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메트로푸르지오 입주민 "하자 판정서 받는데만 8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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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메트로푸르지오 입주민 "하자 판정서 받는데만 80일"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9.10.3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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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들 "시공사인 대우건설 봐주기" 격앙
국토교통부 '하자 심사‧분쟁조정위원회' 늑장 행정 논란
제보자 "판정서 송달 지나치게 늦어... 납득 어려워"
건설사, 판정서 송달일 기준 60일 이내 보수공사 끝내야
송달 늦어질수록 건설사에 유리... '위원회 짬짜미' 의혹도
위원회 "사건 급증하는데 일손 달려"... 인력 부족 호소

대규모 아파트단지 하자 등을 주로 심사하는 국토교통부 산하 '하자 심사‧분쟁조정위원회'가 당사자들에게 판정서를 너무 늦게 보내, 제도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위원회는 '대규모 하자 발생 현안의 신속한 해결'을 목표로 당사자간 자율적인 조정을 돕고 있다. 그러나 분쟁 조정안이 담긴 판정서가 의결일 기준으로 80일이 지난 뒤에야 송달되는 등 행정처리 지연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원회의 판정서는 건설사가 이행해야 하는 하자보수기간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는 건설사에 대한 과태료 부과기준이 된다. 

공동주택관리법은 건설사가 판정서를 받은 날로부터 60일 이내 하자보수공사를 끝내지 못하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법 102조 2항 5호.).

피해자(입주민) 입장에서는 판정서가 건설사에 빨리 송달될수록 신속한 구제를 받을 수 있다. 반면 위원회의 판정서 발송이 지연될수록 건설사는 충분한 하자보수기간을 확보할 수 있다.

제도 본래 취지를 고려한다면 판정서의 신속한 발송을 바라는 피해자들의 태도를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일부 피해사례를 보면, 의결이 이뤄진 뒤 판정문 발송까지 무려 80일이 걸린 것으로 드러나 위원회의 늑장 행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기 안산메트로푸르지오 입주민 C는 올해 5월 2일, '거실 및 방바닥 이상 진동' 등 9건 이상의 하자를 확인하고 위원회에 분쟁 조정을 신청했다. 그는 "2018년 9월 입주를 하자마자 하자가 발생해 안방과 안방화장실을 1년 넘게 사용하지 못했고, 거실‧작은방 등 집안 곳곳에서 바닥 출렁임 현상이 발생해 선반 위에 물건 하나 제대로 올려놓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시공사인 대우건설이 눈가림용으로 하자보수작업을 실시했다"며, 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요청했다. 

하심위는 C가 신청을 제기한지 90일이 지난 7월 31일, ‘현장 실사를 하지 않고 사진만으로 판정을 한다'는 취지의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C는 이후 여러 차례 위원회에 전화를 걸어 판정서가 언제 송달되는지 물었다. C에 따르면 그때마다 위원회는 "곧 받을 수 있을 것"이란 답변만 되풀이했다. 

C가 위원회로부터 판정서를 송달받은 것은 위 문자수신일로부터 80일이 지난 올해 10월 18일이다. 최초 신청서를 접수한 날을 기준으로 하면 170일이 소요됐다. 

사진=시장경제DB
(왼쪽부터) 하심위가 보낸 하자 판정 문자. 2019년 5월 2일 접수해 10월 8일 확정된 판정서. 사진=시장경제DB

위원회의 늑장 발송에 일부 시민단체는 "건설사 봐주기"라며 강한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아파트연합회 김원일 수석부회장은 “법원 판결문도 1주일이면 도착한다. 판정이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내용의 휴대폰 문자를 보내고, 다시 80일이 지난 뒤에 문서가 송달됐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국토교통부에 따져 입주민들이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바로 잡아야 한다”고 했다.

판정서 늑장 발송에 위원회는 '신청 사건 급증과 일손 부족'을 이유로 들었다.

위원회 관계자는 "한해 접수되는 사건 수가 4000건이 넘는데 37명이 이 일을 하고 있다"며 "원래 정원은 50명"이라고 설명했다. 급증하는 사건 수에 비해 담당 인력이 크게 부족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관계자는 기자에게 "80일이면 소송과 비교할 때 상당히 짧은 편"이란 말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은 올해 7월 ‘공동주택관리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보다 신속한 권리구제가 가능한 재정(裁定)기능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토부에서도 신속한 하자 판정을 위해 제도를 개선 중이다.

국토부는 올해 6월 ‘아파트 등 공동주택 하자예방 및 입주자 권리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방안이 시행되면 위원회와 관할 자치단체는 사건 처리결과를 공유한다. 자치단체가 건설사에 즉시 보수공사를 명령하는 길도 열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제도가 시행되려면 전산시스템 개발 등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판정서를 받은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보수를 진행하지 않으면 지자체가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며 “내년에 '위원회-자치단체 판정서 공유 시스템'이 구축되면 입주민이 지자체에 신고를 하지 않아도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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