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發 삼바기사, 5공 시절 '보도지침' 연상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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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發 삼바기사, 5공 시절 '보도지침' 연상시켜"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9.10.2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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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 초대석] 언론학자 황근 선문대 교수, 檢·언론에 작심 발언 
조국-삼바 공통분모 '피의사실공표', 친정부 언론 이중태도 지적 
일부 언론, 삼바 수사는 '진짜 검찰' 조국 수사는 '정치 검찰'로 규정
삼바 보도 문제점, 소수의견 두려움 다룬 '침묵의 나선 효과' 인용해 설명
"악의적인 여론몰이... 재판 열기도 전, 언론이 유죄 단정"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편집자 주] 하반기 가장 뜨거운 사회적 이슈 가운데 하나가 검찰의 피의사실공표를 둘러싼 논쟁이다. 조국 전 장관 및 그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를 계기로 불거진 이 문제에 대해, 친정부 성향 언론인들은 검찰의 ‘수사 정보 흘리기’를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피의사실공표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수사에서도 문제가 됐다. 진보성향 매체들은 '검찰발 단독'을 붙여 삼바 수사 진행 상황을 경쟁하듯 보도했다. 두 사례는 ‘피의사실공표’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이를 대하는 언론과 정치권의 태도는 상반된다. <시장경제>는 방송위원회 심사위원, KBS 이사 등을 역임한 뉴미디어 전문가 황근 선문대 교수와 인터뷰를 갖고 이들 사안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들어봤다. 

“여론몰이를 목적으로 한, 아주 고약한 행동입니다. <경향>이 단독을 내면 <한겨레>가 받아쓰고, 이걸 다시 일부 종편이 보도합니다. 이렇게 여러 매체가 주고받고 하면서 같은 이슈를 3~4일 돌리면 이른바 ‘침묵의 나선 효과’라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결국 이들 기사의 논조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위 기사와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이 대다수인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검찰의 피의사실공표와 이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황 교수는 “같은 현상(피의사실공표)을 정치적, 이념적 성향에 따라 선과 악으로 나누고, 자기 입맛에 맞게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는 동네 양아치나 하는 일”이라며,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편가르기 행태를 꼬집었다.

황 교수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과 조국 전 장관 및 그 일가를 둘러싼 의혹 모두 검찰의 피의사실공표가 공통 문제로 지적됐음에도, 정치권과 언론이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인 이유를 ‘침묵의 나선 이론’으로 설명했다.

침묵의 나선(The spiral of silence) 이론은, 언론 보도가 여론 형성에 미치는 효과를 규명하기 위해 제시됐다. 독일 여론조사기관 알렌스바흐연구소 설립자인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은 주창한 이론으로, 심리학자 솔로몬 애시의 동조연구(conformity research)를 바탕으로 한다.

이론은 다음의 4가지를 전제로 한다.

첫째, 대부분의 사람은 집단의 압력에 직면할 때 불안감을 느낀다. 
둘째,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셋째, 사람들은 주류에 속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넷째, 사람들은 자신이 소수의견에 속한다고 느낄 때, 자기 의견을 감춰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노엘레 노이만은 이런 전제 아래 다음과 같은 명제를 정립했다.

여론 형성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이 다수의견과 같으면 적극적으로 동조하지만 반대로 소수의견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거나 고립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침묵’을 택한다. 

위 이론에 대한 국내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침묵’의 원인은 사회적 상황이나 미디어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학자들은 침묵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이슈에 대한 단면적 보도의 문제’를 짚었다.

삼바 분식회계 의혹과 조국 사태라는 두 가지 이슈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검찰의 수사정보흘리기’, 즉 피의사실공표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반면 두 가지 현안을 대하는 정치권과 언론의 태도는 전혀 다르다.

검찰의 삼성바이오 압수수색 사실에 대한 언론 보도. 사진=화면 캡처.
검찰의 삼성바이오 압수수색 사실에 대한 언론 보도. 사진=화면 캡처.

‘조국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들은 불과 3개월 전, 검찰의 ‘삼바 분식회계 의혹’ 수사에 박수를 보냈다. 올해 5월과 6월, 삼바 분식회계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은 삼성물산, 삼성전자, 삼성바이오, 그 관계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 등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을 벌였다. 때에 맞춰 ‘검찰발 단독’ 기사도 쏟아져 나왔다. 검찰발 단독 기사 대부분은 한겨레와 경향 등 현 정부에 우호적인 특정 언론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당시 언론은 ‘이재용 부회장이 분식회계를 사정을 미리 알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육성 녹음이 발견됐다’, ‘삼성바이오가 공장 바닥을 뜯고 분식회계 자료를 감췄다’, ‘삼바 회계사들이 말을 바꿨다’ 등의 표현을 빌려 ‘분식회계’를 사실로 단정짓고, 그 정점에 이 부회장이 있다는 식의 논조로 기사를 양산했다. 

몇몇 언론이 검찰발 수사정보흘리기(leak)와 이에 터잡은 단독 기사의 위험성을 지적했으나 ‘소수의견’에 그쳤다. 대부분의 언론은 사문화된 ‘피의사실공표’의 위법성보다 ‘국민의 알권리’를 강조했다.

이런 분위기는 8월 들어서면서 급변했다. 검찰이 조 전 장관 의혹 수사에 착수하면서 여당과 진보성향 언론은 삼바 수사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여권 인사들이 윤석열 체제 검찰에 강한 유감을 나타내면서, 친정부 성향 언론인들도 동조했다. 이들은 8월초만해도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을 환영했으나 조국 사태를 계기로 완전히 등을 돌렸다. 친정부 성향 언론인들이 가장 문제로 삼은 것은 ‘검찰의 피의자 인권침해’ 논란이다.

