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 소견도 "지워라" 억지... 도넘은 삼성생명 보험금 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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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 소견도 "지워라" 억지... 도넘은 삼성생명 보험금 횡포
  • 배소라 기자
  • 승인 2019.10.2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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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직접적인 치료 목적인지 주치의에 확인하라"
"직접치료 목적 맞다" 의사 소견에도 보험금 지급 거절
전재수 "삼성생명 사례는 대표적인 불공정 행태" 비판
사진=이기륭 기자
사진=이기륭 기자

삼성생명(대표 현성철)이 금융감독원 지침과 주치의 소견을 무시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되고 있다.

보험사가 타당한 이유 없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해도 마땅한 처벌 규정이 없어 소비자 피해만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60대 초반 조OO씨는 지난해 12월 요로결석증에 걸려 요로 결석 부목술(스텐트)을 받았다. 그리고 한 달 뒤인 1월 초 요로에 삽입돼 있던 스텐트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삼성생명은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직접적인 치료 목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억울한 조 씨는 2월 초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신청했고, 7개월이 흐른 9월에서야 금감원으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금감원은 "객관적인 처리를 위해 수술을 집도한 해당 병원 주치의에게 정확한 의적소견을 확인하라"고 했다.

이후 조 씨는 수술을 집도한 주치의에게 "스텐트 제거술은 직접적인 치료 목적의 수술이 맞다"는 소견서를 받아 삼성생명에 제출했다.

하지만 삼성생명 측 손해사정사는 조 씨에게 "왜 혼자 가서 소견서를 받아왔느냐, (본인과) 동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며 보험금 지급을 재차 거절했다.

삼성생명 측은 스텐트 제거를 별개의 수술 건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스텐트를 삽입할 때부터 제거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이를 일련의 치료 과정으로 본다"며 "보험사 담당자와 같이 동행해 주치의 소견을 다시 받고 결론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스텐트 '제거'는 수술아니다?... 또 보험금 지급 거절한 삼성생명>

◇ 의사 소견서 무시... 유리한 질문지 준비

얼마 후 조 씨는 손해사정사와 함께 주치의를 찾아갔다. 그러나 삼성생명 측은 또 다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손해사정사가 보험금 지급 거절에 유리한 질문지를 작성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질문지에는 분쟁의 핵심인 직접적인 치료 목적과도 관련 없는 내용만 담겨 있었다. 

손해사정사는 요관부목 제거술을 시행하게 된 경위에 대해 두 가지 선택지를 기재해 놨고, 의사는 '삽입한 요관부목으로 인해 요로감염과 추가 결석 예방목적으로 제거' 항목에 체크했다. 손해사정사는 이 부분을 보험금 지급 거절 사유로 들었다.

하지만 이 선택지에는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 주치의 소견서에 적혀 있는 '요관 점막 손상으로 부목을 설치했다'는 내용이 빠진 것이다.

조 씨는 "(삼성생명이) 요관 점막에 손상이 있었기 때문에 부목을 설치한 것이라는 핵심 내용을 제외하고, 단순히 부목을 제거하는 목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질문지를 준비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오류도 있었다. 만약 손해사정사의 판단처럼 직접적인 치료 목적이 아닌 단순 고정물 제거 목적의 수술이었다면, 조 씨는 전신마취를 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요관 부목 제거술 관련 마취방법을 기재하는 곳에 주치의는 '전신마취'라고 적었다.

조 씨의 요로 결석 부목술 분쟁조정신청에 대한 금융감독원 회신 내용. 사진=배소라 기자
조 씨의 요로 결석 부목술 분쟁조정신청에 대한 금융감독원 회신 내용. 사진=배소라 기자

◇ 주치의 의료자문 멋대로 고치려는 삼성생명

본지는 삼성생명 손해사정사가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소견을 기재하도록 의사에게 종용한 정황이 담긴 녹취를 단독 입수했다.

녹취에 따르면 주치의가 질병코드를 '요관 결석에 의한 것'이라고 체크를 하자 손해사정사가 따지기 시작했다. 손해사정사는 "제거술인데 왜 요관 결석에 체크하냐, 지워달라"고 했다. 

그러자 화를 꾹꾹 누르던 주치의도 언성을 높였다. 요관 결석이 생겼기 때문에 스텐트 삽입술을 받은 것이고, 삽입된 스텐트를 제거한 것 또한 요관 결석을 처치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라는 것이 주치의의 설명이다.

주치의는 "수술을 받아 상처를 꿰맸다면 꿰맨 실밥을 푸는 것까지가 해당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과정"이라며 "당연히 스텐트 제거술 또한 그 원인이었던 요관 결석에 체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주치의가 "직접 치료 목적이었다"는 내용을 진료확인서에 기입하려고 하자, 손해사정사는 그런 내용은 쓰지 말라며 주치의를 말리기까지 했다.

손해사정사는 "저는 그걸 물어보러 온 게 아니라 제가 질문하는 내용에만 답하시면 된다"고 주치의를 회유했다. 결국 진료확인서에는 '직접적인 치료'에 대한 내용은 전혀 기재되지 않았다.

조 씨는 "손해사정사 마음대로 적어라, 말아라 하는 게 무슨 의료자문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삼성생명 관계자는 "민원인 측이 의사에게 아무런 근거 없이 제거술에 대해 직접치료라는 문구를 넣어달라고 요청했고 우리는 반대 의견을 피력한 것"이라고 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보험사의 손해사정사가 유도한대로 진료확인서가 작성되도 제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는 또 다시 금감원에 민원을 넣고 6개월이 넘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조 씨의 경우 수술 후 1년이 넘도록 보험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다른 보험 가입자들도 예외일 수 없다.

조 씨는 "금감원은 감시기관인 만큼 보험회사가 타당한 이유 없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경우 제재할 만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난해 4월 26일 열린 소비자권익보호위원회 출범식에서 현성철 삼성생명 사장(오른쪽)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삼성생명 제공
지난해 4월 26일 열린 소비자권익보호위원회 출범식에서 현성철 삼성생명 사장(오른쪽)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삼성생명 제공

◇ 전재수 "주치의 압박하는 불공정 행태" 강력 비판

이러한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보니 금융 소비자들이 대형 보험사의 횡포에 곪아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은 조 씨와 삼성생명 간 분쟁에 대해 "대형보험사 손해사정사들의 불공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본인들이 유리한 내용만을 확보하기 위해 주치의를 압박하는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2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의료자문제도 관련 보험업감독규정 개정이 오히려 보험가입자들의 피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무소속 장병완 의원은 "핵심은 법적 효력이 있는 의사 소견서를 무시하고 단순 참고자료인 의료자문으로 피보험자의 보험료를 삭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보험자가 정상적으로 진단서를 제출했다면 책임과 의무를 다한 피보험자의 보험금을 의료자문이라는 명목으로 보험금 삭감, 부지급을 해서는 안 된다"며 "의료자문으로 보험금 지급을 삭감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명확히 규정해 재개정해달라"고 촉구했다.

이에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합리적인 지적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좋은 취지로 한 것이 역효과가 발생하면 곤란하니 전체적으로 협의하겠다"고 답했다. 윤석헌 금감원장도 "금융위원회와 협의하겠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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