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반대 묵살·심의기록 조작... 드러난 DLF 충격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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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반대 묵살·심의기록 조작... 드러난 DLF 충격 실태
  • 오창균 기자
  • 승인 2019.10.0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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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F 중간검사 발표... "설계·판매 총체적 부실"
DLF 상품 잔액 6723억, 5784억 손실구간 진입
해외금리 하락하는데 구조만 바꿔서 신규 판매
원승연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1일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중간 검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YTN 방송 캡처
원승연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1일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중간 검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YTN 방송 캡처

대규모 원금 손실 논란을 일으킨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의 설계·제조·판매 과정에서 금융회사들의 귀책사유가 상당수 드러나 파장이 예상된다.

금융감독원은 1일 여의도 본원에서 DLF 사태에 대한 중간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한 듯 원승연 부원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원승연 부원장은 금융회사들이 투자자 보호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중시하며 상품 설계하고 판매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검사 과정에서 금융회사들의 불완전판매, 리스크 관리 소홀, 내부통제 미흡 등 다양한 문제점이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 자체 검증 없이 모의실험 검사 활용

DLF 상품은 8월 7일 기준 210개로 3,243명 투자자에게 총 7,950억원이 판매됐다. 현재까지 확정된 손실금액은 669억원이다. 현재 금리 수준이 유지될 시 추가 손실 예상금액은 3,513억원에 달한다. 9월 25일 기준 DLF 상품 잔액은 6,723억원이며 이 중 5,784억원이 손실구간에 진입했다.

이번 사태에 연루된 금융회사는 우리은행, 하나은행, IBK투자증권, NH투자증권, 하나금융투자, 유경PSG자산운용, KB자산운용, 교보악사자산운용, 메리츠자산운용, HDC자산운용이다.  

검사 결과 투자자들에게 DLF 상품을 판매한 은행은 자체 검증 없이 자산운용사의 모의실험 결과를 DLF 상품 판매에 활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심지어 내부 반대를 묵살하고 상품 심의기록까지 조작한 정황까지 포착됐다.

#. 내부 심의 거치지 않고 판매 강행

법규 위반 의심사례도 적발됐다. 한 은행의 판매직원 90여명은 준법감시인의 사전심의를 거치지 않고 3만여건의 투자 광고 메시지를 고객에게 전달했다. 여기에는 손실 가능성이나 이익 보장 등에 대해 투자자가 오해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됐다. '만기상환확률 100%, 원금손실확률 0%' 같이 긍정적인 내용만 적혀있었다는 것이다.  

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은행 내규에는 고위험상품 출시 결정 시 내부 상품선정위원회의 심의·승인을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DLF 상품 중 위원회 심의를 거친 경우는 1% 미만에 불과했다. A은행의 경우 DLF 380건 가운데 상품선정위원회에 부의된 건 단 2건에 그쳤다. 이마저도 일부 위원이 평가표 작성을 거부하자 찬성 의견을 임의 기재하고 구두로 반대의견을 표명한 위원을 교체한 뒤 찬성 의견을 받았다. B은행도 상황은 비슷했다.

특히 해외금리 하락으로 DLF 투자금의 손실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은행들은 상품 만기를 단축하고 손실 배수를 높이는 등 신규 판매를 지속했다. 고객들에게는 손실 가능성도 제대로 통보하지 않았다.

사진=금융감독원 제공
사진=금융감독원 제공

#. 불완전판매 의심사례 20% 내외 확인

은행들의 판매서류를 살펴본 결과 불완전판매 의심사례는 20% 내외로 확인됐다. 금감원이 주요 불완전판매 의심사례로 꼽는 것은 투자자의 투자성향 설문 항목이 제대로 작성되지 않았거나 자격증이 없는 은행 창구 직원의 상품판매·설명의무 위반 등이다.  

나아가 금감원은 60대 이상 고령 투자자의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DLF 투자자 가운데 60대 이상이 48.4%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70대 이상 비중도 21.3%에 달한다.

판매 정책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드러났다. DLF 판매 은행은 비이자수익 배점을 여타 시중은행 대비 높게 설정한 반면 소비자보호 배점은 낮게 부여했다. 또한 PB센터에 대한 비이자수익 배점을 경쟁 은행에 비해 2~7배 높은 수준으로 부여해 DLF 상품 판매를 독려한 것으로 조사됐다.   

#. 금감원, DLF 판매 은행 대상 추가 검사 실시

금감원은 보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DLF 판매 은행들에 대한 추가 검사를 벌이기로 했다. 결과가 나오는대로 법리 검토를 통해 제재 절차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감독당국이 금융사에 내리는 제재는 기관주의, 기관경고, 시정, 영업정지, 등록취소 등이 있다.

금감원에 접수된 DLF 관련 분쟁조정도 중간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속도를 내기로 했다. 금감원은 불완전판매 수준과 투자자의 자기책임원칙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손해배상 여부와 배상 비율을 결정할 방침이다. 분쟁조정위원회에서 결정된 개별 건의 배상기준을 토대로 추후 접수된 분쟁조정건도 처리할 예정이다.

개선방안은 금융위원회와 추후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소비자보호 취약요인이나 제도적 미비점에 대한 개선 방안을 관계기관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금융당국은 고위험 상품을 은행에서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고령투자자에 대한 보호장치를 추가로 두는 방안까지 다양한 개선책을 놓고 고민 중이다. 시장에선 당국이 고위험 상품에 대해 일정 부분 판매 제한을 거는 방안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 우리·하나銀, 잇따라 사과 "고객 보호 최선 다할 것"

KEB하나은행은 금감원의 중간 검사 결과 발표 이후 지성규 은행장 명의로 보도자료를 내고 "DLF 사태로 인해 손님들께 고통과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리며, 소비자보호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고 밝혔다.

지성규 행장은 "당행을 믿고 거래해 준 손님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책임 있는 자세로 진심을 다해 분쟁조정절차 등에 적극 협조하고 무엇보다 손님 보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에 앞서 우리은행은 지난달 23일 대고객 사과문을 발표하고 향후 전개될 분쟁조정 절차에서 고객 보호를 위해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다.

우리은행은 "손태승 행장은 펀드 손실과 관련해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계실 고객님들께 송구스러운 마음을 전하면서 고객신뢰 회복을 위해 현재 진행 중인 분쟁조정절차에 적극 협조하고, 고객보호를 위해 법령 등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책임있는 자세로 다각도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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