검찰이 무죄추정의 원칙도 어기고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려, 조 전 장관 가족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 주장의 요지이다. 이들은 ‘검찰의 과도한 압색과 별건구속’도 지적했다.

수사 대상(이재용·삼성바이오↔조국·정경심 교수)과 신분(기업인↔여권 인사)의 차이점을 제외한다면, 삼바 수사와 조국 수사를 다루는 검찰·언론의 태도는 매우 유사하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검찰발 기사가 쏟아지고, 이 과정에서 피의사실공표가 문제된 사실은 판박이처럼 닮았다.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이 고스란히 언론에 유출되고, 재판도 열리기 전에 언론이 먼저 단죄를 하는 인민재판식 구태가 재현된 사실도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황 교수는 위 두 가지 사례를 한 데 묶어 설명했다.

황근 선문대 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황근 선문대 교수. 사진=이기륭 기자.

"성향이 같은 매체가 삼바 분식회계 의혹을 주제로 동일한 논조의 기사를 반복적으로 생산하면, 이들 기사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 주장이나 의견을 밝히지 못하는 현상이 굳어집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위 기사의 논조가 다수의견의 지위를 차지하고 반대된 주의·주장은 소수의견이 됩니다.

검찰發 삼바 의혹 보도를 통해 ‘침묵의 나선 효과’를 확인한 이들은 그 위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삼바 케이스처럼 되겠구나’라는 위기감을 느낍니다. 이 경우 검찰발 보도를 공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도덕성의 문제’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원래 저렇게 보도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논조로, 조 전 장관 의혹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피의사실공표죄를 꺼내든 겁니다."

피의사실공표와 충돌하는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해 황 교수는 “국민들이 모든 사실을 100% 다 안다고 해서 알권리가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보다는 국민들이 개별 현안에 대해 오해하지 않도록, 주요 사항을 정확하게 이해시키고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황 교수는 “조국 사태에 대해 일부 언론이 피의사실공표를 비판하는데, 삼바 수사와 비교하면 검찰이 여당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본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삼바 분식회계 의혹 검찰 수사는 심하게 말하면 옛날 ‘보도지침’을 연상케 한다. 그 정도로 검찰이 수사정보를 많이 흘렸고, 언론은 받아쓰기하듯 기사를 만들었다”고 촌평했다. 황 교수는 “삼바 수사정보 유출에 대해 알권리를 이야기하는데 보도 행태나 생산된 기사의 질을 보면 알권리와 관계가 없다고 본다. (검찰과 언론은) 한편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수사당국과 기자와의 관계 재설정도 주문했다.

법무부는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법무부훈령)을 폐지하고, 인권보호수사규칙(법무부령), 형사사건공개금지규정(법무부훈령) 제정을 각각 추진 중이다.

추진안이 원안대로 확정되면, 앞으로 ‘중대한 오보(誤報)가 실재한 경우’를 제외하고 수사 진행 상황에 대한 브리핑이 전면 금지된다. 압수수색, 체포 및 구속 사실, 피의자 소환 여부 등도 공개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공개를 허용하는 경우에도 대상자와 죄명, 주요 혐의 등 기본사항만 언론에 제공된다.

이에 대해 황 교수는 “검찰이 기본사항은 알려줄 필요가 있다. 중간중간 필요한 사실관계도 공식적으로 브리핑을 해 줘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그는 “지금처럼 모든 수사 정보가 여과 없이 언론에 흘러나가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비공개로 하면 깜깜이 수사가 될 수 있다”며 역기능을 우려했다.

황 교수는 “정경심 교수 구속 당시 대부분 언론은 ‘뇌종양 여부에 대한 재판부 판단이 구속 여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추측성 보도를 냈다”며 “검찰이 정권 눈치를 보지 않고 중요 현안을 정확하게 짚어줬으면 이런 혼란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곁들여 황 교수는, 속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언론의 행태에 쓴소리를 냈다.

“단독 기사에 대한 고민을 더 해야 합니다. 우리 언론은 속보에 치중하면서 남들보다 1분이라도 빨리 쓰면 그걸 ‘단독 기사’라고 합니다. 내용이 안 되니 시간으로 승부를 보는 셈입니다.

무조건 빨리 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다 보니 품질 높은 심층기사를 찾기 어렵습니다. 언론사도 소속 기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합니다.

먼저 보도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 충분하게 취재하고 파고드는 기사의 가치를 더 높게 인정해 주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인터넷매체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차별화된 기사, 품질 높은 심층 기사로 경쟁해야 합니다.” 

※황근 교수(58) :

한국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동일한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육군사관학교 전임강사, 한국방송개발원 책임연구원을 거쳐 1997년 선문대 교수로 임용됐다.

방송법제 및 정책, 커뮤니케이션 이론, 정치커뮤니케이션, 뉴미디어 분야에서 두드러진 연구 성과를 냈으며 여성민우회, 언론개혁시민연대, YMCA 등 NGO시민단체에도 몸담았다.

△한국언론정보학회 언론정보학보 편집위원 △국회 정보회추진위원회 위원 △한국방송학회 상임 기획이사 △한국언론학회 정치커뮤니케이션 연구회장 △한국방송학회 방송법제연구회장 △한국언론학회 기획이사 등을 지냈다.

뉴미디어 및 방송 분야에서의 특화된 전문성을 인정받아 △방송위원회 SO재허가 심사위원 △방송위원회 위성DMB 사업자 선정 심사기준위원 △방송통신위원회 종합편성 및 보도채널 재허가 심사위원, KBS 이사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저서로 ‘방송위원회의 정책 과제와 방향’(2000년), ‘방송론’(공저, 2002년), ‘방송 재원’(2015년), ‘공영방송과 정책갈등’(2018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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