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中 게임사에 안방 내준 지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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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中 게임사에 안방 내준 지스타
  • 유경표 기자
  • 승인 2019.11.2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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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게임, 中시장서 '문전박대' 당하는데 ... 中게임은 한국 시장서 날개
실효성 없는 규제에 발목, 국내게임 미래 '암담'... 패러다임의 전환 필요한 때
14일부터 17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지스타2019'. 사진=이기륭 기자
14일부터 17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지스타2019'. 사진=이기륭 기자

중국의 게임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우리나라 업체들의 설자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 게임을 베끼는 수준에 머물렀던 중국 게임 산업이 막대한 자금력과 자국의 내수 시장을 앞세워 덩치를 키운 반면, 우리나라 게임 업계는 ‘규제’에 발목이 잡혀 제자리걸음을 한 탓이다.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지스타2019’는 일견 화려해 보이는 규모와 달리, 국내 게임사들이 설 자리는 크게 좁아진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안방에서 열린 잔치인데 국내 업체들의 빈자리를 해외 업체들이 채우는 모양새가 역력했다. 

주최측에 따르면 올해 지스타에 참여한 업체는 해외 30개국 600여개 회사가 참여했고 부스 규모는 2800개에 달한다. 관람객 수는 사상 최다인 약 24만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같은 역대급 흥행에도 불구하고 올해 지스타에 참여한 국내 게임사는 5곳에 그쳤다. 특히 올해 지스타에서 관심이 집중됐던 ‘3N’ 중 넷마블 단 한곳에 불과했다. 

넥슨은 당초 참석을 검토했지만 최근 회사 매각이 불발 된데다 신규 프로젝트까지 중단되는 등 내홍을 겪으면서 결국 불참했다. NC소프트도 지스타의 후원사로만 이름을 올렸을 뿐 부스를 설치하지는 않았다. 

올해 지스타는 중국의 거대 IT 기업으로 성장한 텐센트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던 반면, 한국 게임업계의 위상은 과거에 비해 크게 추락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이번 지스타에 대해 “중국 게임쇼 ‘차이나조이’가 연상될 정도”라는 볼멘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05년부터 시작된 지스타는 독일의 게임스컴과 미국의 E3, 일본의 도쿄게임쇼에 이어 세계 4대 게임쇼로 평가받는다. 이처럼 국제적인 게임전시회로 자리매김한 지스타는 국내 게임산업의 현재 위치와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척도로써 받아들여진다. 

이번 지스타에서 중국의 ‘IT 공룡’ 기업으로 성장한 텐센트의 기세는 무서울 정도였다. 벡스코 주위에는 텐센트가 지분의 84%를 가지고 있는 핀란드의 게임회사 슈퍼셀이 내놓은 게임 ‘브롤스타즈’ 대형 현수막이 곳곳을 장식했다. 

또한 ‘포트나이트’ 등 히트작을 내놓은 글로벌 게임사인 에픽게임즈도 텐센트가 지분 48.4%를 쥔 대주주다. 아울러 같은 중화권 게임 업체인 ‘미호요’와 IGG, XD글로벌 등도 가장 몫 좋은 위치인 B2C 전시장 입구에 부스를 설치해 북적이는 인파로 장사진을 이뤘다. 

시장조사업체 뉴주에 따르면 전 세계 게임시장 규모는 1521억 달러(43조5000억원)로 추정된다. 시장규모 1위는 369억달러를 기록한 미국이며, 2위인 중국이 365억 달러로 미국의 뒤를 바짝 쫒고 있다. 우리나라는 62억 달러로 3위인 일본(190억 달러) 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독일(60억 달러), 영국(56억 달러), 프랑스(41억 달러)에 비해선 큰 세계 4위 시장이다. 

그러나 국내 게임시장은 중국산 게임에 점차 잠식당하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국내 모바일 게임 상위 30개 중 절반은 중국산 게임이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과 중국의 불공정한 시장 구조도 시급해 개선해야 할 문제로 꼽힌다. 중국 게임은 한국 시장에 아무런 제약 없이 진입해 마음껏 활보하고 있는데, 한국 게임은 중국 시장에서 문전박대 당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게임을 서비스하기 위해선 일종의 서비스 권한인 판호가 필요하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2017년 3월을 기점으로 한국 게임에 판호를 더 이상 발급하지 않고 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3년 가까이 한국 게임에 대해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것이다. 

한 때 ‘황금알을 낳는 산업’으로 각광을 받은 국내 게임산업은 해가 갈수록 쇠락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5G와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등과 연계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게임 콘텐츠를 육성하기는커녕 온갖 규제로 발목만 잡고 있는 형국이다. 

미성년자들의 심야시간대 게임 접속을 막기 위해 등장한 ‘셧다운제’는 게임산업 전반에 대한 부작용과 함께 실효성 논란만을 남겼다. 애매한 기준의 등급분류제는 게임 창작의 자유를 제한하는 장애물이 된지 오래다. 

국내 게임산업은 정부의 정책적·금전적 지원 없이 자생적으로 성장해 온 유일한 산업으로 꼽힌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선박 등을 비롯해 ‘메이드 인 코리아’ 마크를 단 효자 수출품에는 게임도 포함된다. 

이제는 게임 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한 때다. 민·관·정이 머리를 맞대고 게임 산업을 육성시킬 수 있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의 게임 산업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해 그나마 남아있는 희미한 존재감마저 사라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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