있다’는 검찰 논리를 받아들여 피고인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가 설명한 유죄 선고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피고인들은 장차 검찰 수사를 예상하고 증거인멸에 나선 것으로 판단된다. 피고인들의 행위는 형사 사법 절차를 방해하고 사법적 판단에 지장을 초래해 죄질이 무겁다. 증거인멸은 그룹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이뤄졌고, 그 범행 수법 또한 사회적 충격을 줄 만큼 대담했다.”

1심 재판부의 판단은 검찰이 결심공판에서 밝힌 최종의견과 표현만 다를 뿐 맥락은 거의 동일합니다.

검찰은 10월29일 결심공판 당시 “피고인들은 조직적 증거인멸을 통해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의 감독권을 무력화하고, 수사당국과 사법부의 총체적 법질서를 교란했다”며 중형 선고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이) 향후 수사 가능성을 인지했다면 수사 착수 전이라도 증거인멸죄는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 통설”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검찰은 이 과정에서 특정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인멸된 증거의 특정이 없어도 증거인멸죄는 성립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재판부 판결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인멸 증거의 특정이 없어도 증거인멸죄는 성립할 수 있다.’

1심 재판부의 유죄 판단은 두 가지 의문을 남겼습니다. 하나는 직전 결심공판에서 드러난 사실과 모순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멸 증거 특정'에 대한 재판부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앞으로 있을 항소심에서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시장경제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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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의문, 검찰의 자기 고백... '인멸 증거 특정 할 수 있었다'

10월29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밝혔습니다.

이날 검찰은 지난 5월 삼성바이오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18TB(테라바이트) 용량의 구 서버 2대와 54TB급 백업서버 1대를 각각 확보한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 서버에 저장된 파일은 1,221만 개 입니다.

이 사실은 검찰 공소사실의 신뢰도에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만듭니다.

앞서 변호인단은 공판 과정에서 ‘인멸 증거의 특정’을 검찰에 요구했습니다. 삭제된 자료들이 이 사건 본죄인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 있음을 입증할 책임은 검찰에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변호인단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피고인들이 증거를 인멸해 특정 자체가 곤란하다’, ‘피고인들의 증거인멸 행위 자체가 범죄의 특정이나 다름 없다’는 논리를 앞세웠습니다.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백업데이터의 존재는 물론이고 그 내역을 살펴봤음을 인정했습니다. 이날 검찰은 “백업데이터 복구 결과 파일만 1200만개에 달해 내용을 확인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특정’을 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삭제된 자료의 상당수가 분식회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고 했습니다.

검찰 법정 진술은 서버에 있는 파일 내용을 파악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발언입니다. 

[편집자주]

'검찰 인용 대법 판례 전제 사실, 이 사건 그것과 전혀 달라'

검찰이 인용한 대법 판례는 ‘증거가 완전히 소멸돼 그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는 경우’, 예외적으로 '인멸 증거의 특정' 없이도 증거인멸죄 처벌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증거의 유·불리와 관계없이 모든 증거가 지워졌다면 수사 차질이 불가피하고, 이때는 증거인멸죄의 구성요건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 대법 판례의 함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검찰 역시 이 판례를 인용하면서 ‘피고인들이 자료를 완전히 삭제해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검찰 기존 주장과 결심공판에서의 ‘고백’은 그 내용이 전혀 다릅니다. ‘피고인들이 증거를 인멸해 특정이 불가하다’는 기존 주장을 스스로 번복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변호인단은 결심공판에서 “원본과 동일한 메인·백업서버를 검찰이 이미 확보한 만큼, 피고인들의 자료 삭제가 검찰 수사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은 이유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나아가 “외부 반출될 경우 법적 분쟁 발생 우려가 큰 인수합병 자료, 기간이 오래된 자료 등을 삭제한 것에 불과하다”며 범의(犯意)가 없었음을 재판부에 호소했습니다.

결심공판에서 새롭게 드러난 사실을 고려할 때 이 사건 재판부의 유죄 판단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검찰이 앞세운 대법 판례의 전제 사실과 이 사건 기초사실관계가 전혀 다르다는 점이 확인됐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입니다.

◆두 번째 의문, '인멸증거 특정'에 대한 재판부의 모호한 태도... "항소심 쟁점 될 것"

앞서 1심 재판부는 9월18일 열린 이 사건 4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인멸 증거의 특정’을 검찰에 요구했습니다.

검찰은 재판부의 특정 요구를 받고 이렇게 답했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소속 임직원이 회사 컴퓨터에서 삭제한 자료를 살펴보면 그 생산자가 대부분 회계 혹은 기획 담당 부서임을 알 수 있다. 이들 부서 업무는 본죄인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이 있다고 ‘짐작’할 수 있으므로, 이미 (인멸 증거는) 특정된 것으로 봐야 한다.”

재판부는 이날 준비기일이 끝날 무렵 “분식회계 혐의가 유죄인 경우에만 증거인멸이 되느냐, 아니면 본죄와 무관하게 범죄가 성립할 수 있느냐에 대한 공론이 오간 것 같다. 분식회계 사건을 어느 정도 지켜봐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검찰의 답변은 재판부 요구에 대한 사실상의 거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검찰은 특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짐작’에 기대 설명했습니다.

검찰의 논리를 그대로 인용하면 증거인멸죄의 처벌범위는 무제한 확장됩니다.

문서를 생산한 부서를 기준으로 ‘본죄’와의 관련성을 짐작할 수 있다는 주장은, 근대 형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는 물론이고 명확성의 원칙에도 반하는 초헌법적 발상입니다. 이런 식이면 범죄 성립에 필요한 '구성요건'도 필요치 않습니다. 검찰의 입맛대로 유무죄가 달라지는 조선시대 ‘원님 판결’이 재현될 수도 있습니다.

검찰의 무리한 논리 전개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재판부의 오락가락한 태도입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재판부는 검찰 측에 인멸 증거의 특정을 요구한 뒤, “(본죄인) 분식회계 사건을 어느 정도 지켜봐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재판부가 약 3개월 뒤 내놓은 판결은 당시 태도와 상반됩니다.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가 밝힌 판시이유 어디에도 검찰 논리 전개의 위험성을 짚은 대목은 없습니다. 되레 재판부는 유죄 판단을 내리면서, ‘짐작’에 기댄 검찰 주장을 상당 부분 인용했습니다.

1심 재판부 선고가 있은 직후 서울의 한 사립대 로스쿨 교수는 이런 촌평을 남겼습니다.

“무엇이 증거인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증거일 수 있다’는 가설하에 내린 판결로 보입니다. 항소심 판결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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